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테미시아의 첫 작품으로 알려진 '수산나와 두 장로'. 성서에서 모티프를 얻은, 성폭력을 고발하는 그림이었다. 위키피디아.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Artemisia Gentileschi)는 페미니즘 미술이라는 장르를 선구적으로 개척한 16세기 이탈리아 바로크 화단의 독보적인 여성 화가다. 그는 르네상스 전후 수많은 빼어난 화가가 작품의 소재라 여기지 못한 성서와 신화 속 여성들을, 성모의 자애로움이나 루벤스 풍 여신들이 보여 준 정태적 아름다움이 아니라, 그들의 힘과 분노를 화폭에 적극적으로 담아냈다.

그는 예술적으로뿐 아니라 상업적으로도 성공한 화가여서, 여성이라면 수녀가 되거나 한 남자의 아내(그리고 어머니)가 되는 길 외에 창녀가 되는 수밖에 없던 그 시대에, 피렌체 메니치가나 잉글랜드 왕가(찰스 1세)의 후원을 받으며, 친정이나 남편에게 의존하지 않고 물감과 붓을 사고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다시 말해 독립적이고 자립적인 여성 예술인이었다.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는 1593년 7월 8일 이탈리아 수도 로마에서 화가인 오라치오 젠틸레스키의 맏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그를 수녀원에 보내려 했지만, 그 뜻을 꺾을 만큼 그는 고집 세고 재능도 남달랐다. 19세이던 1612년 오라치오가 한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는 “(아르테미시아의 기량이) 완숙의 경지에 들어 감히 필적할 만한 이가 없다고 말할 수 있다”고 적었다.

앞서 17세 때인 1610년, 그는 아버지 친구인 한 화가 아고스티노 타시(Agostino Tassi)의 문하에 들었다가 그에게 강간당했다. 딸과의 결혼마저 거부하자 오라치오는 타시를 고소했고, 타시는 처제와 불륜을 맺고 아내를 살해하려 한 사실까지 드러나 처벌받았다.

알려진 바 아르테미시아의 첫 작품의 모티프도 성서 다니엘서에 등장하는 ‘수산나와 두 장로’였다. 두 늙은 호색한이 신앙심 깊은 유부녀 수산나를 희롱하는 내용의 이야기. 아르테미시아의 작품으로 전해진 60여점 가운데 40여점이 여성을 그린 작품이고, 그중에는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자르는 유디트’처럼 분노와 영웅적 고난을 적극적으로 표현한 작품이 적지 않다. 한 후원자에게 보낸 편지에 그는 “당신은 카이사르의 용기를 가진 한 여성의 영혼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썼다.

그의 사망 연도는 불확실하다. 잊히다시피 한 그와 그의 작품들은 20세기 초 바로크 미술사가 로베르토 롱기(Roberto Longhi)에 의해 발굴됐고, 지난 세기 중반 이후에야 비로소 합당한 평가를 받게 됐다. 최윤필 기자

공감은 비로그인 상태에서도 가능합니다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