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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밤 나의 아름다운 도시… 그 가운데 원 없이,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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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밤 나의 아름다운 도시… 그 가운데 원 없이, 사랑

입력
2019.07.05 04:40
수정
2019.07.05 09:53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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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영 소설가. 김봉곤ㆍ창비 제공
박상영 소설가. 김봉곤ㆍ창비 제공

사랑이 어울리지 않는 장소나 계절이 있을 리 만무하지만, 여름의 도시만큼 사랑이 넘쳐흐르는 곳도 없다. 넘쳐흐르기에 마음껏 낭비하고, 그러다 어느 순간 텅 빈 손을 들여다보며 아련하게 추억에 젖기에 가장 적합한 곳. 도시에서 우리는 사랑한다. 구질구질하게, 또 절박하게, 이 계절에 너를 사랑하는 것 말고는 중요한 일이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박상영의 연작소설 ‘대도시의 사랑법’은 제목 그대로 대도시에서 각자 절실하게 사랑하는 이들의 네 이야기를 담고 있다. 2016년 문학동네 신인상으로 등단해 소설집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 한 권으로 지금 가장 첨단의 감수성이 된 작가의 두 번째 책이다. 뜨거운 인기를 증명하듯 출간 즉시 2쇄에 돌입했고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번역해 맨부커상을 수상한 데버러 스미스와 계약, 내년 영국 출간이 예정돼 있다.

퀴어 소설 장르를 한국 문학의 가장 선두에서 이끌고 있는 그답게, 네 편 모두 동성애자이자 젊은 작가인 영의 고군분투 사랑 도전기를 담고 있다. 소설들 속에서 영의 처지는 대학생에서 작가지망생으로, 변변찮은 직장인에서 마침내 소설가로 변한다. 그러나 어떤 상황이든 영은 끊임없이 반하고, 배반하고, 그리워하고, 체념하며, 지치지도 않고 사랑에 빠진다. 그때마다 영의 곁에 있는 사람들은 달라지지만 오로지 영만큼은 한사코 “그를 안고 있는 동안은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진 것 같았다”고 생각한다.

박상영의 소설은 단순히 퀴어의 연애담을 그리는 데 그치지 않는다. 연애 상대가 아닌 주변 인물과의 관계 역시 섬세하게 묘사해내며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간다. 소설 ‘재희’는 영이 대학시절 “정조관념이 희박하다 못해 아예 없는 편”이라는 공통점으로 친구가 된 여성 재희와의 우정과 연대를 그린다. 스토킹, 임신중절, 동거, 결혼 등 인생의 주요 사건들을 함께 겪어나가며 재희와 영은 “게이로 사는 건 때론 참으로 X같다는 것”과 “여자로 사는 것도 만만찮게 거지 같다는 것”을 깨우친다.

2019 젊은작가상 대상 수상작인 중편 ‘우럭 한 점 우주의 맛’은 가장 가까운 여성 인물이 가족이기에 더욱 복잡하다. 더군다나 그녀는 50대 중도우파 성향의 40년째 기독교인이며, 동성애자인 아들을 정신병원에 입원시켰던 이력에다 6년 만에 암이 재발해 투병 중인 엄마다. 엄마에 대한 트라우마를 떨쳐낼 수 없으면서도 간병할 수밖에 없는 영에게, 결국 사랑과 증오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가족과의 해묵은 갈등, 에이즈라는 질병과의 싸움, 편견과 경멸의 시선까지, 영이 소설에서 마주치는 것은 퀴어 소설에서 흔히 등장하는 인생의 난관이다. 그러나 독자가 식상함을 느끼는 대신 가벼운 스텝 밟듯 문장을 읽어 나갈 수 있는 것은 작가 특유의 입담 덕이다. 끊임없이 재고 떠보고 의심하고 확답을 요구하는 무수한 사랑의 말들이 소설 곳곳에서 빛을 발한다. 그리하여 “둘 중에 살점이 더 투명한 쪽이 광어입니다. 더 쫄깃한 쪽이 우럭.” “그럼 오늘부터 저를 우럭이라고 부르세요. 쫄깃하게.” “아니요, 광어라고 부르겠습니다. 속이 다 보이거든요.” 같은 대화에 슬그머니 웃음 지을 수밖에 없다.

대도시의 사랑법

박상영 지음

창비 발행ㆍ344쪽ㆍ1만 4,000원

책은 일반 버전과 동네서점 버전 두 가지 버전으로 출시됐다. 일반 버전의 표지는 유명 시티팝 일러스트레이터인 나가이 히로시의 작품이, 동네서점 버전은 2016년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의 게이 나이트클럽에서 발생한 총기 난사 사건을 추모하는 ‘Pray for Orlando’ 포스터가 장식한다. 작가는 책의 말미 영이라는 인물에 대해 “지금 글을 쓰고 있는 나인 동시에 어쩌면 나와는 아주 동떨어진 인물이고, 당신이 잘 알고 있는 누군가이기도 하며, 심지어는 힘겨워 외면하고 싶었던 당신 자신의 모습일 수도 있다”고 썼다. 여름밤 이 도시에는 이토록 다양한 모습의 사랑이 생동하고 있다.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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