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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톺아보기] 미친 존재감과 착한 가격

입력
2019.07.03 04:40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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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언어는 언제나 변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언어는 우리가 알게 모르게 조금씩 변하고 있다. 우리는 늘 말을 하고 글을 쓰지만, 말이 변하고 있는 줄도 모르고 있다가 어느 새 바뀐 언어의 모습에 익숙해져 있는 경우가 많다.

텔레비전을 잘 보지 않아도 프로그램이 끝나자마자 쏟아지는 상세한 뉴스 기사들 덕분에 보지 않은 방송도 본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많다.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의 내용을 다루는 기사에서 많이 쓰는 표현 중 하나가 “등장만으로 ‘미친 존재감’ 뽐낸 배우 OOO”와 같은 것이다. ‘미친 존재감’, ‘미친 연기력’, ‘미친 활약’ 등과 같이 잘 보고 있으면 ‘미친’ 것들이 꽤 많다. ‘미치다’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정신에 이상이 생겨 말과 행동이 보통 사람과 다르게 되다’, ‘상식을 벗어나는 행동을 하다’, ‘정신이 나갈 정도로 매우 괴로워하다’ 등으로 뜻풀이 되어 있다. 사전상의 기술만 보면 ‘연기력’이 미쳤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 같지만, 우리는 이미 ‘연기력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매우 뛰어나다.’라는 뜻으로 호평을 할 때 ‘미친 연기력’이라는 말을 쓴다. 사전적 의미가 실제 언어 현상에서는 더 확장되어 넓은 범위로 사용된 예이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 언어생활에서 제법 찾아볼 수 있다. 대형 마트에 가면 많이 보이는 ‘착한 가격’이라는 말도 그렇다. ‘착하다’는 ‘언행이나 마음씨가 곱고 바르며 상냥하다.’라는 뜻이기 때문에 사전적 의미만으로 보면 ‘가격’은 ‘착하다’라는 수식어를 붙일 수 없는 대상이다. 그러나 ‘저렴하고 합리적인 가격’이라는 뜻으로 쓰이는 ‘착한 가격’이라는 말은 이제 많은 사람들에게 크게 어색하지 않은 표현이 되었다. ‘미친’ 것도, ‘착한’ 것도 많아진 셈이다.

이유원 국립국어원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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