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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연 트럼프, 조연 김정은, 시나리오 문 대통령…판문점 ‘깜짝 드라마’

입력
2019.07.06 10:00
수정
2019.07.06 10:02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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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부 카톡방담] G20 회의 앞두고 급히 조율, 회담장 1시간 전 마련 

 트럼프가 가장 남는 장사, 문 대통령 인내심 보여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30일 판문점 남측 자유의 집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회동을 마친 뒤 문재인 대통령 등과 함께 군사분계선으로 이동하고 있다. 판문점=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30일 판문점 남측 자유의 집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회동을 마친 뒤 문재인 대통령 등과 함께 군사분계선으로 이동하고 있다. 판문점=연합뉴스

일주일전 전세계 미디어가 한반도 판문점에 집중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미국 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군사분계선(MDL)을 넘어 북한 땅을 밟았다. 그리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함께 다시 남한 영토로 넘어와 판문점 남측 지역인 자유의 집에서 사실상 3차 북미정상회담을 가졌다. 자유의 집 앞에서, 그리고 이후 MDL에선 문재인 대통령까지 가세해 남북미 정상간 3자 만남도 이뤄졌다. 극적 드라마에 대한 반응은 엇갈렸다. ‘하노이 노딜’ 이후 표류하던 비핵화 회담이 돌파구를 마련했다는 평가가 있었지만, 사진찍기용 이벤트에 불과했다는 반론도 나왔다. 한반도 정세를 체크하기 위해 본보 외교안보팀과 베이징·도쿄 특파원이 카톡방에 모였다.

광화문 불나방(불나방)=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로 불렀고 김 위원장이 곧장 호응해 즉흥적으로 회동이 성사된 건가요. 리얼리티 쇼라는 시각도 있는데요.

쏘맥 넘어 바이주(쏘바)=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 둘 다 시치미 떼면서 쇼하는 것 같습니다. 아직 실무접촉이 진행되지 않은 상황에서 어떤 합의도 도출할 수 없으니 극적인 효과라도 높여 주목을 끌고, 서로 상대방을 빼도 박도 못하는 수렁의 한가운데로 끌어들이려는 물귀신 전술 아닐까요. 주연·감독 트럼프, 조연 김정은, 시나리오 구상 문재인 대통령으로 구성된 명절특집 단편 드라마를 본 느낌입니다. 트럼프의 깜짝 판문점 방문, 서로 등을 돌리고선 본체만체 하다가 갑자기 이산가족 상봉하듯 손을 잡는 게 가능할까요. 김 위원장이 마른 짚을 잔뜩 아궁이에 밀어 넣고 기다리는 사이, 트럼프의 트위터가 부싯돌에 불을 붙인 격이죠.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한미정상간 만남과 관련해서는 일정부분 조율이 없지 않았던 것 같지만, 서로 반신반의 했다고 봐야 합니다. 시간을 두고 준비했다기 보다는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를 목전에 두고 급박하게 논의가 오간 걸로 보입니다. 특히 장시간 북미정상간 대화가 이뤄질 거란 예상은 못한 걸로 보입니다. 말 그대로 사진 몇 장 찍고, 리얼리티 쇼 같은 몇 장면 만들면 다행이라고 봤을 텐데 말이죠. 실제로 판문점 자유의 집 2층에 마련된 회담장이 만남 1시간여를 남기고 마련됐고, 그마저도 의자는 평화의 집에서 가져왔을 정도라고 합니다. 성조기는 미국 측이 북한 국기는 북측이 각각 따로 가져왔다고 할 정도니까요. 미국식 홈파티를 열어도 이 정도로 급박하진 않았겠죠.

[저작권 한국일보]남북미 정상 주요 발언/ 김경진기자
[저작권 한국일보]남북미 정상 주요 발언/ 김경진기자

불나방=남북미 정상 만남에서 누가 가장 남는 장사를 한 걸까요.

판문점 메아리=트럼프 대통령이 아닌가 싶어요. 국제사회가 동토의 은둔자로 여기는 북한 최고지도자를 고작 트위터로 불러낸 형국이니까요. 회동 직전까지 국가기구인 외무성 공식메시지를 통해 태도를 전환하고 협상대표를 교체하고 대안을 마련하지 않을 거면 만날 생각을 말라고 했던 북한입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잃은 것 없이 실무협상 재개 약속을 김 위원장으로부터 받아냈습니다. 세계 양강 정상인 시진핑 주석과 트럼프 대통령을 잇달아 한반도로 불러들인 셈이니 김 위원장의 대내 권위도 꽤 올라갔을 겁니다. 어차피 협상은 해봐야 하는 거니까 아직 뭘 양보했다고 하기에도 애매하고요. 문 대통령도 인내하고 희생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저 초현실적인 장면을 현실로 만들어낸 게 문 대통령이죠.

