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디자인의 아버지’라 불리는 조니(조너선) 아이브 최고디자인책임자(CDO)가 올해 연말 약 28년간 몸담아 온 회사를 떠나는 것으로 28일 알려졌다. ‘미니멀리즘’이라는 단어로 대표되는 군더더기 없는 단순하고 간결한 애플 특유의 디자인 정체성을 확립한 아이브는 애플 디자인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이다. 애플의 혁신을 이끈 대표 제품인 아이맥부터 아이팟, 아이폰까지 모두 그의 손 끝에서 탄생했다.
영국 출신의 아이브가 1992년 애플에 입사한 이유는 매킨토시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 같은 컴맹도 매킨토시를 쉽게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 놀라 애플을 택했지만, 입사 초기에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의 능력이 본격적으로 꽃피운 것은 ‘애플의 아버지’ 스티브 잡스가 97년 경영 일선에 복귀한 이후다. 당시 아이브는 디자인보다 엔지니어 설계를 우선시 하던 길 아멜리오 최고경영자(CEO) 체제에 불만을 품고 퇴사를 결심했으나, 잡스는 그의 디자인에서 ‘애플 부활’의 가능성을 읽었다. 잡스는 같은 해 아이브를 산업디자인 수석부사장으로 앉히고 디자인 팀의 사내 권한을 확대했다. 엔지니어가 기기를 설계하면 디자이너가 외형을 구상하던 기존 작업 과정을 뒤집어 디자이너가 제품 설계의 중심에 자리하게 만들었다. 사교적인 편이 아니었던 잡스는 아이브 만큼은 ‘영혼의 단짝’으로 여기며 매일 점심을 함께하고 오후에는 디자인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이 같은 잡스의 전폭적인 지원과 지지는 결국 아이브를 애플 디자인의 아버지로 키워냈다. 아이브가 첫 작품으로 98년 내놓은 개인용 데스크탑 컴퓨터 아이맥 시리즈는 부도 직전까지 물렸던 애플 부활의 신호탄이 됐다. 대부분의 컴퓨터가 모노톤이던 시절 반투명한 푸른색 플라스틱으로 외관을 감싼 디자인은 점차 시장에서 밀려나던 매킨토시의 점유율을 끌어올렸고, 반투명한 플라스틱은 산업디자인 전반에 유행처럼 퍼지기도 했다.
이어 아이브가 이끄는 디자인팀이 디자인을 책임진 아이팟과 아이폰, 아이패드 등을 내놓을 때마다 업계와 소비자들은 기기의 기능은 물론 애플 고유의 디자인에 열광했다. 잡스는 사망 전 간부들에게 자신의 영향력에 얽매이지 말라고 조언했지만, 디자인에 관해서는 아이브에게 일임하라고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이브는 2015년 제품 디자인 업무를 잠시 중단하고 본사의 신사옥 애플파크의건설 책임자를 맡아 소비자들의 아쉬움을 자아냈다. 그리고 2년 만에 애플파크 준공이 완료되자 디자인 업무 일선으로 복귀했으나 결국 ‘독립의 길’을 택하게 됐다.
팀 쿡 애플 CEO는 “조니는 디자인 업계에서 빼어난 인물이며, 애플의 부활에 기여한 그의 역할은 결코 과장되지 않았다”면서 “획기적인 1998년의 아이맥부터 아이폰, 그리고 애플파크에 이르기까지 그는 너무도 많은 에너지와 관심을 쏟아 부었다”고 말했다.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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