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서도 “역행은 위신 떨어뜨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달 29일 오사카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 폐막 이후 기자회견에서 참가국 간 '자유롭고 공정한 무역' 원칙에 합의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이틀 뒤 7월 1일 한국을 겨냥한 반도체 소재 등에 대한 수출 제한 조치를 발표했다. 오사카=로이터 연합뉴스

일본 정부가 1일 강제징용 문제로 갈등 중인 한국만을 겨냥해 수출 제한 조치를 발표한 것은 외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무역 제재를 끌어들인 것이다. 지난달 29일 오사카(大阪)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의장국으로서 ‘자유롭고 공정하며 차별 없는 무역’원칙을 확인했다며 자화자찬한 지 이틀 만에 이를 뒤집은 셈이라 일본에서도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국제사회 리더를 표방하며 G20 정상회의 유치를 자랑거리 삼았던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대응이 국가 위신을 떨어뜨렸다는 비난, 그리고 한국에 대한 수출 제한이 부메랑으로 돌아와 일본 산업에도 적잖은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은 이날 반도체 소재 등의 한국 수출 제한과 관련해 “정부의 조치는 통상규칙을 자의적으로 운용하고 있다는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마이니치(每日)신문도 “일본이 G20에서 주도한 ‘자유무역 촉진’이란 방침에 역행할 우려가 있다”고 했다.

신문은 이어 “일본의 반도체 소재가 안정적으로 조달되지 못한다면 중장기적으로 한국 기업들의 ‘탈(脫) 일본’ 현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일본 정부의 조치가 강제징용 문제 해결을 위한 한국 측 대응을 촉구하기 위한 ‘극약 처방’이지만, 오히려 한국 기업들이 반도체 소재를 수급할 대체국가를 확보하려는 움직임으로 이어져 일본 기업에 돌아오는 부작용이 작지 않다는 것이다.

일본의 이번 행태는 이율배반적이어서 비난의 목소리가 더 크다. 2010년 센카쿠(尖閣ㆍ중국명 댜오위다오)열도를 둘러싼 중일 갈등 당시 중국 정부는 자국산 희토류에 대한 일본 수출을 중단했다. 이에 일본 정부는 중국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해 승리한 바 있다. 이후 일본 제조업체들은 희토류를 대체할 수 있는 소재를 개발하거나 새로운 조달처를 찾으면서 중국 의존도를 낮췄다. 사실상 자신들이 비난하고 제소했던 행태를 수년 만에 그대로 한국 정부를 상대로 재현한 것이다.

군사분야에 전용될 수 있는 품목의 수출과 관련해 한국을 ‘백색 국가’ 대상에서 제외하려는 움직임은 미국이 ‘안보상의 우려’를 이유로 중국의 화웨이 등을 배제하려는 시도와 유사하다. 이와 관련, 중국 환구시보는 “뜻밖에 일본이 미국에서 배워 무역 제재 놀이를 했다”고 비판했다. 한국이 백색 국가 지정에서 제외된다면 이는 일본에서 첫 사례다.

일본 정부는 대항조치 발동 시기와 관련해 “한국에 압류된 일본 기업의 자산이 매각될 경우, 이는 자국 기업에 부당한 손해가 발생하는 것으로 대항조치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밝혀 왔다. 그러나 매각 이전 대항조치에 나선 점에서 21일 참의원 선거에서 한일 갈등을 부각시켜 지지층을 결집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또 아베 총리가 G20 기간 중 문재인 대통령과의 별도 회담을 하지 않은 배경에는 이번 보복 조치 발표를 염두에 둔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도쿄=김회경 특파원 herm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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