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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국가간 신뢰관계 조치 수정”이라면서… “WTO 규정 부합” 억지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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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국가간 신뢰관계 조치 수정”이라면서… “WTO 규정 부합” 억지 주장

입력
2019.07.02 18:10
수정
2019.07.03 00:29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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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 규제’ 이율배반적 설명… 관방장관, 징용판결 보복 사실상 인정

일본 언론은 “WTO 위반 가능성”… 교도통신 “수출규제 품목 확대 검토”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달 29일 오사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폐막 이후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오사카=EPA 연합뉴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달 29일 오사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폐막 이후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오사카=EPA 연합뉴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를 비롯한 일본 정부 관계자들이 한국을 겨냥한 반도체 소재 등의 수출규제 강화 조치에 대해 “세계무역기구(WTO)의 규칙에 맞다”라며 대항조치가 아니라는 주장을 반복하고 있다. 수출을 금지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국가안보 차원에서 수출관리 운영규칙 강화를 위한 국내법적 조치라는 얘기이다. 한국이 WTO에 제소하더라도 ‘국가안보’를 앞세운 미국의 보호주의 움직임을 WTO가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을 일찌감치 염두에 둔 것이다. 한국 정부가 WTO 제소 외에 별다른 대응책을 내놓지 못하는 가운데, 일본 정부는 우리의 ‘주요 무기’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을 드러낸 것이기도 하다.

아베 총리는 2일자 요미우리(讀賣)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경제산업성의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강화 조치에 대해 “국가와 국가의 신뢰관계로 행해온 조치를 수정한 것”이라며 “일본의 모든 조치는 WTO 규칙과 정합적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자유무역과는 관계없다”고 주장했다.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도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한국과의 신뢰관계가 심각하게 훼손되면서 한국과의 신뢰관계를 바탕으로 수출관리가 어려워져 제도 운용을 재검토한 것”이란 입장을 반복했다. 이어 “징용문제에 대해 지난달 오사카(大阪)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때까지 만족할 만한 해결책도 제시되지 않았다”고 했다.

사실상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 이후 한국과의 갈등을 겨냥한 보복 조치라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모든 일본 언론들이 ‘대항조치’로 보도하고 있는데 정작 정부만 이를 부인하는 꼴이다. WTO 협정은 정치적 이유로 경제보복 조치를 금지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가 “일본 자유무역의 위선을 드러내는 일”이라고 비판했고, 후쿠나가 유카(福永有香) 와세다(早稲田)대 교수는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에 “WTO 협정 위반을 의심 받을 만한 회색(애매한) 조치”라고 지적했다. 월스트리트저널 등 미국 언론은 일본이 외교문제를 경제적 대응으로 풀려는 행태를 꼬집으며 “아베 총리가 트럼프 대통령의 플레이북에서 방법을 가져왔다”고 보도했다.

이 같은 비판에도 아베 정부가 이율배반적 주장을 하는 배경에는 당장 한국에 금수조치를 취하기보다 수출 허가ㆍ심사 시간의 완급을 조절하며 한국의 양보를 끌어내겠다는 심산이 커 보인다. 요미우리 신문에 따르면 이번 조치가 5월에 최종안으로 마련됐고,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가 일본 기업과 국제 공급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에도 총리관저와 주변 의원들의 주도로 결정됐다. 산업 현장의 우려보다 정치적 고려를 우선했다는 것이다. 교도통신과 마이니치신문은 이날 “군사전용이 가능한 전자부품과 관련 소재 등이 (수출규제 강화) 대상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도 전했다. 한국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 수출제한 품목을 확대하고 수출 절차를 엄격화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는 일본이 자국 피해도 감수하면서까지 징용문제를 양보할 수 없다는 강경한 메시지를 한국에 던진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예상과 달리 자국 기업의 압류자산 매각 이후 대항조치를 취하지 않고 손해(자산 매각) 발생 전에 선수를 친 것과 일본 의존도가 높은 품목을 지정해 규제를 강화한 것도 효과의 극대화를 노린 것이다.

이처럼 일본의 보복조치는 치밀한 사전 준비와 검토를 거친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지난해 10월 대법원 판결 이후 외무성과 경제산업성 등 관계부처들이 대응 방안을 논의해 왔다. 수출규제 강화와 함께 발표된 국가안보를 이유로 한 ‘백색 국가’ 제외도 지난 2월 자민당 외교부회에서 거론된 방안이라고 마이니치신문이 전했다. G20 성과로 홍보하기 위해 ‘자유ㆍ공정 무역’을 강조한 공동성명을 채택한 다음 이와 배치되는 조치를 발표하는 주도 면밀함도 보였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의 국가안보를 이유로 한 보호무역 강화 움직임을 WTO가 견제하지 못하는 현실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과 유럽연합(EU) 등은 지난해 미국의 철강 수입제한 조치를 WTO에 제소했다. 그러나 패널구성과 심리, 상소 과정을 감안할 때, 국가안보를 이유로 한 무역 제재에 대한 최종판결이 나오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도쿄=김회경 특파원 herm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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