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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30주년 무용가 안은미 “미술관서 불로장생의 길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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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30주년 무용가 안은미 “미술관서 불로장생의 길로 갑니다”

입력
2019.07.02 04:4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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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장 아닌 미술관서 회고전 

무용가 안은미가 26일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안은미래' 전시 기자간담회에서 설치작 중 하나인 큰 쿠션 위에 앉아있다. 관람객들이 푹신한 쿠션에 몸을 뉘이고 안정감을 갖길 바라는 마음에 만든 작품이다. 신지후 기자
무용가 안은미가 26일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안은미래' 전시 기자간담회에서 설치작 중 하나인 큰 쿠션 위에 앉아있다. 관람객들이 푹신한 쿠션에 몸을 뉘이고 안정감을 갖길 바라는 마음에 만든 작품이다. 신지후 기자

“데뷔 30년, 저는 점차 노년이 돼 가고 있어요. 그렇지만 절대 죽지 않는단 걸 보여드리겠어요. 저는 작가로 다시 태어난 겁니다. 이렇게 불로장생의 길로 가는 거지요. 하하.”

무용가 안은미(56)의 손길이 닿는 곳은 어디든 진동(振動)한다. 좀체 춤출 기회가 없는 전국의 할머니와 중년 아저씨들을 쫓아 몸을 흔들게 하더니, 이번엔 적막하기로 손에 꼽히는 공간인 미술관에 발을 들였다. 엄숙한 미술관 고유의 문법은 역시나 안은미의 손길에 변화했다. ‘두둥두둥’하는 경쾌한 노래가 끝없이 흘러 나오고, 위아래로 꿀렁대는 기둥들, 걸음마다 발끝에 닿는 풍선공에 몸을 움직이지 않을 수 없다. 데뷔 30주년을 맞아 친정 격인 극장 무대를 잠시 뒤로하고 미술관에서 회고전을 연 그는 “진화하길 멈추지 않으려고 미술관을 택했다”며 웃었다.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서 열리는 ‘안은미래(Known Future)’전에는 회화, 설치, 영상 등 작품과 아카이브 자료가 전시되고 있다. 안은미가 미술관에서 회고전을 열 수 있었던 건 그 자체가 장르를 뛰어넘는 창작자인 덕인데, 그는 안무부터 의상, 소품, 무대를 직접 디자인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안은미가 디자인한 옷을 비롯한 공연 의상 400여점이 천장에 매달려 있다. 마지막 공간엔 안은미가 평생 협업해 온 윤관의상실에 보낸 디자인 밑그림과 천조각 등도 전시됐다. 형광색과 도트무늬, 커다란 액세서리를 좋아하는 안은미의 취향이 십분 반영된 형형색색의 전시다.

26일 무용가 안은미가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안은미래' 전시장 한켠에 설치된 무대 '이승/저승'에서 오프닝 무대를 하고 있다.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26일 무용가 안은미가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안은미래' 전시장 한켠에 설치된 무대 '이승/저승'에서 오프닝 무대를 하고 있다.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가장 눈길을 끄는 건 전시장 중간에 설치된 무대 공간 ‘이승/저승’이다. 매트 여러 장을 붙여 놓은 작은 곳이지만 안은미와 그가 이끄는 무용단은 이곳에서 실제 공연 리허설을 하며 관람객에게 그 과정을 모두 공개한다. 안은미는 “리허설 과정 전부를 이렇게 공개하는 건 처음”이라고 했다. “보통 작업 과정에 대한 비밀 보안이 철저한데, 관객은 저흴 보고 저흰 관객을 보면서 느끼는 것들이 있을 거라 봐요. 거의 매일 (미술관이 운영되는) 오전11시에 와서 오후7시에 퇴근해야 하는 점이 어렵긴 하지만… 잘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하하.”

“춤을 사회로 돌리겠다”는 안은미의 깊은 철학은 이번 전시에서도 실현된다. 안은미는 평범한 시골 할머니, 책임감에 짓눌린 아저씨, 몸집은 작지만 마음은 큰 저신장 장애인 등과 춤을 추면서 이를 ‘조상님께 바치는 땐쓰’ ‘아저씨를 위한 무책임한 땐쓰’ ‘대심(大心) 땐쓰’로 명명해 작품화 했다. 이들 작업은 국내뿐만 아니라 유럽에서도 큰 주목을 받았고, 안은미는 지난해 현대무용의 성지라 불리는 프랑스 파리 테아트르 드 라빌 상주예술가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번 전시기간에도 안은미는 물론 국악인 박범태, 현대무용단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 소리꾼 이희문, 탭댄서 조성호가 참여하는 강연 프로그램이 ‘이승/저승’에서 열린다. 안은미는 “세상이 어둡고 침울해져 갈수록 움직임이, 춤이 필요한 법”이라고 강조했다.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안은미래' 전시장 한 켠의 모습. 발 밑엔 안은미의 모습이 담긴 공이 수없이 굴러다니고, 기둥도 위아래로 움직인다. 신지후 기자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안은미래' 전시장 한 켠의 모습. 발 밑엔 안은미의 모습이 담긴 공이 수없이 굴러다니고, 기둥도 위아래로 움직인다. 신지후 기자

안은미의 실험은 미술관 입장에서도 반갑다. 미술계에선 ‘화이트 큐브’(하얗고 각진 공간에 작품을 거는 전형적인 미술관)의 한계를 뛰어 넘는 전시를 기획해내는 데 관심이 쏠려있기 때문이다. 전시를 기획한 전소록 서울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는 “여러 퍼포머들이 관람객을 위해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전시장에 등장한다”며 “포스트 화이트큐브 시대의 미술관에 걸맞은 관객 참여 활동을 전시의 구심점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시도”라고 말했다. 전시는 9월29일까지 열린다.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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