불나방=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과 회동 뒤 표정이 밝았는데, 앞으로 북미협상이 잘 풀릴 거라고 짐작하게 하는 청신호일까요.

쏘바=미국의 비핵화 전략은 이미 다 까발려졌습니다. 영변뿐 아니라 모든 시설을 동결하는 것인데, 동결로 가려면 북한은 핵 시설을 전부를 신고해야 하죠. 이제 막 포커판에 들어와서 재미를 보려는데, 손에 쥔 카드를 다 공개하라니 환장할 노릇일 겁니다. 북한은 핵 시설 하나하나를 잘게 나눠 감질나게 내놓는 ‘살라미 전술’로 가야 협상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데, 미국이 요구하는 것처럼 ‘패키지 딜’로 가버리면 금세 빈털터리가 됩니다. 속까지 훤히 미국에 보여주면 북한은 벼랑 끝 전술이 아니라 벼랑 끝에 매달인 종이 호랑이로 전락할 수 있어요.

마음은 콩밭에=김 위원장의 표정을 보고 한 전문가는 “할말을 다하고 나온듯한 표정”이라고 평하더라고요. 지난 2월 수십 시간을 달려 베트남까지 가서 보기좋게 한방 먹은 김 위원장 입장에선 트럼프 대통령에게 서운하고 섭섭한 게 많았을 텐데, 그런 심정을 허심탄회하게 말했을 거란 거죠. 북미가 4개월간 끌던 교착 상황을 타개하긴 했지만 그날 만남이 향후 결과를 장담할 순 없을 것 같아요. 북미 정상이 아무리 서로 좋아해도 결국 합의문을 만들려면 치열한 밀당이 있을 테니까요.

[저작권 한국일보] 판문점 남북미 회동 전후 일지/ 김경진기자
[저작권 한국일보] 판문점 남북미 회동 전후 일지/ 김경진기자

불나방=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방북 직후 이런 일이 벌어졌습니다. 시 주석은 어떤 심경일까요.

쏘바=“그것 봐라, 내가 말한 대로 됐잖아”라는 심정이 아닐까요. 왜 김정은이 트럼프를 만나러 나왔을까요. 그건 자신감입니다. 평양을 방문한 시진핑이 김정은의 든든한 후원자를 자처하면서 불안감을 덜 수 있었습니다. 미국과 한판 뜨는데 그에 맞먹는 중국이 옆에서 지켜보고 있으니 호기롭게 링 위에 오를 수 있는 것이죠. 자연히 중국의 반응도 긍정적입니다. 이번 판문점 회동을 통해 트럼프가 대화로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려는 확고한 의지를 보여줬고, 북한도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중국이 줄곧 주창해온 ‘정치적 해결’이 비로소 본 궤도에 오른 모습입니다.

불나방=북한 수행원들도 관심을 끌었습니다. 대남기구인 노동당 통일전선부가 뒤로 물러나고 외교를 담당하는 내각기구인 외무성이 협상 전면에 나오는 형국인데, 미국이 원했던 거 아닌가요.

도렴동 흰둥이=북미 협상을 근거리에서 접해 온 외교관들 사이에서 외무성 인사들은 흔히 ‘말은 잘 통하지만 만만치 않은 협상상대’로 통합니다. 그간 협상을 이끌었던 김영철 전 통전부장은 시종일관 강경해서 협상 자체가 불가능했던 반면, 외무성 대표들은 미국 코드에 맞춰 능수능란하게 대화하면서도 북한에 유리한 협상 결과를 만들어내는 고도의 전략가라는 뜻이죠. 북미 실무협상을 지휘할 것으로 알려진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 과거 제네바 합의를 성사시킨 강석주 전 제1부상 등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미국 입장에선 반길 만한 소식이자만, 우리 정부로선 난감한 측면이 있어요. 대남·대미 창구 역할을 동시에 하던 통전부가 뒤로 물러남에 따라 당분간은 미국을 통한 북한 입장 청취가 불가피할 듯 합니다.

불나방=북일 관계가 뜻대로 안 풀리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이번 회담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요.

고구마와 사이다=일본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이 G20 도중 김 위원장과의 DMZ 만남을 전격 제안할 것이라고 파악하지 못한 듯 합니다. 외무성이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에 올린 글을 보고 정보수집에 나설 정도였으니까요. G20 의장국 정상이자 트럼프와의 밀월을 강조하는 아베 총리로선 체면이 구겨진 셈이죠. 다만 한국에서 ‘아베 패싱’이라 보는 것은 다소 좁은 시각입니다. 아베 총리는 3일 “지금 북한에 가장 영향력이 있는 사람은 시진핑 주석과 트럼프 대통령이라 생각한다”고 말했어요. 경제보복 조치까지 취한 마당에 문 대통령의 역할을 의도적으로 평가절하한 것이지만 아베 총리의 본심에 가깝다고 봐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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