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올해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의 영예를 안은 뒤 송강호를 비롯한 역대급 주연배우들 못잖게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이는 29년 차 배우 이정은이었다. 그는 박 사장네 입주 가사도우미 문광 역을 맡아 영화의 반전을 이끄는 강렬하고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다는 호평을 받았다. 유튜브에는 그가 연기한 ‘인터폰 장면’ 패러디가 연일 쏟아지고 있다.
□ 흔히 뛰어난 연기력으로 주연배우보다 더 주목받는 조연배우를 일컬어 ‘신스틸러(Scene Stealer)’라고 한다. ‘흥행 보증수표’로 불리는 영화배우 유해진ㆍ류승룡 등은 조연에서 명품 주연으로 우뚝 선 사례다. 위키피디아에서는 ‘장면을 훔치는 사람’이라는 직역에 가까운 해석까지 찾아볼 수 있다. ‘대중의 주의나 관심, 흥미를 독점함으로써 다른 배우들이 빛을 잃게 만드는 배우’라는 대목이 그것이다. ‘의도치 않게 주연배우에게 쏠려야 할 대중의 관심을 빼앗는 비주류 등장인물’이라는 해석도 보인다. 적절한 균형점이 필요하다는 얘기일 수 있겠다.
□ 신스틸러의 파생어쯤 될 법한 ‘심스틸러’라는 말도 흔하게 쓰인다. ‘마음 심(心)’자를 써서 영화나 드라마를 이끌어가는 남자배우가 여성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는 뜻을 담은 긍정적이고 호의적인 표현이다. 언제부턴가 그 대상이 여자배우로도 확대되면서 ‘사람의 마음을 훔친다’는 보편적인 의미로 쓰이고 있다. 배우들에겐 신스틸러이면서 심스틸러라는 평이 최고의 칭찬이겠다. 언뜻 봐선 ‘솔스틸러(Soul stealer)’라는 표현이 더 가까울 것 같지만, 요즘 젊은층엔 온라인 게임에 등장하는 뱀파이어의 필살기 중 하나의 의미로 더 친숙하다.
□ 지난달 30일 역사적인 남북미 3국 정상의 ‘판문점 회동’으로 어렵사리 북미 대화의 끈이 다시 이어졌다. 당장의 정치적 이유에서라도 만남이 절실했던 북미 정상을 기꺼이 앞세운 문재인 대통령은 ‘균형을 유지한’ 신스틸러라 할 만하다. 7개월 만의 최고 지지도라니 심스틸러까지는 아니어도 국민적 기대가 커진 건 분명하다. 구경꾼으로 전락했다는 힐난은 번지 수를 한참 잘못 찾은 것이다. 갈 길이 멀고 일희일비해선 안되겠지만, 그렇다고 보수언론계의 어른이 공개적으로 “내년 선거에 한국에서 집권당이 패배하고 미국에 새 대통령이 들어선다면 상황은 달라질 것”이라고 하는 건 민망한 일이다.
양정대 논설위원 torc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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