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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ㆍ주스로 대체하고, 단축 수업하고… 2000여개 학교 급식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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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ㆍ주스로 대체하고, 단축 수업하고… 2000여개 학교 급식 멈췄다

입력
2019.07.03 18:39
수정
2019.07.03 23:26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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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비정규직 총파업 돌입 첫날… 전국 2만2000여명 파업 참가

학부모들 “맞벌이 많은데” 불만… 일부선 “처우 개선해야” 불편 감수

급식조리원과 돌봄전담사 등이 소속된 학교 비정규직 노조가 총파업에 들어간 3일 서울 시내 한 초등학교 급식실이 텅 비어 있다. 이한호 기자
급식조리원과 돌봄전담사 등이 소속된 학교 비정규직 노조가 총파업에 들어간 3일 서울 시내 한 초등학교 급식실이 텅 비어 있다. 이한호 기자

3일 낮 12시 서울 중구 A초등학교 급식실에는 적막감이 감돌았다. 평소였다면 학생들의 점심식사를 위해 급식조리원들이 분주히 움직였을 조리실은 불이 꺼진 채 텅 비었고 학생들이 앉는 식탁에는 소보루빵과 브라우니, 디저트용 젤리와 팩에 담긴 포도주스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이날 학교 급식실 종사자 4명이 모두 파업에 참가하자 학교에서 내놓은 대체 급식이었다. 점심시간에 맞춰 이내 급식실로 내려온 학생 49명은 평소와 다른 환경이 신기한 듯 재잘대며 빵 봉지를 뜯었다. 집에서 싸 온 도시락을 함께 먹는 학생도 있었다. 300명에 가까운 나머지 학생들은 각자의 교실에서 대체 급식으로 점심을 해결했다.

전국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이날 임금인상과 처우개선 등을 요구하며 3일간의 총파업에 나섰다. 교육부는 전국 1만585개 국공립 유치원과 초중고교에서 근무하는 비정규직 노동자(15만2,181명)의 14.4%인 2만2,004명이 파업에 참가한 것으로 파악했다. 돌봄전담사, 교무행정사 등 학교 내 다양한 직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파업에 나섰지만 숫자가 가장 많은 급식조리원(2018년 기준 4만7,000여명)들의 빈 자리가 가장 컸다. 교육부 집계에 따르면 이날 전국 2,802개 학교에서 급식이 중단됐다. 이에 따라 급식을 하는 전국의 학교(1만438개) 4곳 중 한 곳이 빵과 우유 등을 제공하는 대체급식을 하거나 단축수업을 했다. 기말고사로 급식을 아예 하지 않은 학교(745개교)도 있었다.

전국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연대회의)가 역대 최대 규모의 학교 비정규직 파업을 예고했지만, 학교 현장에서 큰 혼란은 발생하지 않았다. 사전에 학부모들에게 충분히 공지가 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총파업에 나선 3일 오후 서울의 한 초등학교 급식실에서 학생들이 대체 급식으로 나온 빵과 주스를 먹고 있다. 이한호기자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총파업에 나선 3일 오후 서울의 한 초등학교 급식실에서 학생들이 대체 급식으로 나온 빵과 주스를 먹고 있다. 이한호기자

급식실 조리원 12명 중 9명이 파업에 참가해, 빵과 주스 등 대체급식을 제공한 경기 수원시 신풍초 관계자는 “(파업 참가자들이) 다행히 지난달 26일 파업참여 의사를 알려와 학부모운영위원회 등과 협의해 파업이 예고된 사흘간의 대체식단을 마련해 큰 혼잡은 없었다”며 “점심시간도 기존과 같이 낮 12시20분부터 오후 1시10분까지로 지연되거나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비슷한 시간 경기 포천의 한 중학교 학생들은 기존 식단이 아닌 대체 식단에 오히려 만족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3학년 이모군은 “빵에 치킨까지 나와 친구들과 즐겁게 식사를 했다”며 “급식 종사자분들의 처우 개선을 위해 좋은 일이라고 하니 이 정도 불편은 아무렇지도 않다”고 말했다.

