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전시회에 나온 ‘전두환 부마항쟁 진압 개입’ 정황 문건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전시회에 나온 ‘전두환 부마항쟁 진압 개입’ 정황 문건

입력
2019.07.04 19:35
0 0
부마민주항쟁 당시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진압 작전 계획을 지휘한 정황을 보여주는 '군수사사' 제1집.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 제공
부마민주항쟁 당시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진압 작전 계획을 지휘한 정황을 보여주는 '군수사사' 제1집.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 제공

1979년 부마민주항쟁 진압 당시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개입한 정황이 담긴 문건이 나왔다.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은 이날 오후 서울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열린 ‘부마 1979, 유신의 심장을 쏘다!’ 전시회 개막식에서 이 같은 내용의 ‘군수사사’ 제1집을 공개했다.

육군군사사령부가 1981년 펴낸 군수사사 제1집에는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1979년 10월 18일 낮 12시 20분쯤 부산의 계엄 사령부를 방문해 계엄사령관 등과 함께 ‘데모 진압 작전’을 논의했다는 대목이 있다.

‘소요사태 수습은 초기데모 진압 작전이 가장 중요하며, 군이 개입한 이상 데모자에게 강력한 수단을 사용, 데모 재발을 방지하고 차량 시위 작전을 전개해 군의 위세를 과시해 타 지방으로의 데모 확산을 방지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는 내용의 기록이다.

실제로 전두환 보안사령관 방문 약 1시간 뒤인 오후 1시 30분쯤 계엄군은 해병 병력 3,401명 등을 동원해 계획된 무력시위를 벌였다. 군수사사 제1집에는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계엄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어 “초기 진압이 중요하며 최루탄을 충분히 조치하라”고 지시했다는 내용도 있다.

1979년 10월 부산과 마산의 시민ㆍ학생들이 박정희 유신독재에 대항한 부마민주항쟁은 유신독재의 붕괴를 아래로부터 촉발한 사건으로 평가 받는다. 하지만 한국 현대사 4대 민주항쟁(4ㆍ19혁명, 부마민주항쟁, 5ㆍ18민주화운동, 6ㆍ10항쟁) 중 유일하게 국가기념일로 지정되지 않았다.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은 항쟁 40주년을 맞아 이번 전시회를 기획했다. 오는 30일까지 서울에서 전시회를 연 뒤 광주 창원 부산에서도 차례로 개최한다.

정준기 기자 joon@hankookilbo.com

제보를 기다립니다

안녕하세요 제보해주세요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