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과잉진료 유발하는 진료성과급
※‘메디 스토리’는 의사, 간호사 등 의료계 종사자들이 겪는 애환과 사연, 의료계 이면의 이야기를 전달합니다. <한국일보> 의 김치중 의학전문기자가 격주 월요일 의료계 종사자들의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한국일보>
지난해 1월 서울대 의대 성형외과교실 소속 교수 6명이 동료 교수 A씨가 5년 넘게 수술비용을 환자들에게 과도하게 청구했다며 병원의 진상조사를 요구하는 보고서를 병원장에게 제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A교수는 건강보험 적용을 받는 선천성 거대모반(점) 절제술을 한 다음 이어지는 비급여 흉터성형술을 시술해 환자들에게 과다한 비용을 청구했다. A교수는 “성형외과 특성상 급여와 비급여가 혼재돼 있어 이를 구분하기 쉽지 않다”고 반박했지만 동료 교수들은 A교수가 인센티브 때문에 과도한 수술비용을 청구했다고 주장했다. 익명을 요구한 이 병원 성형외과 교수 B씨는 “의사는 양심과 의학적 판단에 따라 환자를 치료해야 하지만 진료 실적에 따라 인센티브가 지급되면 과잉진료를 할 수밖에 없다”고 털어놓았다. 의사들에게 동기부여를 하기 위해 도입된 인센티브 제도가 병원의 수익을 짜내기 위한 도구로 전락, 의사들을 과잉 진료로 유도하고 있다.
◇’3배 차이’ 인센티브에 과잉 진료
국내 의료기관들이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한 시기는 대형병원들의 경쟁이 심화되기 시작한 2000년대 초반이다. 사립 대학병원은 물론 이제는 국공립병원들까지 인센티브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병원들이 자료를 공개하고 있지 않지만, 14일 한국일보가 입수한 서울 한 대학병원의 내부 자료에 따르면 진료 실적에 따라 지급되는 인센티브 금액 차이는 3배 이상이었다.
의사들은 임상연구, 다학제협진 참여, 중증수술, 외래 및 입원환자 수, 검사의뢰 건수 등을 통해 산출된 인센티브 금액을 나눠 받았다. 하지만 의사들도 누가 얼마나 받는지는 모른다. 개인별 인센티브 성적이 공개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병원에서는 6개월마다 인센티브를 지급했는데 외과 교수인 C씨의 인센티브 금액은 2,600만원이었지만 같은 직급인 외과교수 D씨의 인센티브 금액은 690만원에 불과했다. 이 병원 교수 E씨는 “환자들에게는 ‘보다 객관적이고 정확한 치료를 위해서’라고 설명하지만 실은 인센티브 때문에 피 검사, 컴퓨터 단층촬영(CT), 자기공명영상촬영(MRI) 등 수익이 나는 검사들을 반복적으로 시킨다”고 말했다. 병원 측은 “교수별로 진료성적을 산출해 기본급에 추가로 인센티브를 주고 있다”면서도 구체적인 차이는 공개하지 않았다. 수도권의 한 대학병원 교수는 “정확한 액수를 알 수는 없지만 매달 인센티브를 주는 우리 병원은 적게는 50만원에서 많게는 200만원까지 차이가 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귀띔했다.
의사들에 따르면 가장 손쉽게 진료 실적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은 ‘패키지 처방’이다. 의사들이 ‘쭉 긁는다’고도 말하는 패키지 처방은 예를 들어 환자가 기관지가 좋지 않다며 기침, 가래 등을 호소할 경우 엑스레이 촬영, 객담검사, 생화학검사 등 15개 정도의 검사를 받도록 하는 식이다. 서울 한 대학병원의 교수는 “환자별, 진단별, 진료과별로 패키지 처방이 가능하다”며 “비급여 처방을 많이 하는 게 가장 좋지만, 건강보험이 된다 해도 해도 수가를 받을 수 있는 만큼 최대한 많이 처방을 해 실적을 올리고 있다”고 귀띔했다. 그는 “경증 환자라도 증세가 의심이 되면 일단 가능한 검사나 촬영을 다하고 보자는 생각이 만연해 있다”고 지적했다.
