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꽃들이 잎이 지고 나서 씨방이 여물지만 연꽃은 꽃과 씨방이 동시에 피어나고 생겨난다. 떨어진 씨앗들은 오랜 세월 진흙 속에서 썩지 않고 고행을 하다가 인연이 닿으면 비로소 다시 꽃으로 환생한다. 한의학에서는 연꽃의 씨방을 연자육(蓮子肉)이라고 부른다. 욕심이 과해 생기는 스트레스성 질환에 효험이 있다고 한다. 열등감 속에 살았던 조선시대 선조를 비롯해 북벌을 염원했던 효종 임금도 스트레스를 이기기 위해 자주 복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세속의 욕심을 버리고 피어나는 꽃이 연꽃이라면 그 씨방인 연자육이 인간의 욕망을 치유하는 데 쓰이는 사실이 우연은 아닌 것 같다. 왕태석 기자

인생에서 가장 극복하기 어려운 감정 중의 하나가 열등감이 아닐까. 그것도 아주 가까운 사람을 향한 열등감, 질투심, 패배감은 사람의 마음에 지울 수 없는 상흔을 남긴다. 그런데 바로 그 심각한 열등감이야말로 ‘내 삶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제시해주는 결정적 전환점이 될 수 있다. 열등감을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따라 인생의 지형도가 바뀔 수 있다. 심리학자 알프레드 아들러는 열등감을 ‘보상’하려고 하는 과정 속에서 인간은 물론 동물과 식물도 엄청난 성장을 경험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1907년 아들러 박사는 ‘기관 열등성과 심리적 보상의 작용’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아들러는 이 책에서 역사상 최초로 자연이 신체 기관의 결함을 매우 불가사의한 방식으로 보상해주고 있다는 점을 날카롭게 고찰해냈다.

예컨대 시력에 손상을 입은 사람들은 청각이나 후각이 보통 사람에 비해 엄청나게 예민해지고, 심각한 발육부진이나 신체결함을 가진 사람들은 그 부분을 보상하기 위해 다른 쪽으로 재능을 발휘하게 된다. 자폐증을 심하게 앓던 소녀 템플 그렌딘이 훌륭한 동물학자가 된 사례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의 신체적 결함’을 다른 부분의 재능이나 능력으로 더욱 강력하게 보상하려고 노력한 사람들이 많다. ‘아들러의 격려’를 쓴 베란 울프는 아들러의 발견을 이렇게 요약한다. 자연은 ‘마이너스’ 부분을 발견하면 두 배의 ‘플러스’를 만들어 내려는 경향이 있다고. 베토벤은 귀가 들리지 않는 상태에서 위대한 교향곡을 작곡해냈고, 말을 더듬는 콤플렉스가 있었던 데모스테네스는 자신의 결점을 극복하고 오히려 최고의 연설가로 거듭났다. 소화불량으로 고생하던 사람이 훌륭한 셰프가 되기도 하고, 구루병을 앓던 아이가 훌륭한 육상선수가 되기도 한다. 콤플렉스와 트라우마로 고통받는 사람이 결국 자신의 결점을 극복하고 눈부신 인생의 주인공이 되는 사례는 워낙 많아 일일이 꼽을 수 없을 정도다.

그러나 모두가 이런 견딤과 극복의 드라마 주인공이 되지는 못한다. 실제 생활에서 열등감이나 질투심을 뛰어넘는 것은 이렇게 ‘보상’이론만으로는 해결되지 않을 때가 많다. 순간순간의 절망, 고통, 우울, 슬픔을 뛰어넘어야 하는 경우의 수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내가 열등감이나 질투심을 조금씩 극복해온 방법은 다음가 같다. 첫째, ‘신 포도의 심리학’을 뛰어넘는 것이다. 너무 높이 달려있어서 결코 먹을 수 없는 포도를 보고 “저 포도는 분명 너무 시어서 맛없을 거야”라고 생각하는 심리는 질투심의 본질을 보여준다. 나는 내가 갖고 싶은 바로 그 재능을 가진 사람을 보면 결코 가질 수 없는 ‘신 포도’로 생각하지 않고, 그의 탁월성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쪽을 택했다. 훌륭한 걸 훌륭하다고,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고 인정하고 나면, 아름다움과 훌륭함에 감탄하고, 감동하고, 감상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타인의 탁월성을 인정하면 삶이 더욱 풍요롭고 아름다워진다. 열등감의 부정적 에너지를 배움을 향한 열정이라는 긍정적 에너지로 역전시키는 것이다.

둘째, 고통의 최고점과 행복의 최저점을 정하는 것이다. ‘견딜 수 있는 고통의 한계’를 성찰해보고, ‘이만하면 충분히 만족스럽다’는 행복의 마지노선도 정하는 것이다. ‘내가 견딜 수 있는 고통은 여기까지구나, 이 이상의 고통은 거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나를 보호해주고, ‘이만하면 충분히 행복하다’는 판단이 나를 더 많은 행복에 대한 욕심으로부터 구해준다.

셋째, 고통스러운 감정을 긍정적인 창조의 에너지로 승화시키는 것이다. 나는 고통이라는 재료를 요모조모, 조물조물 버무려 무언가 엉뚱한 것을 만들어보고 싶어 한다. 나는 고통이 엄습해 올 때면 그것을 ‘표출’하기보다는 ‘승화’할 것을 꿈꾼다. 아프다고 소리치고 물건을 깨뜨리는 것은 ‘표출’이지만, 아픔을 오래오래 발효시켜 글이나 음악이나 그림 같은 또 하나의 미디어로 표현하는 것은 ‘승화’다. 이 승화의 과정이 우리를 구원한다. 우리 안의 헬렌 켈러, 우리 안의 베토벤을 이끌어내는 가장 아름다운 마음챙김의 기술, 그것은 고통의 에너지를 창조의 에너지로 승화시키는 지혜다.

정여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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