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하루는 화학물질과 함께 시작된다. 양치질을 하고, 샴푸와 컨디셔너로 머리를 감고, 세정제로 얼굴과 몸을 씻는다. 얼굴엔 토너, 에센스, 로션, 선크림을 차례로 바른 후 색조 화장을 하고, 머리엔 헤어 스타일링 제품을 바른다. 잼을 바른 토스트 한 조각을 먹고 출근길에 오른다. 일어난 지 한 시간 만에 나는 다양한 생활제품과 식품에 포함된 수많은 화학물질에 노출되었다는 생각에 움찔한다. 과연 그 총량은 얼마나 될까.
이 모든 제품에 공통으로 사용되는 화학물질이 있다. 파라벤(paraben)이라는 화학성분이다. 미생물의 성장을 억제하는 보존제 역할을 한다. 몇 년 전 ‘발암 치약’이라는 선정적 제목으로 언론을 들썩였던 장본인이다. 그러나 파라벤이 발암물질이라는 과학적 근거는 부족하다.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는 이 성분을 발암물질 목록에 포함하지 않는다. 이 법석 덕분에 ‘무(無)파라벤’ 화장품과 치약이 활개를 쳤지만 이 제품들에 포함된 다른 종류의 화학물질의 유해성에 대한 논란이 또 일어날지 모를 일이다.
파라벤의 유해성 논란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영국의 여성환경연대가 화장품 안전캠페인을 통해 파라벤의 안전성에 의문을 제기한 이래 논란은 지속되었다. 유럽연합에서는 2014년 파라벤 몇 종류를 화장품에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고, 제품에 허용하는 기준치도 낮추었으며 영ㆍ유아의 기저귀 제품에도 사용을 금지했다. 그럼에도 파라벤은 몸에 축적되지 않고 소변으로 배출되는 저독성 화학물질로 알려져 있다. 여전히 유럽, 일본 등 여러 나라에서 파라벤을 식품 첨가물로 허용하는 것도 그 이유다.
나라마다 제품마다 기준이 다르고, 인체 유해성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으니 소비자는 불안하다. 게다가 가습기 살균제, 살충제 계란, 생리대 유해성분 논란 등 우리 사회는 끊임없이 화학물질에 대한 불신과 불안을 부추기는 사건으로 얼룩졌다. 화학물질을 사용한 제품을 극도로 두려워하는 현상을 뜻하는 케미포비아라는 용어는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세척제 등을 직접 만들어 쓰거나 샴푸 없이 머리를 감는 등 화학제품을 기피하는 노케미(no-chemi)족도 생겼다. 여기서 두 가지 질문이 생긴다. 화학성분이 없는 제품만 사용하는 것이 가능할까. 화학성분이 없는 제품이 언제나 몸에 덜 해로울까.
독성학(toxicology)의 아버지라 불리는 스위스 의학자 파라셀수스(Paracelsus, 1493~1541)는 ‘아니다’라고 답할 것 같다. 그는 모든 물질은 독이고, 독이 없는 것은 없으며, 독과 약의 차이는 용량에 달려 있다고 했다. 화학성분이 용량에 따라 독이 되기도 약이 되기도 한다면, 사람들이 노출되는 화학성분의 총량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은 매우 중요해진다. 그런데 현재의 법적 체계로는 이 총량을 정확히 파악하기가 어렵다. 파라벤만 해도 그렇다. 화장품에 포함되면 화장품법, 치약에 포함되면 약사법, 식품에 있으면 식품위생법에 의해 관리된다. 한마디로 제품 중심의 관리 체계다. 제품마다 허용 기준치를 관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소비자가 어떤 제품을 통해 어떤 유해성분에 얼마나 노출되었는지를 통합적으로 파악하고 관리한다면, 소비자를 더 안전하게 지킬 수 있지 않을까. 통합 관리 체계에서는 유해성분이 기준치를 넘으면 소비자는 그 성분이 포함된 제품의 사용을 줄이고, 기업은 그러한 제품 제조를 자제하며, 정부는 그 성분을 더 엄격히 규제할 수 있다.
화학물질이 없는 세상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대신 사람들이 유해물질에 노출되는 총량을 통합적으로 관리한다면 케미포비아나 노케미족과 같은 용어는 사라지지 않을까. 나 역시 매일 아침 더 평안한 마음으로 출근을 준비하지 않을까.
백혜진 식품의약품안전처 소비자위해예방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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