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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사범님 덕에 金” “내가 제자를 잘 만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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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사범님 덕에 金” “내가 제자를 잘 만났죠”

입력
2019.07.06 04:4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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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亞게임 태권도 품새 금메달 

 印尼 데피아 선수ㆍ신승중 감독 

신승중(오른쪽) 인도네시아 태권도 품새 국가대표 감독이 지난달 말 자카르타 남쪽의 치부부르 훈련장에서 데피아 로스마니아 선수의 자세를 잡아주고 있다.
신승중(오른쪽) 인도네시아 태권도 품새 국가대표 감독이 지난달 말 자카르타 남쪽의 치부부르 훈련장에서 데피아 로스마니아 선수의 자세를 잡아주고 있다.

꿈 하나. 데피아 로스마니아(23)씨는 초등학교 때 오빠 권유로 태권도를 시작했다. 또래라면 누구라도 해야 하는 학교 운동 프로그램 중 하나였다. 어디까지나 체력 단련과 호신용 여가 활동이었다. 장래 희망은 의사였다. 대도시에서 신발가게를 하는 부모와 평일에 떨어져 사는 걸 빼면 부유하지도, 가난하지도 않은 평범한 소도시 가정의 5남매 중 셋째였다.

14세 때 시(市)대회 태권도 겨루기 종목에서 덜컥 1등을 했다. 태권도의 매력에 빠졌고 욕심이 생겼다. 꿈도 바뀌었다. 열심히 했으나 심장이 좋지 않고 체력이 달렸다. 부상에 시달렸다. 2년 뒤 품새라는 낯선 종목으로 바꾸라는 코치 권유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다. 그만 두고 싶었다. 그는 “가장 힘든 시기였다”고 고백한다. 흔들리는 꿈을 붙잡았다.

정확한 태권도 자세를 보여주고 있는 인도네시아 태권도 품새 종목 국가대표인 데피아 로스마니아 선수.
정확한 태권도 자세를 보여주고 있는 인도네시아 태권도 품새 종목 국가대표인 데피아 로스마니아 선수.

꿈 둘. 신승중(46)씨는 1999~2005년 국기원 국가대표 시범단이었다. 2011년까지 태권도 겨루기 국제 심판과 상임 심판을 지냈다. 2010년 전국대회 품새 종목에서 금메달을 땄다. 그렇게 유명하지도, 그렇다고 무명도 아닌 평범한 태권도인 가장이었다.

38세 때 그는 ‘언제쯤 오려나’ 품고 있던 꿈을 마주했다. ‘해외 태권도 정부 파견 사범’ 선발 공고가 그것이다. 해외 지도자라는 그의 꿈을 아내도 존중했다. 인도와 인도네시아 두 곳 중 그는 인도네시아를 택했다. “묘하게 끌렸다”고 한다. 시험에 합격한 그는 2011년 12월 인도네시아 태권도 품새 국가대표 감독으로 취임했다. 선수층은 얇았고 환경은 열악했다. 낙심하는 꿈을 다독였다.

신승중(오른쪽) 인도네시아 태권도 품새 국가대표 감독과 데피아 로스마니아(오른쪽 두 번째) 선수 등 국가대표들이 지난달 말 치부부르 체육관에서 훈련하는 모습.
신승중(오른쪽) 인도네시아 태권도 품새 국가대표 감독과 데피아 로스마니아(오른쪽 두 번째) 선수 등 국가대표들이 지난달 말 치부부르 체육관에서 훈련하는 모습.

그렇게 꿈과 꿈이 만났다. 서로를 당겼다. 5,000㎞라는 양국 간 거리, 23년이라는 나이 차, 각기 다른 국적과 언어, 성별은 꿈 앞에서 무기력했다. 감독과 선수로 첫 대면한 둘은 시나브로 체육관 한 지붕 아래서 두 나라를 아우르는 상생의 부녀(父女) 사이(인도네시아는 20대 초반이면 결혼하는 경향이 있다)가 됐다. 그리고 7년 뒤 한 사람은 아시아 최고의 선수, 한 사람은 아시아 최고의 지도자로 우뚝 섰다. 꿈과 꿈이 만나면 현실이 된다.

