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오사카 G20서 정상회담]
트럼프 “中 지재권 침해 반대”… 초강경파 나바로 협상단 포함
美中 ‘지재권 다툼’ 빅딜 가능성은 희박… 中 “굴복은 없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29일 오전 11시 30분 정상회담에서 ‘세기의 담판’을 갖고 지난 1년간 전 세계를 뒤흔든 무역 전쟁의 향방을 가른다. 확전, 휴전, 합의. 이 세 가지 가운데 ‘휴전’이 가장 현실성 있는 정상회담의 결론으로 관측되어 왔지만 회담 직전까지 양측은 기싸움의 고삐를 늦추지 않아 미국의 중국에 대한 추가관세 부과 등 확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번 담판 후 미중의 세력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면 우리 정부에 대한 양국의 줄 세우기 압박이 가속화하고, 북핵 문제에 대한 국제 공조가 타격을 받게 돼 한반도 정세도 크게 출렁일 전망이다. 2019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폐막일인 이날 오전 벌어질 두 스트롱맨(Strongman)의 대결을 지켜보기 위해 세계는 일본 오사카(大阪)로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집중시키고 있다.
회담을 하루 앞둔 28일 두 정상은 G20 정상회의 행사가 진행되는 인텍스 오사카 곳곳에서 상대국을 향해 날이 선 설전을 이어갔다. 사실상 29일 담판을 겨냥한 기선제압의 뉘앙스도 풍겼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의 인터넷 통제를 염두에 둔 듯이 “국경을 넘는 데이터 유통을 제한하는 움직임은 무역을 저해하고 사생활과 지식재산권을 침해해 반대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디지털 경제 관련 행사에 참석해 중국의 화웨이를 지적하듯 “디지털 무역이 확대되면서 5G네트워크의 보안성이 확립돼야 한다”고 발언했다. 중국에 대해 6개월 간의 관세 부과 유예를 약속했다는 최근 관측에 대해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그렇지 않다”고 일축했다.
시 주석도 질세라 “데이터에 대한 각국의 자주적 관리권을 존중해야 한다”라며 “공평하고 공정하며 차별 없는 시장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문을 닫고 발전하거나 인위적으로 시장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는 말로 트럼프 대통령을 자극했다. 미국의 화웨이 제재를 은근히 공격한 발언이다. 이 같은 팽팽한 기 싸움 속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초강경 대중 매파인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정책 국장을 막판에 협상단에 포함시키는 강수를 던졌다. 나바로 국장은 북미 비핵화 협상에서 북한이 극도로 반발하는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 비교될만한 존재로, 중국을 ‘세계 경제의 기생충’에 비유하며 중국 때리기의 선봉에 서왔다. 트럼프 정부 내 대중 온건파들은 그의 합류로 협상 타결이 힘들어지리라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29일 미중 정상회담은 결과를 점치기 어려운, 그야말로 각본 없는 담판 형국이다. 앞서 홍콩 언론을 중심으로 양측이 물밑 교섭을 통해 관세부과 중단 등의 휴전에 합의했다는 보도가 나왔지만 래리 커들로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 위원장은 27일(현지시간)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이를 가짜뉴스라며 “사전 합의는 없다”고 일축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은 현재 상황에 매우 만족해하고 있다”면서 “필요하다면 중국에 추가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마지막까지 중국을 향해 강경한 자세를 유지하겠다는 트럼프 정부의 확고한 신념에 따른 것이다.
실제 지난 24일 이뤄진 고위급 전화통화에서도 미중 양측은 이견을 좁히기는커녕 기싸움을 이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무역 협상단 좌장격인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균형 잡힌 합의’가 필요하다는 류허(劉鶴) 중국 부총리의 요구를 일축했다고 CNBC가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라이트하이저 대표는 중국이 미국의 지식재산권을 훔쳐 현 상황에 이른 것이기 때문에 ‘균형적인 합의’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박한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은 지식재산권 보호 등 미국의 요구사항을 들어주면 미국도 즉각적인 관세 폐지 등으로 그만큼 양보해야 한다는 주장이지만, 미국은 중국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 잡는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어서 이번 협상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 차를 드러낸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폭스비즈니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번에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현 2,500억 달러 규모 중국 제품에 25% 관세가 부과되는 데 이어 3,000여억 달러에 10% 관세를 추가 부과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은 상태다. 하지만 미국 의회에서 공화 및 민주당을 막론하고 혹시 트럼프 대통령이 섣불리 합의 할 수 있다는 경고 목소리도 나왔다.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대통령이 중국의 약탈적인 경제 정책을 개혁하는 데 부족한 나쁜 합의를 수용해선 안 된다”고 압박했다. 이는 중국에 대한 강경 노선이 미국 정치권에서 초당파적 사안임을 보여준 것으로 내년 대선 레이스에 일찌감치 뛰어든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어설픈 합의 보다는 중국에 대한 공세가 정치적으로 더 유리하다는 진단이 적지 않다.
