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1일 한국에 대한 수출관리 규정을 개정, 반도체와 TV, 스마트폰 제조에 필수적인 3개 품목에 대한 수출규제를 발표했다. 규제 강화의 이유로 ‘한일관계의 신뢰 손상’을 들었다는 점에서 지난해 10월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판결에 대한 사실상의 보복 조치다. 이는 ‘자유롭고 공정하며 차별 없는 무역’을 강조한 오사카(大阪)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공동성명과 배치된다는 점에서도 비판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이날 오전 홈페이지를 통해 ‘대한민국에 대한 수출관리 운용 개정에 대해’라는 제목의 자료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수출 규제 품목은 TV와 유기EL디스플레이에 쓰이는 플루오린 폴리이미드와 반도체 제조에 필수적인 고순도 불화수소(에칭가스)와 리지스트다. 일본이 세계시장의 70~90%을 점유하고 있는 품목이다.
이들 품목에 대해 그간 간소화했던 수출 절차를 수정, 4일부터 일본 기업이 한국에 해당 품목을 수출할 때는 계약 건당 허가와 심사를 받도록 한 것이다. 신청 허가와 심사를 거치는 데는 약 90일 정도가 소요될 전망이다.
경제산업성은 이와 함께 군사분야에 전용될 수 있는 첨단재료 등에 대한 수출 허가신청이 면제되는 외국환관리법상 우대제도인 ‘백색 국가’ 대상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시행령 개정 작업에도 들어갔다. 이날부터 각계의 의견을 한달 가량 수렴한 뒤 다음달 1일부터 새로운 제도를 운용한다는 방침이다. 일본 정부가 지정한 백색 국가는 미국, 영국, 독일 등 27국으로 한국은 2004년에 지정됐다. 한국이 백색 국가에서 제외될 경우 일본 업체가 집적회로 등 일본의 안보와 관련된 제품을 한국에 수출할 때에도 건별로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경제산업성은 이번 조치와 관련해 “수출관리 제도는 신뢰관계를 토대로 하고 있지만, 한일 간에는 신뢰가 심각하게 손상된 상황”이라며 “한국과는 신뢰관계를 기초로 한 수출관리가 곤란해졌다”고 설명했다. 한국과의 강제징용 판결 갈등을 둘러싼 대항조치의 성격이 있음을 밝힌 것이다.
일본 정부는 그간 “한국에 압류된 일본 기업의 자산이 매각될 경우 대항조치에 나설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밝혀 왔다. 그러나 매각이 이뤄지기 전에 수출 규제 조치를 취한 점에서 오는 21일 참의원 선거를 의식한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지난달 25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일본의 보복성 조치가 나온다면 (우리 정부도) 가만 있을 수 없다”고 밝혔다. 이번 조치로 인해 한일 간 강제징용 갈등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 것으로 보인다.
한편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지난달 29일 기자회견에서 ‘자유롭고 공정하며 차별 없는 무역’ 원칙을 포함한 공동성명 발표를 외교 성과로 강조했다. 그러나 이른바 ‘오사카 선언’을 발표한 지 이틀 만에 한국에 대해서만 이를 뒤집는 조치를 발표한 것이다. 이에 교도(共同)통신과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 등 일본 언론에서도 “이번 조치로 일본 수출 기업들도 영향을 받을 우려가 있다”는 지적과 함께 한일관계 악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도쿄=김회경 특파원 hermes@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