지난달 말 자카르타 남쪽 도시 치부부르 훈련장으로 둘을 찾아갔다. 바깥 기온 33도, 체육관 안은 가만 있어도 구슬땀이 흐르는 무더위에 훈련은 에누리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땀 범벅에 숨이 막혀서 오히려 기자는 인터뷰를 그만 두고 달아나고 싶을 정도였다. 둘은 “감독님의 가르침과 신뢰 덕분에” “선수의 자질과 성실, 근성 덕분에”라며 서로를 추어올렸다.

데피아 선수는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태권도 품새 개인전에서 금메달을 땄다. 인도네시아의 대회 첫 금메달이자, 인도네시아 태권도 역사에 새겨진 아시안게임 첫 금메달이다. 품새가 아시안게임 종목으로 정식 채택되고 첫 금메달이기도 하다. 신 감독은 인도네시아에 이 모든 영광을 안긴 지도자로 기록됐다.

인도네시아 태권도 품새 종목 국가대표인 데피아 로스마니아 선수가 지난달 말 자카르타 남쪽의 치부부르 훈련장에서 훈련 중 자세를 잡고 있다.
인도네시아 태권도 품새 종목 국가대표인 데피아 로스마니아 선수가 지난달 말 자카르타 남쪽의 치부부르 훈련장에서 훈련 중 자세를 잡고 있다.

품새가 자카르타 대회부터 아시안게임에 정식 채택된 건 종주국 우리나라의 노력 덕이 아니다. 신 감독은 “개최국 인도네시아 정부가 메달 가능성이 높은 품새를 밀어붙였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태권도가 올림픽 종목이고, 인도네시아 태권도 인구가 100만명에 육박할 만큼 저변이 확대돼 인도네시아 체육부에서 전략적으로 육성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그러나 감독 부임 당시만 해도 낯설었던 품새를 아시아 최강으로 키운 신 감독 자신의 공은 굳이 내세우지 않았다. 다만 “데피아처럼 역량과 재능을 갖춘 선수들을 만난 게 행운”이라고 자신을 낮췄다.

데피아 선수는 아시안게임을 석 달 앞두고 한국에서 전지훈련을 하던 중 아버지의 부고를 접했다. “합숙 훈련하느라 아버지와 늘 떨어져 있었고 임종도 지키지 못해 너무 슬프고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상을 치르고 사흘 만에 돌아와 훈련에 임했고, 결국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는 “품새를 잘 하는 편이 아니었는데 감독님에게 지도를 받은 게 더 열심히 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신 감독 부임 1년 뒤 데피아 선수는 국가대표로 선발됐고, ‘2012 콜롬비아 세계품새선수권’ 대회에서 동메달을 땄다.

현재 데피아 선수와 신 감독은 3일 개막한 ‘2019 나폴리 하계유니버시아드’ 대회 출전을 앞두고 있다. 첫 경기는 7일이다. 평소에 데피아 선수는 대학에서 체육교육학을 공부하고, 신 감독은 새로운 선수 발굴에 여념이 없다. 천영평 주 인도네시아 한국문화원장의 노력으로, 둘의 사연을 담은 한국 TV 프로그램이 최근 인도네시아 현지 방송에 짤막하게 매일 아침 소개되면서 다시 태권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인도네시아 태권도 품새 종목 국가대표인 데피아 로스마니아 선수가 지난달 말 자카르타 남쪽의 치부부르 훈련장에서 발차기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태권도 품새 종목 국가대표인 데피아 로스마니아 선수가 지난달 말 자카르타 남쪽의 치부부르 훈련장에서 발차기 자세를 취하고 있다.

품새는 국기원이 지정한 손과 발 동작을 정확히 구현해내는 종목이다. 1분30초간 태권도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경기로 체조를 떠올리면 된다. 5개 세부 종목(남녀 개인전, 남녀 단체전, 남녀 혼합복식)으로 나뉘며 5심제 또는 7심제로 이뤄진다. 심판당 정확성 40점, 표현력 60점을 매긴다. 겨루기가 타인과 싸운다면, 품새는 자신과 싸우는 셈이다.

신 감독이 소속된 해외 태권도 정부 파견 사범은 39개국에 나가있다. 모두 꿈과 꿈이 만나는 현장이다.

치부부르=글ㆍ사진 고찬유 특파원 jutda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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