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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급식 안 먹어도 괜찮아요”

입력
2019.07.05 04:4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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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성화고등학생 권리 연합회 제공
특성화고등학생 권리 연합회 제공

우리 어머니는 여러모로 불행한 세대다. 전쟁을 겪었고, 고단한 시대를 다 거쳤다. 심지어 IMF도 맞았다. 게다가 이 봉건적인 나라에서 여자로 살았다. 애도 넷이었다. 남편은 벌이가 시원찮았다. 뭐, 드릴 말씀이 없다. 한마디로 나라 복, 남편 복 다 없었다. 그래도 다른 엄마들이 거의 그랬듯이, 교육열 하나는 끝내줬다. 줄줄이 낳은 자식들이라 등록금 고지서가 살벌했다. 분기마다 동시에 서너 장씩 날아오는 그 등록금을 어떻게 다 메우셨는지 모르겠다. 물론 늘 독촉장과 구두 독촉(엄마, 등록금 안주면 나 학교 못가!)을 받았다. 궁핍이 일상인 건 그렇다 쳐도 미래가 안 보이는 삶을 어떻게 끌고 가셨는지, 놀랍기만 하다. 도시락 뒤치다꺼리는 좀 심했나. 기본 도시락이 두 개였다. 자식 셋이 중고교에 동시에 다녔으니, 여섯 개를 싸야 했다. 당시엔 도시락 내용물로 집안 살림 규모를 짐작하고도 남았다. 반찬의 질은 물론, 밥과 반찬의 비율도 살림 형편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못 살수록 반찬 양이 적고, 짰다. 그 반찬의 태반이 김치 종류였다. 더러 콩자반이나 오뎅볶음, 그것도 아니면 전날 저녁 반찬 중에 남은 게 재활용되는 것이 당시 분위기였다. 어머니는 그래도 도시락 반찬답게 장만을 하시는 편이었다. 양은 도시락 안에 도장지갑만 한 반찬통이 들어 있는 건 쓰지 않으셨다. 소시지나 햄은 언감생심이었으나 뭐라도 넉넉하게 담아서 쌌다. 물론 그 숫자가 매일 여섯 개, 어떤 날은 토요일도 싸야 했다는 점이 끔찍했지만.

어머니의 불운은 급식이라는 국가의 혜택을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점이다. 막내도 도시락 세대였다. 아, 내가 급식 덕을 보긴 했다. 30개월 동안 군대밥을 먹었다. 그건 여러 면에서 그다지 좋은 급식이 아니라는 걸 여러분도 아실 것이다. 자식이 군 급식을 먹는 동안 어머니의 노심초사는 필수였으니까. 어머니가 진짜 괴로웠던 도시락은 소풍 도시락이었다. 돌아가며 봄가을 소풍은 어머니에게 도시락 스트레스를 안겼다. 남과 비교되는 일에 살짝 긴장하시는 성격이어서 더 그러셨던 것 같다. 어머니는 간혹 백원짜리 현금과 소풍을 바꾸자고 제안하셨다. 돈 줄 테니 소풍 가지 말라는 거였다.

어머니들의 도시락 고행은 사실상 끝났다. 복지란 별 게 아니다. 엄마가 손수 싼 도시락도 좋지만, 학부모 일손 덜고 누구나 같은 밥을 먹으며 공평하게 살아보는 경험을 주는 것이기도 하다. 내가 일하는 식당에 파출부 아주머니가 간혹 오셨는데, 전직 학교 급식 조리원이셨다. 그 아주머니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초등학교 급식은 남겨서 힘들고(애들이 편식을 한다), 중고교는 모자라서 힘들고(엄청나게 먹어대니까), 어떤 학교는 저녁까지 해대느라 허리 부러지는 줄 알았다고 했다. 대량 급식은 산재 위험도 높고 근무 강도가 어마어마하다. 그런 격무를 대개 ‘여사님’으로 불리는 여성 노동자들이 담당한다. 장비도 크고 다루기 어렵다. 그러던 차에 아이 학교급식 보조 학부모로 현장에 가볼 일이 있었다. 예상대로 요리가 아니라 엄청난 프로세스를 가진 ‘생산현장’이었다. 거의 죽기살기로 붙어보는, 우리가 제철소나 조선소 노동현장 르포를 읽을 때 땀을 쥐게 되는 그런 수준의 전쟁터였다. 다 만들어도 배식이 끝날 때까지 노동은 끝나지 않았다. 게다가 선생님들도 같은 식사를 매일 하고 나 같은 ‘학부모’가 매일 나와 급식을 먹어보고 평가까지 한다. 그러니 그 노고에 감사와 존경을 바치지 않을 수 있는가.

어제 신문에서 아이들의 격려 시위 기사를 읽었다. 빵 먹어도 좋으니 잘 싸우고 오시라고, 아이들이 종이 피켓을 들었다. 울컥한 이들이 많았으리라. 그런 당신들, 모두 사랑한다.

박찬일 요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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