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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우체국파업_지지합니다

입력
2019.07.03 04:4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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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배원의 하루 일과와 업무 강도. 박구원 기자
집배원의 하루 일과와 업무 강도. 박구원 기자

우체국 노동조합이 파업을 예고했다. 한국노총 소속인 전국우정노조와 민주노총 소속 전국우편지부(비정규직 노조) 둘 다 파업 참가를 선언했다. 90% 이상의 조합원들이 파업에 찬성했다고 한다.

2018년 한 해에 집배원 25명이 숨졌다. 한 해의 딱 반이 지난 지금, 올해 이미 과로나 사고로 사망한 집배원이 아홉 명이다. 집배원 산재율이 소방관 산재율의 1.5배에 달한다. 정상 수치가 아니다.

집배원 한 사람의 평균 1일 배달 물량은 약 900통이다. 시간으로 나누어 보면 택배며 우편물을 하늘에서 뿌려야 하나 싶을 만큼 많은 양이다. 파업이 가시화하자, 우정사업본부는 집배원의 연 근로시간이 2015년 2,488시간에서 2018년 2,403시간으로 3.4%나 줄어들었다고 했다. 업무 부담이 줄어들고 있는데 집배원들이 무리한 파업을 한다는 주장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3.4%! 연 85시간! 월 7시간! 주 1시간 30분! 사측 계산인데도 이 모양이다.

온라인 쇼핑이 활성화되며 택배 물량은 계속 늘었다. 일반우편을 사용하는 사람은 줄었지만 물품 하나하나는 부피도 무게도 커졌을 터다. 당장 우리가 날마다 받는 우편물만 보아도, 우체국 집배원들의 노동 강도가 얼마나 높을지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집배원 과로 문제는 노동계만의 주장도 아니다. 노사정이 공동으로 구성한 ‘집배원 노동조건 개선 기획추진단’도 집배원을 적어도 2,000명은 증원해야 한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작년 10월의 일이다. 기획추진단의 개선안 발표 이후로도 집배원 10명이 더 세상을 떠났지만, 집배원은 2,000명은커녕 200명도 증원되지 않았다. 집배원 과로사와 파업이 쟁점으로 떠오르자 행정안전부는 우선 조직 진단을 한 다음, 필요하면 정부 예산을 늘리겠다고 한다. 조직 진단도 필요하고 예산 편성도 필요하다. 올바른 절차와 정확한 분석은 당연한 절차다. 그렇지만 어째서 이렇게 느린가? 이 일만은, 파행인 국회 탓을 하기도 어렵다. 집배원의 과로와 열악한 노동조건은 새삼스러운 이슈가 아니다. 명절마다, 연말ᆞ연초마다, 하나하나의 죽음이 다 보도되지도 못할 만큼 계속해서 나온 말이다.

우정사업본부는 증원이 어려운 이유 중 하나로 적자 재정을 들었다. 우정사업본부는 사기업이 아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국가기관이다. 국가기관이, 한 해 수십 명의 소속 근로자가, 국민이, 나랏일을 하다 사망하는 현실을 개선하지 못하는 이유가 ‘적자’라니 기가 막힌다. 이것은 국가가 해도 되는 변명이 아니다.

심지어 실제 이 적자가 진짜 적자인지조차 분명치 않다. 우정 행정은 특별회계로 편성되어 있어 정부로부터 인건비를 받지 못한다. 보통 공무원 인건비는 정부 일반회계에서 인건비가 지출되지만, 집배원 인건비는 단순화하자면 오로지 배달료에서 나온다. 사람 손발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분야인데, 나라가 그 사람 손발 값을 주지 않으니 적자가 날 수밖에 없다.

우편 업무는 핵심적인 공공 분야다. 그렇게 적자가 문제라면 일반회계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할 만하다. 아니면 최소한 우체국 보험이나 예금 같은 우체국 내의 특별회계와 우편사업 특별회계 간 전출ᆞ전입만 해도 집배원 수를 증원할 인건비가 넉넉히 나온다. 2017년 우정사업 전체(우편, 보험, 금융)는 5,000억원 흑자였다. 집배원 1,000명을 증원하는데 필요한 돈은 약 430억원으로 그 10분의 1이다. 그런데도 기어코 그 돈이 없다고, 집배원을 늘릴 수 없다고 한다. 국무총리는 우체국 파업 자제를 요청했다. 파업의 피해가 국민에게 돌아간다나.

국민 핑계도 정도껏 대자. 불편하니까 파업이다. 지금 이 국민은, 현관문 앞에 우체국 파업을 지지한다는 깃발이라도 달고 싶은 심정이다.

정소연 SF소설가ㆍ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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