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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밥 먹고 커피 일상화… “이왕이면 더 맛있게” 미식의 단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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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밥 먹고 커피 일상화… “이왕이면 더 맛있게” 미식의 단계로

입력
2019.07.03 04:40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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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벅스 상륙 20년 달라진 커피문화

지난달 21일 서울 중구의 한 폴바셋 매장에서 참가자들이 핸드드립에 대한 강의를 듣고 있다. 최근 이처럼 커피를 취미로 배우는 일반인들이 부쩍 늘고 있다. 류효진 기자
지난달 21일 서울 중구의 한 폴바셋 매장에서 참가자들이 핸드드립에 대한 강의를 듣고 있다. 최근 이처럼 커피를 취미로 배우는 일반인들이 부쩍 늘고 있다. 류효진 기자

“’카메라마끼아또 주세요’라는 주문에 한참 웃었던 기억이 나네요.”

정운경(42) 스타벅스코리아 운영팀장은 1999년 7월 스타벅스 1호점인 이대점에서 바리스타로 일하며 스타벅스의 한국 상륙을 생생히 목격했다. 그는 “테이크아웃 잔의 스타벅스 로고가 정면으로 보이도록 들고 다니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던 시절”이라고 기억했다. 손님도 파트너(직원)도 가장 낯설어했던 건 생소한 메뉴 이름들. 발음도 어려운 ‘카라멜마끼아또’를 ‘카메라마끼아또’로 ‘아이스 톨 모카’를 ‘아이스 톨 모케’로 잘못 부르고는 서로 한바탕 웃는 일이 흔했다. 스타벅스는 이후 한국의 거리 풍경을 빠르게 바꾸기 시작했다.

2019년 7월, 거리에는 커피 전문점이 즐비하다. ‘밥 먹고 커피’는 공식이 됐다. 커피 값이 비싸다며 ‘된장녀’ 논란이 불거질 당시만 해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국내 커피시장 규모도 급격히 성장하는 추세다. 2006년 3조원에서 2017년 11조7,000억원으로 뛰어올랐다. 기호식품이었던 커피가 하나의 식문화로 자리 잡으면서 하루에 한 잔 이상씩 마시는 사람도 흔해졌다. 1인당 연간 커피 소비량은 512잔(2017년)에 달한다.

이화여대 앞에 위치한 국내 스타벅스 1호점. 스타벅스코리아 제공
이화여대 앞에 위치한 국내 스타벅스 1호점. 스타벅스코리아 제공

◇스타벅스가 바꾼 풍경들

국내 커피 문화의 대중화는 스타벅스를 빼놓고는 이야기하기 어렵다. 이화여대 앞에 처음 문을 연 스타벅스는 당시만 해도 커피 하면 ‘맥심’을 떠올렸던 한국 커피 시장의 중심이 커피 전문점으로 옮겨가는 기폭제가 됐다. 1999년 한국 시장에 처음 발을 내디딘 스타벅스는 이후 빠르게 매장을 확장, 현재는 전국 1,262개 매장에서 1조5,224억원의 매출을 내며 국내 커피 전문점 매출 1위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스타벅스가 이처럼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로는 개인의 입맛대로 고를 수 있는 ‘커피 메뉴의 다양화’가 꼽힌다. 1990년대에도 다방 외에 커피숍이 있었지만 메뉴의 종류는 기껏해야 ‘커피’ ‘카페라테’ ‘카페모카’ 등에 불과했고 커피 맛도 약했다. ‘카라멜마끼아또’ ‘프라푸치노’ 같은 생경한 메뉴명과 ‘투샷’의 진한 커피 맛이 보편화한 것은 스타벅스 등장 이후다. ‘스타벅스화’의 저자 유승호 강원대 영상문화학과 교수는 “스타벅스에 가면 디카페인, 우유, 두유 등 자신의 취향이 반영된 메뉴를 선택할 수 있는 ‘커스텀’ 문화가 젊은층에 어필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스타벅스 메뉴는 통상 약 100종 정도 되는데, 이마저도 시럽이나 물의 배합에 따라 더 늘어날 수 있다. 매장 직원들 사이에서도 손님 응대보다 레시피 외우는 일이 가장 어렵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스타벅스는 카페에서 공부를 하는 ‘카공족’을 등장시키며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탄생시키는 계기도 됐다. 스타벅스도 회전율을 높이기보다는 콘센트, 무료 와이파이를 제공하며 이 카공족을 끌어들이는 전략을 택했다. 직장인 김은영(33)씨는 “동네 카페와 달리, 오래 있어도 눈치 주지 않아 자주 간다”며 “도서관처럼 너무 조용하지 않고 적당한 소음이 있어 집중해 일하기 좋다는 점도 매력”이라고 말했다.

◇취미가 커피가 된 일반인들

스타벅스 상륙 20년, 많은 사람들이 이제는 커피를 사 먹는 데서 더 나아가 직접 배우고, 내려 마시며 취미로 삼고 있다. 지난달 21일 서울 중구에 위치한 커피 전문점 폴바셋 매장. 이날은 폴바셋에서 운영하는 커피 수업 중 하나인 ‘브루잉(Brewing) 클래스’가 한창이었다. 브루잉이란 통상 에스프레소 머신을 활용하지 않고 중력의 힘이나 미량의 압력을 이용해 커피를 우려내는 방법을 의미한다. 두 시간 동안 참가자 3명은 바리스타의 지도 아래 직접 핸드드립과 에어로프레스를 활용해 커피를 내리는 실습을 했다.

