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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 열망” 거든 트럼프 vs “폭도 처벌” 벼르는 중국… 시계제로 홍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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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 열망” 거든 트럼프 vs “폭도 처벌” 벼르는 중국… 시계제로 홍콩

입력
2019.07.02 17:46
수정
2019.07.02 23:42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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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폭력시위에 트럼프 中 자극… 中 “내정간섭 중단을” 반발

홍콩정부 “시위자 색출”… 시민 “국회 점거는 범죄” 자성론도

홍콩 입법회를 점거한 시위대가 1일 중앙 연단 상단의 홍콩 정부 마크를 검은 스프레이로 지우고 온갖 반정부 구호를 휘갈겨 써놓았다. 이를 취재진이 몰려 들어 사진에 담고 있다. 홍콩=AP 뉴시스
홍콩 입법회를 점거한 시위대가 1일 중앙 연단 상단의 홍콩 정부 마크를 검은 스프레이로 지우고 온갖 반정부 구호를 휘갈겨 써놓았다. 이를 취재진이 몰려 들어 사진에 담고 있다. 홍콩=AP 뉴시스

범죄인 송환에 반대하는 홍콩 시위가 폭력사태로 비화하면서 전선이 복잡하게 얽혀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미국은 ‘민주주의’를 앞세워 중국의 개입을 차단하려는 반면 중국은 ‘불법행위’를 격렬히 비난하며 적극 개입할 태세다. 여기에 홍콩 정부가 과격시위 가담자에 대한 대대적인 색출을 공언하며 시위 대열을 흩트리는 사이 시민들은 결사항전을 촉구하며 전열을 가다듬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홍콩 반정부 시위에 대해 “그들은 민주주의를 바라고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러나 불행히도 일부 정부는 민주주의를 원하지 않는다”며 “(시위는) 민주주의에 관한 것이고 그것이 전부다. (민주주의보다) 더 나은 것은 없다”고 강조했다. 중국이 인권과 더불어 가장 껄끄러워하는 서구의 가치인 민주주의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한 것이다.

앞서 1일 홍콩 반환 22주년을 맞아 55만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 가운데, 일부 시위대가 입법회(우리의 국회)에 강제 진입해 점거하는 초유의 사태로 번졌다. 2일 새벽 경찰이 진입해 상황은 일단락됐지만 점거와 진압과정에서 물리적 충돌이 빚어져 50여명이 병원으로 이송되고 3명은 중태에 빠졌다. 특히 이날 시위에는 곳곳에서 대만의 청천백일기가 휘날려 눈길을 끌었다. 대만언론들은 대만 독립을 주장하는 단체회원 등 대만인들이 입국해 이날 반중 시위에 합류했다고 보도했다.

이처럼 시위가 격화되면서 트럼프 대통령도 발언 수위를 높였다. 지난달 9일 103만명이 운집한 초대형 시위 직후 트럼프 대통령은 “홍콩과 중국이 잘 해결하길 바란다”며 “시위 이유를 이해하고 있다”고 언급하는 데 그쳤다. 홍콩 시민들의 주장에 심적으로 동조하면서도 일국양제(一國兩制ㆍ한 국가 두 체제)를 내건 중국을 자극하지 않으려 방관하는 뉘앙스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민주주의를 걸고넘어졌다. 더 이상 좌시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더구나 미국은 대선 레이스가 시작돼 열기가 달아오르고 있다.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을 비롯해 민주당 대선주자들이 너나 할 것 없이 홍콩 민주화 시위를 지지하는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도 발을 뺄 수 없는 처지다.

중국은 이례적으로 국무원과 외교부 등 홍콩 관장 정부 기관을 동시에 동원해 즉각 반발했다. 국무원 홍콩ㆍ마카오 사무판공실은 2일 “극단 급진주의자들이 행패를 부리고 폭력을 휘둘렀다”며 “홍콩의 법률을 무시하고 사회안정을 파괴하며 큰 피해를 주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이어 “중국 정부는 홍콩 정부와 경찰이 법에 따라 직무를 수행하고 법률에 따라 범죄자에게 형사책임을 묻는 것을 단호히 지지한다”고 강조했다. 과격 시위자들을 잡아들이고 불법시위에 엄정 대처하는 건 당연한 만큼 미국이 왈가왈부하지 말라는 의미다. 외교부 홍콩 주재 특파원공서는 한발 더 나아가 “미국, 영국 등 일부 국가들이 홍콩 사무에 개입하는 건 내정 간섭”이라며 “중국의 주권과 홍콩의 사회상황을 비방하는 잘못된 언행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관영 인민일보와 환구시보도 시위대를 ‘폭도’로 규정하며 “사회질서를 무너뜨리고 치가 떨릴 만큼 사람들을 화나게 한 극단적 폭력행위를 강력 규탄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같은 중국의 강경 대응은 미국과 국제사회뿐만 아니라 시위대를 향한 경고의 메시지나 다름없다. 시위를 주도하는 민간인권진선은 △송환법 완전 철폐 △강경 진압 책임자 조사와 처벌 △시위대를 폭도로 규정하지 말 것 △체포 시위대 석방 △캐리 람(林鄭月娥) 행정장관 사퇴 등 5가지를 요구해왔다. 따라서 법안 철회와 람 장관 거취를 제외하면, 나머지 3가지 조건에 대해 중국이 법에 따른 처벌을 앞장서 부르짖으며 반대입장을 못박은 셈이다.

폭력시위를 빌미로 중국이 적극 가세하자 홍콩 정부도 반격에 나섰다. 람 장관은 2일 새벽 4시 경찰 수장을 대동해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입법회 건물에 몰려가 극단적 폭력과 파괴 행위를 한 것에 대해 우리는 엄중하게 비난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간 시위대의 기세에 밀려 고개를 숙이던 것과는 딴판이다. 람 장관은 또 “2020년 6월 입법회 임기가 끝나므로 송환법은 기한이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1년 후면 법안이 자동 폐기된다는 설명이다. 시위대의 나머지 2가지 조건인 람 장관 본인의 퇴진과 법안 철회마저 당장 추진하지 않겠다고 재차 거부한 것이다.

입법회 점거는 반나절 만에 끝났지만, 일부 홍콩 시민들은 근처에 남아 채비를 갖추며 다음 시위를 준비하고 있다. 특히 송환법에 반대하다 목숨을 잃은 시민이 3명으로 늘면서 시위에 동력을 더할 추모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지난달 15일 30대 남성이 고공시위 도중 투신하자 16일 200만명의 시위대가 모였고 지난달 30일 21살 대학생과 29살 유치원 교사가 숨지면서 1일 시위에 55만명이 집결했다.

하지만 일부 청년들의 과격 행동에 휩쓸려 시민들의 민주화 요구가 폭력시위로 변질된 것은 부담이다. 입법회에 대한 공격은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범죄일 뿐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에 시위대는 주말까지 숨을 고르며 일단 여론 추이를 지켜볼 전망이다. 다만 홍콩 정부가 대대적인 시위 가담자 색출을 공언한 터라, 정부의 공권력과 시민의 권리가 다시 격하게 부딪치면서 대규모 시위가 앞당겨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베이징=김광수 특파원 rolling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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