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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탁가정은 고통받는 아이들을 위한 우리 사회의 마지막 울타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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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탁가정은 고통받는 아이들을 위한 우리 사회의 마지막 울타리죠”

입력
2019.07.06 10:25
수정
2019.07.12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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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남수 ‘색동저고리’ 회장 “자식처럼 키우는데 사회에서 그 마음을 인정 못 받는 기분”

박남수(왼쪽) 일반위탁자조모임 ‘색동저고리’ 회장과 장민지 대구가정위탁지원센터 팀장이 다정하게 포즈를 취했다. 김광원기자 jang750107@hankookilbo.com
박남수(왼쪽) 일반위탁자조모임 ‘색동저고리’ 회장과 장민지 대구가정위탁지원센터 팀장이 다정하게 포즈를 취했다. 김광원기자 jang750107@hankookilbo.com

“엄마 왜 ‘가슴으로 낳은 자식’이라고 했어? 그냥 늦둥이라고 하면 안 될까?”

가인이(가명)는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위탁가정에 맡겨졌다. ‘엄마’는 3살 때 처음 만났다. 친부모님과 헤어져 할머니와 함께 살게 되었을 때부터 이웃에 살던 ‘엄마’를 알고 지냈다. 할머니는 때때로 “내가 죽으면 가인이를 맡아 달라”고 당부했다. 3년 전, 가인이가 5학년 때 할머니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가인이는 ‘엄마’ 집으로 왔다. 박남수(59) 일반위탁자조모임 ‘색동저고리’ 회장은 그렇게 가인이의 ‘엄마’가 되었다.

‘엄마’ 집에는 동생이 있었다. 대한이(가명). 대한이는 3살 때 ‘엄마’ 집에 왔다. 처음 집에 왔을 때, 1달 동안 새벽 1시에 잠이 깨서 1시간씩 울었다. 자는 도중에 옆에 자고 있는 ‘엄마’의 뺨을 때리기도 했다. 친엄마와 떨어진 까닭도 있었지만 친모와 지낼 때도 마음의 상처가 깊었다. 거의 매일 어린이집에서 10시까지 엄마를 기다렸고, 집에서는 계부에게 폭력을 당했다. 계부는 친아들이 둘이나 있었다. 대한이를 마뜩잖아 했던 것이다.

‘엄마’는 대한이가 울음을 그칠 때까지 등을 토닥이면서 안심을 시켰다. “괜찮아. 엄마는 대한이를 안 떠날 거야. 나하고 오래오래 같이 살 거야”하면서 진정시켰다.

‘엄마’는 힘들어도 위탁을 물릴 수는 없었다. 답은 공부밖에 없었다. 다행히 대구가정위탁지원센터에서 교육 지원을 많이 해줬다. “조금 늦어도 괜찮아. 남들보다 천천히 가도 괜찮아.” 엄마가 늘 토닥이며 대한이에게 해줬던 말이다.

“대한이에게 물과 영양분을 많이 주며 정성을 많이 쏟아부었어요. 대한이의 기질에 맞는 양육법을 찾으려 친딸을 키울 때도 안 했던 육아공부를 정말 많이 했죠. 이제 육아 박사가 다 됐어요.”

대한이는 한 달 만에 울음을 뚝, 그쳤다. 어느덧 대한이와 만난 지는 10년, 가인이는 3년이 조금 넘었다. “이제는 친자식보다 더 친자식 같다”고 고백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정위탁 제도는 2003년에 시작됐다. 현재 대구에만 240여명, 전국에 1만여명의 아동들이 가정위탁 보호를 받고 있다. 가정위탁제도는 입양과 달리 친가정이 아이의 친권을 유지하며 가족 기능을 회복할 수 있도록 자립을 지원한다는 의미에서 친가정의 해체를 방지할 수 있고, 정부에서도 유엔아동권리협약 정신에 기초한 ‘선 가정보호 후, 시설보호’로 가정위탁보호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장민지 대구가정위탁지원센터 팀장은 “가급적 친부모가 양육하는게 좋지만 학대, 이혼 등의 사유로 보호가 불가피한 경우가 많은 만큼 위탁가정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밝혔다. 김광원기자 jang750107@hankookilbo.com
장민지 대구가정위탁지원센터 팀장은 “가급적 친부모가 양육하는게 좋지만 학대, 이혼 등의 사유로 보호가 불가피한 경우가 많은 만큼 위탁가정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밝혔다. 김광원기자 jang750107@hankookilbo.com

낳아서 기른 자식 이상으로 정을 쏟지만 친권이 살아 있다 보니 가슴 아픈 사연이 더러 발생한다. 어느 위탁가정은 위탁받은 아이를 10년 동안 친자식처럼 키우다가 갑자기 아이가 사라져버리는 일을 겪었다. 알고 보니 친부가 데려간 것이었다. 한달 동안 앓았을 정도로 힘들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범죄나 위법한 사항에 연루되지 않은 이상 아이를 데려올 수도 없었다. 아이는 결국 집을 나와 보육시설에 맡겨졌다. 친부의 허락이 없어서 ‘엄마’를 찾아올 수도 없다고 했다. 가끔 용돈을 받으러 오고 여자 친구가 생겼다고 소개하러 오기도 했다. 올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꾀죄죄한 행색에 눈에 띄게 퀭해진 얼굴 때문이었다. “집에서 따뜻한 밥 먹이면서 돌보고 싶지만 법이 온정을 막는다”고 했다.

위탁 가정의 목표는 ‘친가정 복귀’지만 현실에선 입양이나 다름없다. 친자식처럼 돌보기도 하거니와 친가정 복귀 비율이 17%밖에 안 된다. 위탁 가정에 남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위탁부모에게는 친권이 없고 동거인으로 등재되어 있다. 이 때문에 불편한 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휴대폰 개설부터 병원 진단서, 여권 발행 등에서 부모의 권한을 행사할 수 없다. 후견인 승인도 절차가 까다롭다. 박 회장은 “자식처럼 키우는데 사회에서 그 마음을 외면받는 기분이라고 표현하는 회원이 많다”면서 “10년 이상 키우면 그냥 친권을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한이는 요즘 이름을 기입할 일이 있으면 ‘박대한’ 대신 ‘김대한’이라고 쓴다. 본명이 ‘박대한’지만 위탁가정의 아버지 성이 김씨인 까닭이다.

이 대목이 가장 힘들다. 대부분 어린 나이에 위탁가정으로 오는 까닭에 친엄마, 아빠로 여기고 지내지만 위탁가정이라는 사실을 끝까지 숨길 수는 없다. 장민지(36) 대구가정위탁지원센터 팀장은 “교본대로 알린다 해도 아이들은 상처를 받기 마련”이라면서 “아이마다 성향과 성격이 다른 만큼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엄마’의 나이가 너무 많아 입양이 힘든 경우도 많다. 대한이는 다행히 ‘엄마’의 딸과 사위가 “입양하겠다”고 했다. 부모님이 아이를 위탁받아 키우는 모습을 보면서 위탁과 입양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 까닭이었다. 이처럼 위탁가정의 자녀들이 위탁부모로 나서는 경우가 적지 않다. 박 회장도 “딸과 사위가 가인이와 대한이를 친동생 이상으로 아껴주고 입양까지 생각하고 있다니 그저 고마울 따름”이라고 밝혔다.

장 팀장은 “가급적 친부모가 키우는 게 좋지만 학대, 방임 등으로 불가피한 경우가 많은 만큼 위탁가정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면서 “실무 담당자로서 위탁가정에 참여하는 분들을 더 격려하고 배려하는 차원의 제도적 발전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신정미 객원기자(사회복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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