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장이 가족의 비극적 삶을 통해 부조리한 사회 현실을 고발한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나온 것이 1975년. 40여년 뒤, 난장이 가족의 삶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공장에서 쫓겨난 난장이의 아들은 일회성 일자리를 전전하는 ‘알바생’이 되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개발이 멈추지 않는 도시에 사는 한 철거민의 처지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대량해고에 맞서는 방식은 여전히 파업 말고는 별 도리가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2010년대를 살아가는 난장이 가족의 이야기는 누가, 어떻게 쓸 수 있을까.
장강명 작가가 그 역할을 자처하고 나섰다. 신간 연작소설 ‘산 자들’은 2010년대 한국사회의 노동과 경제, 소시민의 삶을 10개의 이야기로 스케치한다. 앞서 ‘한국이 싫어서’ ‘댓글부대’ ‘당선, 합격, 계급’ 등 소설과 르포의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당대의 현실문제를 기록해온 장기가 다시 한번 발휘됐다. 지난달 27일 서울 강남구 민음사 사옥에서 만난 장 작가는 “2010년대에는 2010년대의 노동환경이 있는데, 여전히 사태를 바라보는 틀은 과거에 머물러 있는 때가 많다”며 “갑과 을을 명확히 나누기 어렵고,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오늘날의 노동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소설은 각각 ‘자르기’ ‘싸우기’ ‘버티기’ 세 개의 장으로 나뉜다. 중소기업에서 잡무를 맡고 있는 비정규직 근로자를 자르는 일에서부터(‘알바생 자르기’), 100m 남짓 간격으로 들어선 빵집 세 곳의 승자 없는 치킨 게임(‘현수동 빵집 삼국지’), 무제한 스트리밍 시대에 살아남아야 하는 뮤지션까지(‘음악의 가격’), 결국 우리의 노동현실을 간명하게 범주화하면 이 세 가지라고 말하는 듯하다.
제목이 된 ‘산 자들’은 경영악화로 정리해고 바람이 불어 닥친 공장을 그린 ‘공장 밖에서’에서 따왔다. 해고 대상자가 된 사람들은 자신을 ‘죽은 자들’로 칭하고, 해고 통보를 받지 않은 이들을 ‘산 자들’로 부른다. 그러나 결국 ‘산 자’도 ‘죽은 자’도 함께 뒤엉켜 사는 것이 현실이다. 이 때문에 그의 소설에는 착취하는 절대악이나 핍박당하는 절대선이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시스템’이 있다. “개인에게 압박을 가하는 시스템의 존재에 늘 관심이 있었어요. 가게 두 곳이 있는데 한 곳이 더 생겨 누군가는 죽어야만 하는 상황이 있다면, 결국 사람들을 사지로 몰아넣는 것은 ‘골목상권의 논리’라는 시스템이에요.”
‘산 자’의 편도, ‘죽은 자’의 편도 들지 않는 것은 스스로를 ‘이성적 회의주의자’라고 부르는 작가의 성미에서 비롯한다. 익히 알려졌듯 그는 동아일보 출신이다. 보수성 짙은 매체 출신이라는 이력이 노동소설을 쓰는데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조심스레 물으니, “어느 쪽이냐 묻는다면 나는 보수”라 답한다. 단, 그가 정의하는 ‘보수’는 ‘방향’보다는 ‘일관성’의 문제다. “제가 생각하는 보수의 가치란 상황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 보편도덕을 지향하는 거예요. 한국사회는 비포장 도로에요. 곳곳에 웅덩이가 있고, 바로 옆이 절벽이죠.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는 알아요. 다만 앞을 살피며 조심조심 가자는 거죠.”
일주일 간격으로 SF소설집 ‘지극히 사적인 초능력’(아작)도 함께 나왔다. 가장 코앞의 현실과, 가장 아득해 보이는 허구를 동시에 써내는 비결이 궁금했으나, 정작 장 작가에게 ‘닥친 미래’와 ‘닥칠 미래’라는 차이만 있을 뿐 본질은 같다. “언젠가 무인자동차가 상용화 되면 대리기사들은 일자리를 잃겠죠. 지금의 ‘타다’와 택시기사들의 싸움과 똑 같은 싸움이 무인자동차와 대리기사 사이에 일어날 거예요. 기술은 누군가의 비즈니스고, 이에 영향 받는 개인들이 생길 수밖에 없어요. 10년쯤 뒤에 내면 ‘산 자들’에 실렸을 얘기지만 지금 냈기 때문에 SF가 된 거라고 봐요. 그걸 순발력 있게 파악해 서사로 만들어내는 게 저의 작가로서의 장점 아닐까요?”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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