거대한 ‘열돔’ 현상 때문인 듯… 추위에 익숙한 주민들 ‘신음’
한국에서 본격적인 폭염이 시작된 가운데, 북아메리카 최북단 미국 알래스카주(州)의 최대도시 앵커리지의 낮 기온도 50년 만에 최고 온도 기록을 경신했다.
5일(현지시간) 미 공영라디오 방송 NPR에 따르면, 앵커리지는 전날 오후 기온이 화씨 90도(섭씨 32.2도)까지 치솟았다. 미 국립기상청(NWS)도 트위터를 통해 “오늘(4일) 오후 5시에 앵커리지 국제공항이 사상 처음으로 90도를 공식 기록했다”고 밝혔다. 1952년 알래스카에서 기상관측에서 시작된 이래 역대 최고 기온으로, 종전 기록은 1969년 6월 14일의 화씨 85도(섭씨 29.4도)였다. 미 독립기념일인 7월 4일의 앵커리지 평균 기온인 화씨 65도(섭씨 18.3도)와 비교하면, 이날 기록은 평년보다 화씨 기준 25도(섭씨 기준 13.9도)나 높았던 셈이 된다.
앵커리지는 16개월 연속 평년보다 높은 기온을 기록하며 고온 현상이 이어지고 있는 중이다. 올해 6월 평균 기온은 화씨 60.5도(섭씨 15.8도)였는데, 이는 평년보다 화씨 기준 5도 이상 높은 것이다. NWS는 지난달 앵커리지의 강수량도 1.52㎜에 불과, 기록적인 가뭄도 이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게다가 4일 오후 기준으로 케나이(섭씨 31.1도)와 킹새먼(섭씨 31.7도) 등 알래스카주의 다른 도시들도 폭염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NPR은 “알래스카에서 열린 3㎞ 산악 마라톤에서 출전 선수들의 중도 포기, 기권 등의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 고온 건조한 날씨가 계속되면서 알래스카주 곳곳에서 산불도 발생하고 있다.
북극권에 가까운 알래스카주(州)에서 이처럼 기온이 치솟고 있는 건 이 지역 상공을 덮은 고기압에 따른 거대 ‘열돔(뜨거운 공기가 지면에 갇히는 상태)’ 현상 때문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NWS 기상학자인 빌 루드윅은 지역 일간지에 “알래스카 위에 놓인 거대한 고기압 마루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프랑스, 스페인 등 유럽 서부를 덮친 최악의 폭염과 연관성이 있다거나, 해빙 감소와 북극해 온난화 등에 따른 결과라는 견해도 나온다.
더위보다는 추위에 익숙한 알래스카 주민들은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알래스카 페어뱅크스대의 기후 연구원인 브라이언 브렛슈나이더는 최근 미 NBC방송에 “알래스카는 여름 주가 아니라 겨울 주여서 주택들도 내부에 온기를 잘 유지하도록 지어졌다. 에어컨도 없어 밤에 열기를 식히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40년간 알래스카에 살았다는 주민 머틀 맥로린은 현지 매체에 “1970년대 이후 이런 기온을 겪은 적이 없다”고 했다.
이번 폭염은 일상생활은 물론, 야생동물과 지역경제에도 커다란 피해를 안기고 있다. AFP통신 등에 따르면 알래스카의 85%를 덮고 있는 영구동토층이 녹으면서 건축물 토대와 야생동물 서식지가 불안정해지고, 툰드라 지역 딸기류 채집도 힘들어졌다. 육상 교통 경로인 강이 여기저기서 녹는 바람에 차량 이동에도 위험성이 증가했다. 개썰매 경주대회의 경로가 변경되거나 대회 자체가 취소되는 일도 잇따르고 있다. 현재 남부 앵커리지 일대에 머무는 고기압이 수일 내에 내륙 쪽으로 북진할 예정이어서, 알래스카 폭염 기록 행진은 당분간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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