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규칙은 아이디어에 불과해 저작권으로 인정할 수 없다던 기존 판례를 깨고 대법원이 “게임규칙 또한 저작권 보호대상”이라고 판결했다. 하나의 게임이 인기를 끌면 이와 비슷한 게임들이 국내외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출시돼 갈등을 빚어왔던 게임업계에 큰 파장이 일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3부(주심 조희대 대법관)는 몰타공화국 소재 모바일게임사 킹닷컴이 국내 게임 유통사 아보카도엔터테인먼트를 상대로 낸 저작권침해금지 등 청구소송에서 원고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원고 승소취지로 파기 환송했다고 1일 밝혔다.
킹닷컴은 2013년 특정한 타일 3개 이상을 직선으로 연결하면 타일들이 사라지면서 그 수만큼 점수를 획득하는 방식의 게임 ‘팜 히어로 사가’를 내놨다. 이 게임이 인기를 얻자 아보카도엔터테인먼트사는 이듬해 2월 이 게임과 캐릭터만 다르고 시나리오와 규칙 등은 거의 비슷하게 따라 한 홍콩 모바일게임 ‘포레스트 매니아’를 국내에 들여왔고, 킹닷컴은 소송을 제기했다.
1심은 “게임규칙은 게임의 에피소드나 스토리 자체에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없고, 규칙들의 조합 자체만으로는 게임개발자의 개성을 드러내는 ‘표현’이라 할 수 없다”며 저작권침해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다만 포레스트 매니아가 팜 히어로 사가 규칙들의 구체적인 실행 형태, 효과, 그래픽 등을 거의 비슷하게 베껴온 데 대해서는 ‘부정경쟁방지법상 부정경쟁행위’에 해당한다고 봐 11억6,811만원의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항소심은 아예 부정경쟁행위에도 해당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2심 재판부는 “원래 게임의 인기에 편승한 부분이 있다 해도 별도의 비용과 노력을 들여 원래 게임에 없는 다양한 요소들을 가미했다”고 봤다.
대법원은 하급심 판결을 완전히 뒤집었다. 재판부는 “원고 게임은, 게임규칙으로 인해 게임을 진행하면서 달성해야 할 목표의 수나 종류가 다양해질 뿐만 아니라, 앞 단계에서 추가된 특수 규칙이 그 이후 단계에서 추가ㆍ변경되거나 다른 규칙과 조합되면서 새로운 난이도를 만들어 낸다”며 “게임규칙이 게임 전개와 표현형식에 영향을 미치는 이상 게임규칙 또한 보호대상인 저작물로 봐야 한다”고 밝혔다.
대법원 판결에 게임업계는 반색하는 분위기다. 한 게임업체 관계자는 “어떤 게임이 인기 좀 끈다면 게임 이름만 다를 뿐 규칙, 캐릭터 등 거의 모든 걸 베끼는 수준의 모방 게임들이 쏟아져 나왔다”며 “원저작자 권리보호를 강화한 이번 대법원 판결로 업체들이 경각심을 가지게 될 것이라 본다”고 말했다. 그간 속앓이를 해왔던 게임업체들이 잇따라 소송을 내리라는 전망도 나온다. 박기태 변호사는 “비슷한 게임이 나오면 마케팅 쪽에서 문제 삼았지 법적 대응은 망설여왔다”며 “이번 판결로 관련 소송이 늘어날 것 같다”고 말했다.
김진주 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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