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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담] "연금수령, 노동 불일치로 은퇴절벽... 정년연장 논의 서둘러야"

입력
2019.06.27 20:00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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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삼식 한양대 정책학과 교수ㆍ고령사회연구원 원장

이삼식(왼쪽) 한양대 고령사회연구원 원장이 65세 정년연장 문제를 주제로 조재우 논설위원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고영권 기자
이삼식(왼쪽) 한양대 고령사회연구원 원장이 65세 정년연장 문제를 주제로 조재우 논설위원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고영권 기자


‘65세 정년연장’은 꼭 필요하고 다급한 문제일까.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느닷없이 “정년 연장을 사회적으로 논의할 시점”이라고 화두를 꺼낸 이후 기대와 우려가 엇갈리고 있다. 행여 총선과 대선 등에 이용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물론 올해부터 생산가능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하면서 국가 차원의 노동력 규모 유지가 급선무가 됐고, 너무 속도가 빨라진 고령화에 대처하려면 불가피한 측면도 없지 않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청년실업 문제가 20년 이상 해결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자칫 세대갈등을 유발할 소지가 있고 사회적 합의에 이르는 것도 순탄치 않아 보인다. 반면 일본은 ‘65세 정년’ 제도가 순조롭게 착근돼 이제는 ‘70세 정년’을 향한 법제화가 진행되고 있다. 일본을 닮아가는 한국의 인구구조상 우리도 불가피하게 일본 모델을 눈여겨볼 여지가 없지 않다. 따라서 당장 도입은 어렵더라도 정년연장에 대한 사회적 논의만큼은 서둘러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이삼식 한양대 고령사회연구원 원장을 만나 얘기를 들어봤다.

-정부 차원에서 65세 정년연장을 화두로 꺼낸 건 이례적이다.

“시급하다. 우리나라는 노인이 일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노년기 노동은 비자발적이고 어쩔 수 없이 하는 생계유지형이기 때문에 만족도도 처참하다. 이미 10년 전부터 사회보장 사각지대가 발생했다. 올해부터 생산가능인구는 감소하고 고령화는 급속도로 진행된다. 당장은 아니지만 2030년대 초가 상당히 의미가 있는 시기다. 베이비붐 세대를 1963년생까지로 보지만, 학계는 오히려 1974년생까지로 본다. 연간 출생아 수가 100만 명 이상 됐던 시기가 1970년대 초반이다. 그 세대가 곧 50대에 진입한다. 60세가 정년이면 맘모스급 세대가 2030년대 초에 노동시장에서 퇴장하는 셈이다.”

-사실상 ‘100세 시대’에 진입한 터라 시스템 전환이 필요한 것 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한국의 라이프 사이클은 평균수명 70세에 맞춰져 있지만 실제 평균수명은 90세에 육박한다. 20대 중반까지 교육을 끝내고 노동기에 접어든다. 50대에 노동을 끝내면 60대에 노후기를 맞이한다. 이런 사이클은 평균수명 70세 때는 맞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정년연장은 한국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거대한 시스템 전환을 위한 신호탄이 될 수 있다. 국민연금 수령 시기는 늦추면서 노동 사이클만 60세로 묶어둘 수는 없다. 오히려 정년연장부터 시작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

-총선이나 대선용으로 들고나온 게 아닌가 하는 의혹도 있다.

“물론 정치 논리로 시작될 수 있다. 의도가 불순하고 집권당과 정권에 유리하다 해도 건전하고 필요한 방향이라면 상관없다. 국민들이 표를 몰아주지는 않을 거다. 당장 혜택으로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적 효과가 크게 작동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야당도 대놓고 반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선수를 빼앗긴 것 같다.

“선수를 뺏겼지만 야당이 적극 논의해보겠다고 하면 오히려 국민 지지를 받을 거다. 선수를 빼앗겼으니 뒤로 가겠다는 건 후진국형 정치다. 적극적으로 획기적인 안을 낸다거나 청년층 문제를 잘 해결하는 절충안을 내는 게 중요하다.”

-고용률을 무리하게 높이려 하거나, 국민연금 고갈 문제를 정년연장으로 해결하려는 건 아닌가.

“역대 정권이 다 마찬가지지만 고령자 일자리는 공공부조형이다. 일이 있기 때문에 도와준 것이 아니라 도와주기 위해 일을 준거다. 그런데 정년연장 제도는 그 자리에서 더 일하는 거다. 퇴직해서 갑자기 거리 청소를 하거나 길거리 화단을 정리하는 것과 다르다. 지금 일자리에서 근로자들이 쌓아온 노하우나 경험을 충분히 활용해 2~3년 더 머물게 하는 것이 생산적, 재정적 측면에서 효과가 있다.”

-영화 ‘인턴’에 나오는 형태의 일자리가 되는 건가.

“그렇다. 정년연장은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다. 일본도 정년연장으로 갈 때 3가지 트랙으로 접근했다. 65세 정년제를 채택할지, 정년폐지를 할지, 해고 후 계속 고용할지 등이다. 세 가지 중에서 반드시 하나를 선택하라 했다. 게다가 아베 신조 총리는 70세 정년 논의를 서두르고 있다. 일본은 2013년에 65세 정년을 법제화했지만 아직 65세 정년이 완성되지 않았다. 3년마다 1년씩 올려 2025년에 65세가 되도록 계단식으로 정착해가는 구조다. 2025년이면 5년이나 남았는데 벌써 70세 정년 논의에 들어갔다. 70세로 갔을 때는 현행 3가지 형태의 선택지에 4가지를 더한다. 그중 하나가 전직 지원 제도다. 중소기업 등 다른 영역에서 일하도록 알선하는 것이다. 또 프리랜서로 나왔을 때 다시 계약해주거나, 창업했을 때 지원해주는 방식 등이다. 기업의 부담을 줄이는 방식이다. 일본의 70세 정년연장 계획은 이처럼 다양하다. 신체적, 인지적 노화에 맞게 짜고 있다.”