커피를 직접 내려 먹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지식과 기술을 요하는 일이었다. 이날 강의를 한 이미현 점장은 “특히 핸드드립의 경우 원두의 양, 물의 온도, 물줄기의 굵기 등 소소한 차이에 따라 맛이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원두의 색이 연하면 산미가 강하고, 색이 진할수록 단맛이 난다”며 “산미가 강한 원두로는 보통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단맛이 진한 원두로는 라테를 마시면 고소한 맛을 느낄 수 있다”는 구체적인 팁을 제공했다.

이들은 모두 커피를 배우는 일이 취미라고 했다. 수업을 들은 이주현(30)씨도 “손으로 직접 하는 일이라 재미있고, 커피도 더 맛있게 먹고 싶어 배우게 됐다”며 “같은 원두, 같은 도구를 쓰더라도 사람마다 맛의 차이가 있는데 그런 디테일을 알아가는 맛이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원데이클래스 앱에선 ‘핸드드립 클래스’나 ‘바리스타 자격증 클래스’와 같은 커피 클래스가 인기다. 폴바셋처럼 대형 커피 전문점이 아니더라도 소규모 동네 카페에서 낮에는 커피를 팔고 영업 시간 이후부터는 커피 교육을 하는 곳도 많다. 직장인 최모(35)씨도 퇴근 후 커피 수업을 듣다 바리스타 자격증까지 획득했다. 그는 “은퇴를 하고 카페를 차려보려는 생각이 있어 시작했는데 취향대로 커피 주문을 할 때도 유용하고 배우다 보니 취미가 돼 버렸다”며 “최근에는 원두 이름을 해석하는 수업에도 등록했다”고 말했다.

◇한 잔에 9만원짜리 커피도 등장… ‘스페셜티’ 대중화

지난달 미국 커피전문점 체인 ‘클래치(Klatch) 커피’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커피를 선보였다. 한 잔에 75달러(약 8만7,000원)로, 무려 9만원에 육박하는 가격을 책정한 것이다. 커피 값이 이리도 비싼 이유는 커피 원두가 그만큼 비싸기 때문. 이 원두는 파나마에서 생산한 ‘엘리다 게이샤 내추럴’로 커피계의 아카데미로 불리는 ‘베스트오브파나마 커피 대회’에서 우승한 뒤 경매에서 파운드(453g)당 803달러(약 92만8,000원)라는 역대 최고가에 팔렸다.

현재도 충분히 포화 상태로 보이는 국내 커피 시장은 어떻게 될까. 이후의 커피 시장이라는 게 있을까 싶지만, 전문가들은 이 같은 스페셜티, 즉 고급 커피가 한국 커피 시장에서도 대중화되는 단계가 국내 커피 시장의 미래라고 보고 있다.

업계에선 통상 커피 시장의 발전을 세 가지 단계로 나눈다. 인스턴트 커피 시대를 ‘제1의 물결’이라고 한다면, ‘제2의 물결’이란 스타벅스와 같은 신선한 원두로 만든 커피를 즐기게 된 시대를 일컫는다. 마지막 단계는 커피 농장으로 대규모 자본이 유입되면서 커피 본연의 맛과 향에 집중하는 시기, 즉 고급 커피의 보편화 단계다.

스페셜티란 미국스페셜티커피협회(SCAA) 품질 기준 100점 중 80점 이상 획득한 원두로, 쉽게 말해 상위 2%의 좋은 원두로 만든 커피를 일컫는다. 산지가 특정되고, 커피 재배와 가공 과정에서 전문적인 인력이 투입된다는 게 특징. 미국의 커피 시장에서는 이런 스페셜티가 50%를 차지하며 커피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지난 5월 3일 서울 뚝섬역 인근에 1호점이 문을 연 ‘블루보틀’은 커피의 제3의 물결을 대변한다. ‘커피계의 애플’로 불리는 블루보틀은 창업자인 제임스 프리먼이 상업적인 커피의 품질에 실망해, 직접 차고지에서 로스팅한 원두를 선보이며 출발한 브랜드다. 이런 창업자의 철학에 따라 손님은 커피 원두를 직접 고를 수 있으며, 커피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는 브랜드 철학 때문에 매장에 와이파이와 콘센트가 없다. 스타벅스와는 분명 다른 커피 전문점이다. 스타벅스에 익숙해진 한국 소비자들에게는 생소할 수 있지만, 블루보틀은 오픈한 지 두 달 가까이 됐는데도 여전히 주말에 한 시간씩 기다려야 주문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반응이 뜨겁다.

기존 한국 시장의 주요 커피 전문점들도 이런 세계적 흐름에 따라 고급 커피 매장을 따로 운영하고 있다. 스타벅스 리저브 매장이 대표적이다. 일반 매장에서는 가장 비싼 커피가 6,000원대의 프라푸치노라면, 리저브 매장에서는 한 잔에 1만2,000원대까지 하는 커피를 판매한다.

바리스타이자 커피칼럼니스트 심재범씨는 “스페셜티 커피는 생두나 원 재료를 중요시한다는 점에서 미식을 중요시하는 시대 흐름과도 맞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점점 더 좋은 커피를 찾고 있다”며 “스페셜티 커피가 주류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분석했다. 커피칼럼니스트인 베이루트(필명)는 “요즘에는 기업에서 문화 공간을 만들거나 팝업 스토어를 열 때도 스페셜티 커피가 빠지지 않는다”며 “피로를 없애기 위해 커피를 마시던 때와 비교하면 이제는 커피를 하나의 브랜드로, 문화로 받아들이는 시대가 됐다”고 말했다.

송옥진 기자 cli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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