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ㆍ고양이도 사람만큼 암에 많이 걸리는데, 말이 통하지 않으니 답답하지요. 어디가 아픈지, 치료받고 좀 나아졌는지 알 수가 없어요. 그래서 정확한 연구와 처방이 더 중요합니다.”
‘왜 동물의 암세포를 연구하느냐’는 질문에 지난달 14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팰로앨토시 창업지원기관 스타트엑스(StartX)에서 만난 ‘임프리메드’(Imprimed)의 임성원 대표는 이렇게 답했다.
임 대표와 이혜련 대표가 공동 창업한 임프리메드는 ‘반려동물 암 치료’ 기업이다. 실리콘밸리에서도 반려동물 관련 비즈니스는 인기 아이템이다. 하지만 사료나 펫시터(주인 부재시 동물을 돌봐주는 관리사) 서비스가 아닌 질병 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기업은 여전히 소수에 불과하다. 사람 질병만큼 많은 연구가 이뤄지지 않은 분야이기 때문이다.
임프리메드는 반려견의 암세포를 분석해 가장 적합한 암 치료약을 처방하는 스타트업이다. 생명공학을 전공한 두 대표는 암 덩어리에서 떼어낸 암세포를 오래 생존시켜 임상실험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동물병원에서 견주의 동의를 받아 동물 환자의 암세포를 채취하고, 이를 임프리메드가 분석해 암을 치료할 최적의 약물조합을 제안하는 방식이다. 지금까지 240마리의 반려견에 대해 임상실험을 진행했다. 임 대표는 처방의 정확도가 90%에 달한다고 주장한다.
사실 임프리메드가 처음 시도한 건 사람의 암에 대한 처방이었다. 실제 사람 환자의 암 세포로 임상실험을 진행해야 했지만 개인정보보호 등 문제로 의사와 환자의 동의를 받기 어려웠다. 투자자들이 이들의 기술에 주목하며 ‘단 하나의 샘플이라도 보여주면 바로 투자하겠다’고 했지만 1년 넘게 ‘그 단 한 명’을 찾지 못했다고 한다.
그 때 이 대표가 생각해낸 것이 반려견 암 치료로의 ‘피봇(Pivotㆍ사업모델 전환)’이었다. 개와 사람의 유전구조가 유사한데다 암의 종류와 약물도 비슷했기 때문이다. 개 환자는 사람 환자보다 암세포 채취 동의나 절차가 간편한데다 생애주기가 짧은 것도 중요한 요건이었다. 미국 수의학암학회에 따르면 반려견의 질병 사망 중 절반이 암 때문에 일어나는 만큼 시장 가능성도 충분했다.
피봇 이후 사업에는 날개가 달렸다. 순식간에 반려견 수십여 마리의 암세포를 얻을 수 있었고 동물병원과의 협업체제도 구축됐다. 이후 실리콘밸리의 유명 벤처투자가인 팀 드레이퍼의 투자사 등에서 400만달러(한화 약 46억원)의 투자를 받았다.
임프리메드는 현재 암 치료를 할 수 있는 42개 동물병원과 제휴하고 있다. 초기 스타트업인 만큼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지만 ‘공짜’는 아니다. 병원으로부터 동물 환자의 건강 특성과 암 종류, 처방약 종류 등 주요 정보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임프리메드는 이 정보를 분석해 처방의 정확성을 높이는데 쓰고 있다. 내년 미국 내 정식 서비스를 시작하고 향후 공동창업자인 구자민 홍익대 화학공학과 교수와 함께 한국에도 진출하면 더 풍부한 자료로 정확한 처방을 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임 대표는 “반려견의 암을 치료하면서 수집한 데이터는 향후 분석을 통해 고양이나 사람의 암치료제 연구에도 활용될 수 있다”라며 “동물과 사람 모든 생명에 이로운 기업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팔로알토=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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