-일본의 시스템이 적절한가.

“일본에서 고령자 고용은 성공했다. 결과적으로 청년층 일자리와 충돌하지도 않았다. 단카이(團塊)세대(1947~1949년생), 즉 일본 베이비붐 세대들이 2005년에서 2007년에 은퇴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노동력이 부족해 청년층도 흡수하면서 고령자도 정년연장을 했을 때 기업에서 부담 없이 흡수할 수 있었다. 일본에 가면 난리다. 2005년 즈음 단카이 세대가 물러나기 시작하면서 청년층의 정사원 비율, 고용률 등이 굉장히 높아졌고 출산율과 혼인율도 올라갔다. 고령자도 건강만 허락되면 일한다. 일본의 고민은 노동력 부족이다. 우리나라도 인구 시계를 보면 2030년대에는 일본 같은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아직은 정년연장에 대한 비관론이 우세한 것같다.

“당연하다. 현재 관점에서 보면 아무 것도 될 것이 없다. 기업도 주 52시간제나 최저임금제 때문에 쓰나미 같은 압박을 당한다. 그런데도 여러 트랙을 동시에 진행하는 방식으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시스템을 조금씩 바꿔야 한다. 정년연장을 당장 하자는 것이 아니다. 생산가능인구, 노동력 부족,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 평균수명 연장 등을 고려해 준비해야 한다.”

-정부도 범정부 태스크포스를 운영하고 있다. 지금까지 흘러나온 얘기는 퇴직자를 재고용하는 사업장에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방식이다. 단기적으로는 기업이 자발적으로 고용자 채용을 하고, 중기는 정년연장, 장기는 정년 폐지로 가는 것이다.

“정부가 논의하는 것이 일단은 일본의 ‘계속 고용 제도’(정년 이후의 직원을 65세까지 재고용하는 방식) 형식인 것 같다. 그때는 임금도 노동시간도 달라질 것이다. 노동시장 유연화와 임금의 유연화가 같이 들어간다. 예를 들어 기업에서 50%를 주겠다고 하면 국가가 20%를 추가로 채워주는 거다. 정부가 어떻게 인센티브를 주느냐에 따라 고용 상황이 달라진다. 재정이 그런 쪽에 쓰이면 장점이 여럿 있다. 건강보험이나 연금 등 사회보장제도와 연결하면 선순환 구조를 가질 수 있다. 건강하면 의료비도 덜 쓴다. 사실 인구구조의 가장 큰 맹점은 노동력보다 소비 문제다. 노동계층이 축소되고 노년계층이 많아지면 그만큼 소비가 축소되고 내수시장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

-은퇴자의 소득이 끊기는 시점과 연금을 받는 시점을 연결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게 소득 크레바스(crevasse)다. 직장에서 60세를 못 채우고 나오는 사람도 많다. 직장에서 나오면 소득이 끊겨 절벽이 된다. 연금은 5년마다 1년씩 뒤로 움직이는데 노동시장은 그대로다. 연금은 당장 움직일 수 없으니 소득 크레바스를 줄여야 한다. 이를 줄이려면 절벽이 아니라 슬라이딩 구간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면 소득과 소비도 절벽이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모든 게 다 절벽이다. 대학 졸업하면 ‘취업 절벽’, 군 제대하면 ‘제대 절벽’, 여성들이 결혼과 출산을 하면 ‘경력단절 절벽’이 있고 마지막에는 ‘은퇴 절벽’이 나타난다. 앞의 절벽은 젊으니 헤쳐나갈 수 있으나 은퇴 후 절벽은 감당하기 어렵다. 이게 노후 빈곤과 자살로 이어진다. 이 절벽을 없애야 한다.”

-해외에서는 고령층이 정년 연장에 반대한다고 한다. 쉬고 싶은데 정부가 연금 지급 시기를 늦추려고 정년을 늘린다는 것이다.

“정년을 연장하면 고령자들이 죽을 때까지 일할 것 같나. 절대 아니다. 65세 되고 소득절벽이 없어지면 놀겠다는 사람이 많아진다. 미국은 정년선택제인데 일을 줘도 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소득 절벽 구간이 없어지고 사회보장이 확립되면 오히려 그때는 영국같이 캠페인을 해야 한다. ‘나이가 들었다고 일 안 하면 안 됩니다’라고. 나도 조금 있으면 일 안 할 거다. 놀러 다닐 거다.”

-연세가 어떻게 되시는지.

“묻지 말아달라(웃음). 나이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정년연장 혜택을 받을 대상도 아니다. 일본은 이미 대학교수 정년을 70세로 옮겨 놨다. 일본서 교수들과 회의하면 같은 또래 교수가 그런다. ‘학과에 가면 가장 젊다’고.”

인터뷰=조재우 논설위원 josus62@hankookilbo.com

정리=변한나(논설위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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