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경제보복에 업계 초긴장… 日 관세율 30% 인상 땐 수출 24억弗 감소 전망
‘설마’하다 뒤통수를 맞은 격이 됐다. 1일 일본 정부가 내린 경제보복 조치로 한ㆍ일 경제관계가 일촉즉발 상황으로 몰리면서 국내 경제산업계 현장이 혼돈에 빠졌다. ‘이렇게까지 할 줄 몰랐다’는 놀라움, ‘상당한 타격이 예상된다’는 우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냐’는 걱정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고 있다. 그 중에서도 ‘첨단산업과 소재를 중심으로 일본에 대한 의존도가 극심한 한국 산업구조를 되돌아봐야 한다’는 자성도 나오고 있다. ‘급소를 찔렀다’는 표현이 나올 만큼 취약점을 제대로 노린 일본의 ‘섬세함’도 감안해야겠지만 일본의 이번 공세가 생각보다 더 위력을 발휘하는 건 국내 산업 생태계가 그만큼 취약하기 때문이라는 반성이다.
기본적으로 일본은 우리 나라의 대외 수입 의존도에서 중국과 미국 다음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나라다. 2일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한국의 지난해 국가별 총 수입에서 일본은 10.2%(546억 달러)를 기록, 중국과 미국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수입 비중만 큰 게 아니라 일본은 고질적인 무역적자 대상국이기도 하다. 한일 국교가 정상화된 1965년 이후 지난해까지 단 한 번도 흑자를 내지 못했다. 54년간의 누적 적자만 700조원에 달할 정도다. 지난해에도 241억 달러 무역적자를 기록했다. 여기에 한국경제연구원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일본이 한국제품에 대한 관세율을 지금보다 30% 인상한다면 대일 수출이 24억 달러(약 2조8,000원) 가량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간과할 수 없는 건 일본에서 수입하는 물품 대부분이 우리나라 산업 생산의 필수품목이라는 점이다. 예컨대 지난해 대일(對日) 수입 규모 1위 제품은 반도체 제조장비(52억4,000만 달러)였는데, 이는 전 세계 수입량의 33.8%에 달했다. 기타 석유화학중간원료의 경우 지난해 기준으로 98.78%를 일본에서 수입했고, 자일렌(95.43%ㆍ인쇄 고무 가죽 산업 용매제), 평판 디스플레이 제조장비(82.75%), 톨루엔(79.30%ㆍ염색 산업 사용 물질), 철 및 비합금강중후판(74.67%), 빌레트(74.62%)도 일본산이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이들 모두 우리가 중국이나 동남아 등 대규모 무역흑자를 내는 곳으로 수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수입돼야 하는 품목들이다.
이번 규제 대상에는 포함 안됐지만 반도체 생산의 핵심 원료인 ‘웨이퍼’에 대한 대일 의존도도 전체 수입량의 절반 이상이다. 반도체는 웨이퍼 원판을 개별 칩으로 잘라 만들기 때문에 대체가 불가능한 소재인데, 세계 1ㆍ2위 업체가 바로 일본의 신에츠화학과 섬코다. 국내에서는 SK실트론에서 생산하고 있지만 품질이나 생산량 측면에서 일제와 상당한 격차를 보이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한국반도체산업협회에 따르면 국내 반도체 장비 국산화율은 매출액 기준으로 20% 정도. 원재료인 웨이퍼에 직접회로를 그리는 전(前) 공정 장비 비율은 10%에도 못 미친다.
재계 관계자는 “자율주행 자동차 등 모빌리티의 필수장비인 초정밀 카메라에 들어가는 광학렌즈 원천기술만 해도 일본이 가지고 있고 로봇도 일본 부품이 없으면 반 발자국도 걷지 못한다”며 “이들 말고도 일반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일본이 특허를 가지고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무수히 많은 물질과 소재들이 있다”고 설명했다.
심각한 건 이런 의존 상황을 단기간 극복할 수 없다는 점이다. 업계에서는 “지금 우리 현실에서는 고도의 기술력이 필요한 각종 중간재를 일본에서 중점적으로 수입할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은다. 원천 기술 확보 소홀의 이면에는 ‘단기간 성과에 매몰된 산업 생태계 구조’가 깔려 있다는 것이다. 이상호 한경연 산업혁신팀장은 “일본이 독보적인 기술을 가진 것들은 대부분 ‘소량이지만 대체하기 어려운 핵심 부품이나 소재’”라며 “개발 연구비 등을 고려하면 우리가 만들기보다는 차라리 일본에서 사 오는 게 이득인 것들”이라고 말했다. 재계 관계자는 “일본은 장기간 연구개발과 제품 테스트 등을 하면서 착실히 기술력을 키운 반면 우리는 단기간 빨리 이익을 낼 수 있는 완제품 생산에 주력해 왔다”며 “완제품을 중국 등에 팔아 지금까지 성과가 좋았기 때문에 아무도 여기에 대해 문제 의식을 가지기도 어려웠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남상욱 기자 thoth@hankookilbo.com
김현우 기자 777hyunw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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