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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의원님 전상서

입력
2019.06.27 04:4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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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연령 55.5세, 평균 재산 41억, 남성 83%의 20대 국회 정체성은 우연의 결과일까. 안팎의 대답은 노(No)다. 홍인기 기자
평균연령 55.5세, 평균 재산 41억, 남성 83%의 20대 국회 정체성은 우연의 결과일까. 안팎의 대답은 노(No)다. 홍인기 기자

"젊은 정치인이 늘어야 한다." 납작하게 말하고 읽으면 이만큼 위험한 주장도 없다. 당사자주의의 함정 탓이다. 청년이 나서야만 청년 문제가 해결된다고 말하는 순간 우린 미궁에 빠진다. 모든 국민의 삶이 나아지길 희망하고 분투하는 정치인은 연령과 무관하게 존재한다. 반대로 이를 해결할 의지나 능력이 없는 생물학적 청년도 널렸다. ‘청년이 나서야만 풀린다’는 말은 나머지 정치인에게 면죄부도 준다. 일자리와 주거 등 각종 청년 문제는 누구만 나선다고 해결될 수준도 아니다.

세대 프레임 문제도 있다. 과연 전체 청년 세대의 삶이 중장년과 노년층의 삶에 비해 압도적으로 열악한지를 두고 이견도 있고, 이게 꼭 정치권의 무관심 탓인지도 입증하긴 어렵다. 다른 원인 탓일지 모를 ‘정치권 고령화’를 세대 간의 투쟁, 갈등, 게임의 틀로만 보면 계급 이슈, 거대 양당의 공생 구조, 정경 유착 등의 다른 갈등을 덮을 위험도 농후하다.

‘평균 연령 55.5세, 평균 재산 41억원, 남성 83%’로 요약되는 역대 최고령의 20대 국회. 어딘가 잘못됐다 싶어도 뇌리 구석으로 밀어뒀던 건 이런 이유 탓이다. “국회에 젊은 것들을 이식하는 일”로 해결되겠냐는 논의에 동의했다. 관점이 묘하게 움직인 건, ‘우리 정치권이 청년을 너무 모른다’는 분노가 곳곳에서 터질 무렵 들은 한마디 때문이다. "제가 아는 정당 청년조직 출신들은 거의 다 이렇게 말해요. ‘다시는 여의도 땅에 발도 안 붙일 거야’."

젊고, 기운차고 활발한 정치를 유독 상상하기 어려웠던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는 말. 그러고 보면 몰라도 너무 몰랐다. 그다지 낙관적이지도 않은 선거 판에 뛰어들어, 굳이 고군분투를 치르는, 이 나라의 젊은 혹은 남다른 정체성의 정치 신인들은 누구이며, 그들의 눈앞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나이 불문 내부자들이 ‘날것의 언어’로 전한 전말을 요약하면 이랬다. A당은 처음부터 인재 양성과 재생산에 관심이 없었다. 신인 진입은 권력자의 낙점으로 했다. 정당 기본 모델 자체가 없었다는 게 더 정확하단다. 그래도 ‘청년’이란 말로 표심을 모을 수 있단 건 본능으로 알았다. 일부 소수가 이유 없이 잘 풀렸다. 토양은 점점 척박해졌다.

B당은 ‘A당 같은 것들’을 이길 '강한 후보'와 투쟁력에 늘 목말랐다. 청년 후보를 내자는 말은 넘쳤지만 ‘표가 안 된다’는 논리가 더 승했다. 청년 비례대표 1, 2석이 생겼고, 오디션도, 열정 경쟁도 벌어졌다. 당원들은 현수막 달고, 선배 옆에서 깃발 흔들고, 웃고, 박수를 쳤다. 그러고 나면, 불 꺼진 극장을 나오듯 고개를 떨구며 여의도를 걸어 나왔단다. 의원직을 거친 이들 뒤에는 비수가 날아들었다. “시켜줬더니 뭘 했어?”

두 거대 정당 밖의 정치 신인들은 요원한 선거제 개혁을 기다리며 이 사달을 지켜볼 수밖에 없어 속이 탔다. ‘현역 기득권 강화’ ‘손쉬운 엘리트 충원’ ‘거대 양당’으로 수렴되는 정치 풍토와 선거제에서 견딜 수 있는 청년, 여성, 노동자, 빈자, 저학력자, 소수 정당원 등은 많지 않았다. 모든 야단법석을 보면서, “정치 말고는 내 삶을 바꿀 수단이 없더라”는 이들이 그래도 있다는 점이 감사할 지경이었다.

그런데도 대표선수가 된 젊은 정치인들에 대한 혹자의 평가는 박하기만 하다. 이 정치인들을 향한 세간의 박수와는 거리가 있다. 김광진 전 의원은 수십 년 묵은 사병 수통 전면 교체를 위한 예산편성 주도 등 군 인권 문제 해결에 앞장선 이력으로, 52년 만의 필리버스터 첫 주자로 시민사회에 강한 인상을 남겼다. 장하나 전 의원이 의정 활동을 통해, 이후 ‘정치하는 엄마들’ 활동가로 집중한 가습기 살균제 파문, 보육 문제, 유치원 비리, 통학차량 안전사고 이슈 등은 많은 청년 겸 부모들이 정치를 통해 가장 바뀌었으면 하는 대목을 적중한다. 이 평가의 괴리를 ‘세대 차’ 말고,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지 고심이 거듭됐다.

2015년 당시 새정치민주연합에선 이런 갈증이 담긴 ‘586 전상서’가 등장했다. ‘586=기득권’ 담론을 불러 온 공개 서한이다. 유독 표면화했을 뿐, 다른 당의 사정은 더하다. 국회 정상화도, 비례성 확대를 위한 선거제 개혁도 요원한데, 총선 시계만 다시 돌아가기 시작한 지금. ‘현역 기득권 강화’ ‘손쉬운 엘리트 충원’ ‘거대 양당’ 구조에 안주하려는 이들을 향한, 결이 다른 전상서가 필요한 건 아닐까 괜한 조바심이 든다.

‘애들은 나중에, 여성은 나중에, 노동자는 나중에, 고졸자는 나중에, 빈자는 나중에, 소수당은 나중에’를 외치는 귀하의 정치, 목표가 무엇입니까. 국민과 닮은 의회, 견실한 정치 발전, 내 삶이 나아지고 있다는 감동의 정치도 언제까지 ‘나중’이어야 합니까.

기획취재부 김혜영 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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