대체 급식 대신 오전수업만 하는 단축수업을 한 학교도 있었다. 급식조리원 8명 전원과 돌봄교사 3명 중 1명, 행정실무사 2명이 파업에 참여한 서울 서초구 B초등학교 앞 인도는 하교가 시작되는 낮 12시 즈음부터 아이를 데리러 온 학부모 200여명으로 북적였다. 낮 12시 40분 5교시 종료 종이 치기 무섭게 학교 주변은 쏟아져 나온 학생과 아이를 찾으려는 학부모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인근 식당은 점심식사를 하려는 초등학생과 학부모들이 몰려 때 아닌 ‘파업 특수’를 누렸다. 이 학교는 방과 후 활동을 하는 학생들에게 도시락을 싸 오라고 했지만 학생 대다수는 인근 식당에서 밥을 먹고 학교로 돌아갔다.

학부모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이 학교 1학년 학부모 김숙인(42)씨는 “당황스럽고 불편하지만 불합리한 환경은 당연히 개선돼야 한다”며 “학교에서 일하는 분들의 처우가 나아지면 우리 아이들에게도 좋은 일”이라고 파업에 따른 불편을 감수하겠다는 입장이었다. 40대 다른 학부모도 “나 역시 파업한 적이 있다”면서 “파업은 다 이유가 있어서 하는 것”이라고 파업에 대한 지지의사를 보였다. 온라인 상에선 ‘파업 지지 인증샷’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특성화고 학생 대표 단체인 특성화고 권리연합회는 파업 전날인 2일부터 “불편해도 괜찮아요” “밥 안 준다 원망 말고 파업이유 관심 갖자” 등 파업 노동자들을 응원하는 학생들의 응원메시지를 공개했다.

하지만 일부 학부모들은 불만을 토로했다. 특히 급식 중단으로 맞벌이 부부 등의 고충이 커지는 것을 감안하면 정부의 대책 마련이 부족했다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초등학생 학부모 김모(42)씨는 “맞벌이 하는 학부모도 많고 늦게까지 방과 후 활동을 하는 아이도 있는데 어제서야 급식중단 통지를 받았다”며 “빵보다는 더 영양가 있는 대체 급식을 준비하거나, 학부모들이 대처할 수 있는 시간이 충분했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학부모 백호경(45)씨도 “파업 자체는 나름의 이유가 있을 테니 이해를 한다”면서도 “학부모들이 모인 단체 대화방에서는 ‘반차를 써야 하나’ 고민하는 분들이 많았다”며 “미리 소통하고 충분한 대책을 세우지 못한 점이 아쉽다”고 말했다.

이날 올해 들어 노동계 최대 규모 파업이 진행됐지만, 3일간으로 예정된 파업이 연장될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연대회의와 교육부의 입장 차가 크기 때문이다. 이미선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 서울지부장은 “(상황에 따라)파업 기간 연장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당장 마땅한 대책을 제시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김동안 교육부 교육근로지원팀장은 “노조와의 교섭과정에서 향후 충실히 협의해 나갈 것을 제안했지만 수용되지 않았다”며 “노조에 대승적 치원의 협의를 재요청한다”고 밝혔다. 교육부는 9일과 10일 연대회의 측과 교섭이 예정돼 있는 만큼 그 전이라도 관련 논의를 이어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총파업 이틀째인 4일에도 전국 2,056개 학교(기말고사로 미실시 학교 제외)가 급식을 제공하지 않는다. 3일 대비 학교 700곳 이상이 정상 급식 체제로 돌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교육부 집계 결과 이날도 파업 참가자 수는 2만575명(13.6%)에 달할 것으로 보여 교육당국과 노조 간 갈등은 계속될 전망이다.

조아름 기자 archo1206@hankookilbo.com

정준기 기자 joon@hankookilbo.com

임명수 기자 s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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