이번 담판에서 일방적으로 양보하는 모습으로 비칠 경우 자국 내에서 정치적 타격을 받게 되는 것은 시 주석도 마찬가지다. 중국은 28일 관영 매체를 총동원해 여론전을 펼치며 “굴복은 없다”는 결연한 의지를 드러냈다. 관영 환구시보는 “미국의 압박은 이미 무효로 증명됐다”면서 “3,250억달러 규모 중국 상품의 관세를 추가로 올리겠다고 협박하며 연일 소리를 지르는 것 자체가 미국이 초조하다는 증거”라고 반박했다. 인민일보는 “한쪽이 다른 쪽을 압도하는 방식이 부실하다는 건 지난 1년여간 숱하게 확인했다”며 “무역전쟁의 해법은 패권주의가 아니라 대화와 협상”이라고 상호 균형을 부각시켰다.
29일 미중 정상회담의 핵심 쟁점 중 하나는 중국 국내법 개정이다. 미국은 지식재산권 보호와 강제 기술이전 금지를 보장하기 위해 중국이 법을 바꾸라고 줄곧 요구해왔다. 미국과 합의해도 이행을 보장할 수 없으니 법을 뜯어고치라는 것이다. 이에 중국은 “그동안 우리가 도둑질을 해왔다는 것이냐”며 “미국의 치욕적인 내정 간섭”이라고 격하게 반발했다. 지난달 초 150페이지 분량의 무역합의 초안을 주고 받는 과정에서 틀어진 것도 이처럼 법률 개정을 둘러싼 양국의 이견이 불거진 탓이다.
이 같은 양국의 팽팽한 입장과 정치적 이유 등으로 중국 국내법 개정과 미국의 즉각적인 관세 철회 등이 합의되는 빅딜이 이뤄질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게 중론이다. 대신 미중 양국이 서로의 기업을 겨냥한 카드를 적절히 구사하며 체면 치레를 하는 선에서 일부 합의가 나올 수 있다. 이와 관련 중국 신랑망(新浪網ㆍ시나닷컴)은 시 주석이 G20정상회의 연설에서 시장 추가 개방, 수입의 자발적 확대, 관세 인하 등을 골자로 한 대외 개방 조치를 제시할 것이라고 전했다. 일종의 선제적 ‘성의 표시’로 무역 전쟁 유예를 끌어내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중국이 시급한 건 대미 항전의 상징으로 부각된 통신장비 제조업체 화웨이의 족쇄를 푸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27일(현지시간) “시 주석이 트럼프 대통령과의 무역 담판에서 화웨이에 대한 미국의 제재 해제를 먼저 요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국은 외국기업 블랙리스트를 조만간 발표할 예정인데 미국 기업을 볼모로 삼을 가능성이 크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굿딜 아니면 노딜”이라고 공언해온 터라 찔끔찔끔 합의하는 미적지근한 결론에 그칠지는 의문이다.
현 상황에선 지난해 12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미중 정상회담 때처럼 상호 보복전을 보류하는 일시 휴전을 맺어 무역협상을 다시 재개하되 시간을 벌면서 상대의 약점을 공략하는 장기전으로 흐를 공산이 가장 크다. 중국 CCTV는 “미국 농민의 수입이 2013년 900억달러에서 올해 360억달러로 급감했고, 부채는 4,270억달러로 치솟아 1980년대 농업위기 이후 최고 수준”이라고 전했다. 중국도 힘들지만 미국 역시 무역 전쟁을 감당하기 쉽지 않아 장기전에서 승산이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끝내 추가 관세 카드를 꺼내고, 급기야 시 주석은 희토류 수출제한으로 응수하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여지도 물론 남아 있다. 미중 무역 전쟁이 그야말로 벼랑 끝 치킨 게임 양상으로 치닫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태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29일 G20 정상회의 일정을 마친 뒤 곧바로 1박 2일간의 방한 일정에 돌입한다.
워싱턴=송용창 특파원 hermeet@hankookilbo.com
베이징=김광수 특파원 rolling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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