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달 29일 오사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폐막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자유무역을 강조한 공동성명을 성과로 강조하고 있다. 오사카=AP 연합뉴스

오사카(大阪)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폐막 다음날인 지난달 30일 일본 언론들의 평가가 궁금했다. G20 정상회의를 자축할지 미중 무역갈등이나 북미 정상의 비무장지대(DMZ) 회동에 초점을 맞출지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그러나 예상은 빗나갔다. 일요일 오전 시선을 붙잡은 건 일본 정부가 한국을 겨냥한 수출규제 강화 조치를 다음날 발표할 것이란 보도였다. 선전포고 없는 급습이었다.

방심하고 있던 한국 정부는 허둥댔다. 관계부처는 “해당 보도의 진의를 파악하고 있다”고만 했다. 청와대는 당일 열린 한미 정상회담과 남ㆍ북ㆍ미 정상 간 판문점 회동으로 바빴다. 일본 정부는 컨트롤타워 없는 모습을 보며 한국의 의표를 정확히 찔렀다며 미소를 지었을 법하다.

이러한 풍경은 기시감을 떠올리게 한다. 1941년 12월 7일 하와이 진주만 미 해군 태평양함대 기지는 한가로운 일요일 오전을 맞이하는 중이었다. 그러나 당시 도조 히데키(東條英機) 내각이 결정한 일본 폭격기들의 갑작스러운 공습으로 진주만에 정박해 있던 미 군함 등 함선 18척이 침몰하고 미군 2,386명이 전사하는 큰 타격을 입어 미국인들의 휴일은 순식간에 지옥으로 변했다. 일본은 환호했지만 오래 가지 못했다. 선전포고 없는 기습공격은 미국의 엄청난 공분을 불러일으켰고,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은 일본에 전쟁을 선포했다. 이후 미 행정부는 ‘선전포고 없는 기습공격(도조 히데키 옵션)’을 부끄러운 짓이라 칭하면서 어떠한 경우에도 선택지에 두지 않는다.

일요일 사전 통보 없는 기습 조치. 대일 의존도가 70~90%인 품목을 겨냥해 최소한의 조치로 최대한의 효과를 노린 2019년 7월 1일의 전략은 1941년 12월 7일 진주만 공습과 매우 닮아있다. 국제 사회의 상식과 원칙을 저버린 채 상대의 허술한 틈을 노리고 이뤄진 두 공격의 유사점은 일본이 어째서 수출규제 강화 조치 발표 후 국제사회와 국내 언론의 지탄을 받고 있는지를 설명해준다.

4일부터 시행에 들어가는 일본의 수출규제 강화 조치는 총리관저의 주도로 치밀하게 준비돼 왔다. 관계부처 장관들은 세계무역기구(WTO) 위반 논란을 피하기 위해 “안전보장상의 수출관리 차원”이라고 입을 맞추고 있다. 한국과 신뢰관계는 깨졌고 이로 인해 군수품으로 전용될 수 있는 부품의 수출관리를 강화하겠다는 논리를 강변하고 있다.

이를 위해 협력국 명단에서 ‘한국 지우기’를 진행해 왔다. 외무성이 발간하는 외교청서에서는 한국을 2017년까지 ‘전략적 이익을 공유하는 가장 중요한 이웃 국가’로 규정했다. 그러나 강제징용 관련 대법원 판결 이후 올해 “한국 측의 부정적인 움직임이 있어 매우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다”고 바꿨다. 아베 총리의 1월 시정연설에선 한국에 대한 별도의 언급이 없었다. 북일 국교정상화를 위해 “미국과 한국 등 국제사회에 긴밀히 협력하겠다”는 게 전부였다. 한국 정부가 지난해 북미대화 무드 속 ‘재팬 패싱’에 직면한 일본에 예의를 갖춰 남북 정상회담 정보를 공유한 기억은 더는 떠올리지 않는다.

과거에 매몰돼선 안 되지만 과거를 망각해서도 안 된다. 서로 다른 방향으로 엇나가는 한일관계를 보면서 부쩍 드는 생각이다. 그럴수록 대화에 나서기 보다 상호 밀접하게 연계된 경제ㆍ안보 협력구조를 흔들어 과거사 갈등을 해결하겠다는 일본의 발상은 새로운 갈등의 씨앗을 뿌릴 뿐이다. 국제 사회에서도 G20 의장국으로서 ‘자유무역’을 주창한 일본이 이틀 만에 역행하는 조치를 취한 것이 공감을 얻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김회경 도쿄 특파원 herm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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