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 6월 10일 파블로 피카소는 무얼 했을까. 그는 스페인의 게르니카가 아닌 프랑스의 루아양에서 그림을 그렸다. 이탈리아의 무솔리니 정권이 프랑스와 영국에 선전포고를 했고, 이에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비겁한 배신’이라고 응수한 날이다. 2차 세계대전의 전운이 짙게 드리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파리와 프랑스 북부지방의 주민 수천 명이 피란 행렬을 시작했다. 웬걸, 루아양에 머물던 피카소는 태풍의 눈 안으로 들어갔다. 루아양에 독일군이 들어서자, 되레 파리로 돌아간 거다. 피카소의 작업실은 파리의 좌안(左岸), 그랑 오귀스탱 거리였다.
‘사랑, 예술, 정치의 실험: 파리 좌안 1940-50’은 센강의 왼쪽인 좌안에서 활동한 예술가들의 실록이다. 피카소뿐이 아니다. 시몬 드 보부아르, 장 폴 사르트르, 알베르 카뮈, 솔 벨로, 쥘리에트 그레코의 동시대 행적이 2차 세계대전 전후의 파리 좌안을 중심으로 섬세하게 교차하며 펼쳐진다.
예를 들면, 1946년 4월 말 미국에서 돌아온 사르트르가 보부아르의 소설 ‘모든 인간은 죽는다’를 읽고 미소 지었다는 일화, 그때 사르트르가 볼거리에 걸렸다는 소소해 보이는 사실까지 책은 적시한다.
왜 좌안에 초점을 맞췄을까. 실존주의, 페미니즘, 부조리극이 좌안에서 태동했다. 전후 10년 동안 파리의 지성들은 담배 자욱한 좌안의 호텔 방에서 문학과 보도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든 ‘뉴저널리즘’을, 시인과 극작가는 슬슬 초현실주의를 뒤로 하고 부조리극을 창조했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제2의 성’이란 페미니즘의 바이블을 출간한 보부아르뿐인가. 미국 잡지 뉴요커의 파리 특파원 재닛 플래너는 ‘근육에도, 번식 본능에도 지배받지 않는 제3의 성’을 생각한다. 전후의 정신적ㆍ문화적ㆍ사상적 재건의 중심에 좌안이 자리한 이유다.
파리와 런던을 오가며 활동하는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인 아녜스 푸아리에는 사실 검증을 하려 복수의 출처, 기사, 인터뷰, 기록 문서, 사진을 구할 수 있는 대로 수집해 이 책을 썼다. 푸아리에는 반세기 전 보부아르가 5년간이나 살았던 호텔 루이지안에 찾아가 보부아르가 남긴 말을 되새기며 이렇게 고백한다. “과거가 그토록 내 모든 감각을 공격할 줄은 전혀 몰랐다. 과거가 그토록 선명하게 살아나 만지고 냄새 맡고 심지어 맛까지 볼 수 있을 줄은 몰랐다.”
옮긴이의 말대로 저자의 치열함 덕분에 독자는 1940~50년 파리 좌안 지성계의 역경, 갈등, 동료애, 분쟁, 성공, 슬럼프, 허영, 질투, 고집, 야심, 열정을 생생하게 간접 경험할 수 있다. 그렇기에 간단히 읽을 수 있는 책 역시 아니다.
‘사랑, 예술, 정치의 실험: 파리 좌안 1940-50’
아녜스 푸아리에 지음ㆍ노시내 옮김
마티 발행ㆍ496쪽ㆍ2만 5,000원
김지은 기자 lun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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