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니지 재스민 혁명의 영향을 받아 촉발된 2011년 리비아 민주화 시위는 42년 장기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를 중심으로 하는 기존의 권력 엘리트 그룹과 권력으로부터 소외당하고, 경제적으로 박탈감을 느끼던 민중 사이의 다툼인 듯했다. 유엔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ㆍ나토)가 ‘국민보호책임(R2P)’ 원칙과 리비아 민간인 보호, 인도적 지원을 명분으로 개입하고, 새로운 정부가 형성되면서 리비아는 안정화되어 갔다.
그러나 어느 시점부터 리비아에서의 민주화 시위는 이라크화 현상(정파 간 정치적 갈등)을 보이다가 최근에 시리아 내전과 유사한 양상(정파 간 무력 갈등)을 드러내고 있다. 2011년 제1차 내전이 잠시 안정화 되는 듯했으나 2014년부터 제2차 리비아 내전이 발생했고, 최근 더욱 악화되고 있는 것이다. 권력 엘리트와 민중 간, 동서 지역 간, 부족 간, 세속주의 세력과 이슬람주의 세력 간 갈등으로 내전이 확대되고 있고, 이 과정에서 이슬람국가(IS)와 여타 지방 군벌들이 각자의 이익을 추구하며 더욱 혼란스러운 상황이 됐다. 특히 석유와 석유 지대를 차지하기 위해, 그리고 난민 유입을 막기 위해 국내외 이해 당사자들이 개입하면서 리비아 내전은 시리아화 되고 있는 것이다.
중동연구자들은 중동에서 발생하고 있는 현안들, 특히 분쟁을 이해하고자 할 때 국내외로 복잡하게 연계된 다양한 정체성의 실체를 먼저 파악한다. 중동에서 발생하는 분쟁들은 ‘정체성의 위기’에서 촉발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중동 국가에는 부족주의를 표현하는 아싸비야 정체성, 아랍민족주의를 표현하는 까우미야 아라비아 정체성, 종교-종파를 표현하는 움마 정체성, 국가 건설과 국민 건설을 의미하는 와따니야 정체성, 그리고 서구 식민지경험, 석유지대주의 등 다양한 정체성이 혼재되어 있다.
이러한 정체성 위기는 ‘분쟁의 항상성’, ‘국가 내 국가’ 현상으로 나타난다. 1969년 혁명을 통해 집권한 카다피는 왕정 폐지, 아랍민족주의, 반제국주의, 이슬람사회주의, 외세 추방, Esso, Shell, ENI 등 석유산업 국유화, 부족주의 타파 등을 주요 정책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2011년 아랍의 봄 이후 이 모든 정책은 실패로 드러났고 결국 내전 사태로 급변했다.
2014년 시작된 ‘제2차 리비아 내전’은 올해 4월 리비아 동부 지역을 기반으로 하면서, 통일된 이념을 갖지 않은 리비아국민군(LNA) 지도자 칼리파 하프타르가 서부의 중심 도시이자 리비아의 공식 수도인 트리폴리에 대한 공격 명령을 내린 뒤부터 격화하고 있다. 트리폴리는 유엔의 승인을 받고 있는 파예즈 세라즈를 지도자로 하는 통합정부(GNA)가 통제하고 있었다.
리비아 내전의 ‘시리아화’ 가능성이 높은 이유는 각종 세력과 이해관계가 복잡다단하게 얽혀있는 탓이다. 겉으로는 여러 조직으로 구성된 하프타르 중심의 LNA와 유엔 승인을 받은 GNA 양대 세력의 갈등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사실 리비아 내전에는 국내 여러 이슬람주의 세력과 부족(리비아에는 140여개 부족 존재) 기반의 군벌 세력부터 프랑스, 미국, 러시아와 리비아를 식민 통치했던 이탈리아 등 서구 강대국들, 중동의 석유지대 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 아랍의 봄을 겪긴 했지만 현재 비교적 안정화된 이집트까지 여러 국가가 개입돼있다.
프랑스, 러시아, 사우디아라비아, UAE는 유엔의 승인을 받은 통합정부가 아니라 반정부 세력인 LNA를 지원하고 있다. 미국의 트럼프 정부는 애매한 입장을 취하다가 최근에 반(反)이슬람 세속주의를 내세우고 있는 LNA를 지원하는 듯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과거 미 중앙정보국(CIA)과 하프타르 사이의 인연도 있다.
올해 4월 중순 트럼프 대통령은 영국이 주도한 유엔의 리비아 즉시 휴전 결의안을 거부하고, LNA 총사령관 칼리파 하프타르와 통화한 사실을 밝혔다. 중동매체 알 자지라 방송은 “트럼프 대통령이 하프타르 사령관의 이슬람 극단주의자들과의 싸움, 석유자원 보존 노력을 칭찬했다”고 보도했다.
이슬람 테러 단체와의 전쟁을 지지하는 동시에, 미국내 물가 안정을 위해 북아프리카 최대 산유국인 리비아의 석유 생산을 통제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트럼프 정부의 대외정책 기조인 ‘미국 우선주의’를 리비아 정책에서도 보여준 셈이다. 이라크와 시리아에서와 마찬가지로 작금의 리비아 내전 사태는 국제사회가 자국 이익을 추구하는 국가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국제정치학자들은 ‘왜 분쟁이 발생하는가?’라는 질문에 인간의 생물학적-심리학적 원인, 국내 정치구조 원인, 무정부적 국제사회라는 원인 등을 거론한다. 그러면서도 ‘분쟁 원인의 복잡성’을 지적한다. 즉 어떤 분쟁이든 최소 두 개 이상의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한다는 것이다. 리비아 내전도 국내 각 조직 지도자들의 생물학적-심리학적 원인, 많은 부족, 종파, 세속 군벌들로 구성되어 있는 국내 정치구조, 리비아에서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려는 국제사회의 무정부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장기화, 시리아화 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영화 ‘사막의 라이언’의 주인공이자 이탈리아의 식민 정책에 대항해 싸운 리비아 독립운동의 영웅 ‘오마르 무크타르’를 가장 존경했던 카다피는 1969년 9월 무혈 군사 쿠데타로 집권했다. 그는 자신의 이상 국가를 그린 ‘그린 북’에서 ‘자마히리아(Jamahiriya)’ 즉 대중 직접민주주의와 이슬람식 사회주의의 혼합적 정치체제를 구상했었다.
리비아 핵 문제가 큰 이슈로 떠올랐던 2003년 4월 이후부터는 미국-리비아의 비밀 핵 협상에서 이른바 ‘리비아식 핵 해법’을 찾아냄으로써 양국 간 오랜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리비아의 개방화와 경제발전에 협력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10여년 후인 2011년 아랍의 봄 속에서 그는 붙잡혀 비참하게 살해됐다.
아랍의 봄과 카다피의 죽음은 리비아에 민주주의 발전을 가져온 것이 아니라 혼란과 내전을 초래했다. ‘아랍의 겨울’이 된 것처럼 보인다. 이라크, 시리아와 비슷한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중동, 아랍 지역에서 민주주의는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을 피우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것인가. 아랍에는 민주주의가 적합하지 않다는 ‘중동 예외주의’ 주장은 아직도 유효한 것일까. 리비아에서 지속가능한 평화, 회복 탄력적 평화는 가능할까. 1980년 ‘서울의 봄’이 좌절된 것처럼 보였으나 1987년 시민혁명, 2016년~2017년 촛불혁명을 통해 ‘서울의 봄’은 다시 찾아왔다. 20~30년 후 내전이 종식된 리비아에서도 ‘트리폴리의 봄’이 찾아올 것이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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