인센티브의 유혹에 빠진 일부 의사들이 과잉 진료를 일삼고 있지만 정작 자신이 어떻게 치료를 받았는지 알 수 없는 환자들은 답답함을 호소한다. 5년 전 담낭에 비종양성 용종(polyp)이 발견돼 6개월마다 서울의 한 상급종합병원에서 정기검진을 받다가 최근 집 근처 종합병원에서 검사를 받았다는 정모(78)씨. 정씨는 “대학병원 다닐 때에는 갈 때마다 MRIㆍ초음파 검사를 해 검사비용으로 90만원 정도를 냈는데 병원을 옮겼더니 초음파 검사만 실시해 5만원만 냈다”며 “몇 년 동안 안 해도 될 비싼 검사를 한 걸 생각하면 배신감마저 든다”고 말했다. 실제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에 따르면 42개 상급종합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환자들의 본인부담금은 2016년 16조4,843억원에서 2017년 17조8,041억원, 2018년 19조1,523억원으로 증가세다.
◇“인센티브 많이 받아야 ‘명의’”
이처럼 많은 부작용을 낳고 있지만 인센티브 제도의 폐지는커녕 개선도 요원하다는 게 의사들의 생각이다. 오히려 많은 인센티브를 받은 의사가 ‘명의’ 대접을 받는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의 한 대학병원 교수는 “병원 경영진은 물론이고 의사사회에서도 인센티브를 많이 받는 의사가 ‘굿 닥터’로 칭송 받고 있는 분위기”라며 “시니어, 주니어를 가리지 않고 인센티브를 더 많이 받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이유 중 하나”고 말했다. 그는 “요즘은 병원 경영진이 압력을 넣지 않아도 의사들이 알아서 인센티브를 위해 과잉 진료를 하고 있다”며 “예전에는 정년을 앞두면 후배 의사들에게 자리를 내주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졌지만, 이제는 정년퇴직하는 날까지 메스를 잡고 수술을 해야 인정 받는 시대가 됐다”며 씁쓸해했다.
서울의 또다른 대학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아무리 인센티브가 좋다지만, 자궁 내 근종이나 만성염증, 악성종양 등이 있는 경우 복강경 수술을 하면 비용이 150만~200만원 정도인데 환자에게 1,000만원대 비용이 드는 로봇수술을 굳이 권하는 교수들도 많다”며 “선배 의사들이 ‘정도껏 하라’고 지청구를 해도 듣는 시늉도 하지 않는다”며 탄식했다.
병원에서 인센티브 제도를 고집하는 이유는 의사들을 통제하기 위해서라는 주장도 있다. 경기도 소재 한 대학병원 교수는 “인센티브 지급 현황을 보면 한눈에 진료과별, 개인별로 진료 실적을 꿰뚫어 볼 수 있다”며 “특정 진료과 진료 성적이 떨어지면 병원장이 진료과장에게 압력을 가하고, 진료과장이 해당 진료과 교수들을 압박해 진료 성적을 올리는 것이 병원의 구조”라고 설명했다. 그는 “의사들이 해외학회에 참석하고 돌아온 다음 날에도 외래 환자를 볼 만큼 인센티브에 신경 쓰고 있다”고 말했다.
의사들의 불만에도 불구하고, 인센티브에 대한 병원 경영진의 관점은 전혀 달랐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병원장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열심히 일한 사람에게 더 많은 혜택을 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인센티브 제도 자체가 문제라기보다 제도를 악용하는 사람들이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수도권 소재 한 대학병원 기획조정실장은 “솔직히 정년이 보장돼 느슨해질 수 있는 교수들을 단기간에 가장 효과적으로 일하도록 하는 제도가 인센티브제”라고 털어놓았다.
인센티브 제도의 남용으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 몫이다. 김준현 건강세상네트워크 대표는 “인센티브 제도가 병원 이익을 창출하기 위한 제도로 변질될 경우 파생되는 모든 비용은 고스란히 국민 부담이 된다”며 “건강보험 재정은 물론이고 국민 의료비용 증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만큼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대병원의 한 교수는 “적어도 중증환자 치료와 후학 양성에 심혈을 기울여야 하는 대학병원들은 인센티브 제도를 중단하는 것이 환자나 의사, 병원을 위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김치중 기자 cj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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