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 상황. KT 혜화국사 지하 통신구 폭발물 테러 발생.”
3일 오후 3시 비상호출이 접수되자 서울 도심 한복판에 있는 종로구 KT 혜화국사로 경찰과 기동타격대, 119 구조대가 신속하게 출동해 테러범 생포와 부상자 후송 작업에 나섰다. 다음은 통신구가 얼마나 피해를 봤는지 확인하는 피해상황 분석 단계. 통신구 속 케이블이 불에 타는 바람에 광케이블과 동케이블이 다수 끊기면서 인근 종로구, 중구, 동대문구 3개 지역 통신 서비스는 일제히 마비돼 버렸다. 피해 사실은 KT로부터 곧바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 전해졌고, 즉시 정보통신 위기경보 ‘경계’ 단계가 발령됐다.
혜화국사 주변 도로로는 각종 설비를 실은 차량들이 속속 진입해 들어왔다. 사고로 무선 16만, 인터넷 19만, IPTV 12만 회선에 영향을 주고 있는 상태. 안테나를 실은 이동기지국 차량들이 곳곳에 배치돼 반경 1㎞ 내 KT 가입자들이 불편 없이 인터넷을 쓸 수 있도록 무선 전파를 쐈다. 혜화국사로 흐르던 데이터 흐름을 구로국사로 돌리는 조치도 즉시 시행했다. 경쟁사인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도 타사 가입자 접근을 차단하던 와이파이를 전면 개방하는 등 피해 복구에 함께 손을 보탰다. 그 사이 KT 현장 긴급복구조는 이동식 전원 공급 장치를 실은 차량과 임시 기지국을 연결해 끊겨버린 초고속인터넷과 무선, 인터넷(IP)TV 등 서비스별 복구작업에 들어갔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3일 오후 KT혜화국사에서 KT·국가정보원·군·소방서·경찰서 등 관계 기관이 참여해 ‘2019년 통신재난 대응훈련’을 가졌다. 지난해 11월 KT 아현지사 통신구에서 화재가 발생하면서 서울 서북부 5개구와 경기 고양시 일부 지역 수백만 명이 이틀 넘게 유ㆍ무선통신과 단절되는 재난급 ‘블랙아웃’이 발생했던 경험을 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해 마련된 자리. 재발 방지를 위해 개선한 각종 시스템과 사고 매뉴얼 개선을 직접 시험해보는 민관군 통신재난 대응 합동 훈련의 장이었다.
이날 훈련에서는 과기부와 통신3사, 혜화 경찰서, 종로소방서, 육군 56사단 등 민관군 합동으로 △경보발령 △긴급복구 △통신사간 협력체계와 이용자 보호체계 발동 △서비스 분야별 복구 및 복구확인 등의 단계가 순조롭게 진행됐다. 특히 화재로 ‘먹통’이 된 회선을 우회시키는 작업이 빠르게 진행되지 않아 피해를 키웠던 아현 화재 때와 달리 다양한 대체 설비가 신속하게 투입되는 모습을 보여줬다는 평가가 내려졌다.
비상 상황 발생 직후 KT는 위성으로 과기정통부와 화상회의를 열어 영향 받을 가입자 규모 등 피해 상황을 파악해 전달하는데 역점을 뒀다. 과기정통부는 3개 시ㆍ구ㆍ군 이상에서 통신재난이 발생한 상황이라고 인지되자마자 ‘경계’ 경보를 주저 없이 발령했다. ‘경계‘는 기존에 발령하던 ‘주의’보다 강화한 기준이다. 이후 경찰서 등 유관기관과 통신사 등에 상황이 공유되고, 중앙사고수습본부 설치까지 신속하게 진행됐다.
긴급복구도 빠른 시간 내 이뤄졌다. 피해를 얼마나 최소화할 수 있을지를 결정짓는 중요한 단계다. 작동을 멈춘 국사가 담당하던 트래픽을 정상적인 국사로 돌리는 우회 통신경로 소통 작업이 진행됐으며 이동기지국 차량들이 유동인구 지역 중심으로 배치돼 현장에서 처리할 수 있는 데이터 양을 최대한으로 높이는 방법이 쓰였다.
하지만 우회하는 국사와 이동지기국이 감당할 수 있는 트래픽이 제한돼 있어 통신사간 협력체계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게 과기정통부의 설명이다.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 등 타사의 와이파이 개방이 이 단계에 해당하는데 이날은 와이파이뿐 아니라 LTE 등 신호도 KT 가입자가 잡을 수 있도록 하는 로밍 서비스가 시범적으로 선보였다. KT 관계자는 “모든 가입자마다 고유 식별번호가 있어 타사 가입자는 신호를 못 잡도록 하지만 이를 개방하는 것”이라며 “이러한 비상시 로밍 인프라는 3사간 협력을 통해 올 연말 구축이 완료된다”고 설명했다. 동시에 이용자 보호체계 일환으로 LTE 라우터(무선 신호 발생 장치) 배포도 포함됐는데, 상인들의 카드결제기가 유선망 장애로 작동하지 않을 때 라우터의 LTE 신호로 정상 작동을 지원하게 된다. 급작스레 카드 단말기를 이용한 계산이 안 되는 혼란을 막기 위한 조치다.
유영민 과기정통부 장관은 “통신재난 대응은 관련제도 개선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며, 재난대응 인력이 재난이 발생한 긴급한 상황에서 개선된 사항들을 바로 적용할 수 있을 때 의미가 있다”며 “오늘 훈련에서 드러난 문제점은 보완하고 앞으로도 정기적인 훈련을 실시해 통신재난 대응체계를 더욱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맹하경 기자 hkm0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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