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이 자국 이익을 수호하기 위해 각종 꼼수를 동원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미국의 제재를 무시하고 이란산 원유를 조용히 수입하는 건 물론, 원산지를 다른 국가로 속여 미국의 관세를 피하고 있다는 것이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기간 열리는 미중 정상회담에서 양 정상이 뚜렷한 합의를 내놓지 못한다면, 중국의 이 같은 꼼수 관행이 한동안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26일(현지시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중국은 수십억 달러 규모의 전자제품, 컴퓨터 등을 제 3국에서 생산한 것으로 속여 미국에 판매하고 있다. 미국으로 향할 화물선을 잠시 다른 나라에 정박한 뒤, 원산지 라벨을 ‘메이드 인 베트남’ 등으로 바꿔 단다는 것이다. 앞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5월 2,500억달러 규모 중국산 수입품에 25% 관세를 부과했고, 나머지 3,000억달러에 대해서도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중국이 다른 국가 이름을 빌리면 해당 관세를 회피할 수 있게 된다.
이 같은 사실은 무역통계에서 확인 가능하다. 올해 1~5월 베트남산 컴퓨터ㆍ전자제품의 대미 수출은 18억달러로 1년 사이 71.6% 증가했다.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동일 품목 수출 증가율의 5배가 넘는 수치다. 동시에 베트남이 중국에서 해당 품목을 수입한 규모는 51억달러로 80.8% 상승했다. 또 같은 기간 베트남의 기계ㆍ장비 제품 대중 수입은 29.2%, 대미 수출은 54.4% 늘었다. 중국산 상품이 베트남으로 수출된 뒤, 베트남산으로 무늬만 바뀌어 미국에 재수출됐다는 얘기다.
중국의 ‘원산지 바꿔치기’는 이미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미 세관국경보호국(CBP) 대변인은 WSJ에 최근 베트남, 필리핀, 말레이시아에서 이 같은 사례가 적발됐다고 전했다. 해운업계에 따르면 멕시코, 세르비아 등 아시아 바깥 국가도 중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미국은 지난해 5월 베트남산 철강 수입품에 250% 징벌적 세금을 부과하는 등 대응 캠페인을 벌이고 있지만, 환적 관행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아울러 중국은 미국의 대이란 제재를 무시하고 조용히 이란 원유를 수입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인공위성을 이용해 원유 흐름을 추적하는 ‘탱커트래커스’를 인용해 석유 100만배럴을 실을 수 있는 유조선 ‘살리나’가 지난달 28일 이란을 출발해 이달 20일 중국 칭다오(靑島) 인근 젠저우(建州) 항구에 도착했다고 보도했다. ‘탱커트래커스’의 설립자 사미르 마다니는 “앞으로 24시간 안에 200만배럴을 실을 수 있는 초대형 이란 유조선이 톈진(天津)에 정박할 것”이라며 “중국이 더 많은 이란 원유를 수입할 것으로 본다”고 했다.
중국의 이란산 원유 수입은 지난달부터 제재 면제 조치를 폐기하고 이란산 원유 수출을 ‘제로’로 만들겠다는 미국 정부 입장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다. 에너지분석업체 FGE는 이란의 원유 수출이 이번 달 하루 50만배럴 이하로 급감할 것으로 예상하면서도 이중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20만배럴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이란의 내부 인사는 FT에 “미국의 제재로 원유 수출이 줄긴 했지만 공개된 수치보다는 훨씬 많다”고 했다.
손영하 기자 froze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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