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를 쓴 의도가 뭐냐. 발행어음 시장을 죽이려는 거냐.”
스타트업ㆍ벤처기업의 자금줄이 되라는 취지로 대형 증권사에게 허용한 ‘발행어음’ 사업이 정작 스타트업ㆍ벤처기업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본보 보도(26일자 1, 5면)가 나간 뒤, 26일 대형 증권사들 사이에선 이런 반응이 먼저 들려왔다.
한두 사람의 얘기가 아니었다. “이런 기사가 나가면 사업 하기 힘들어진다. 증권 담당 기자가 너무 증권사를 괴롭히는 거 아니냐”는 모 증권사 관계자는 물론, 심지어 “아직 발행어음 사업을 못하고 있는 경쟁 증권사에서 찔러 준 얘기냐”는 음모론까지 있었다.
‘달을 가리켰더니, 손가락만 탓하는 꼴’이다. 발행어음으로 조달한 자금이 애초 취지대로 운용되지 않는 현실은 제쳐둔 채, 왜 그런 지적을 했냐고만 다그치는 게 지금 증권업계의 씁쓸한 현실이다.
업계 내 발행어음 관련자들은 이번 보도로 행여 사업이 쪼그라들까 전전긍긍이다. 금융당국이 ‘9조원 조달자금 중 벤처 투자는 0원’이라는 사실을 문제 삼아 추가로 발행어음 사업자를 허가하지 않거나, 기존 사업자에게 깐깐한 조건을 들이댈까 걱정한다. 하지만 자업자득이다. 정부는 증권사에게 모험자본 투자를 맡겼고, 이를 제대로 하지 않아 벌어지는 불리한 상황은 스스로 감내해야 한다.
줄곧 뒷짐만 지고 있는 금융당국도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발행어음은 금융당국의 ‘혁신 드라이브’ 결과물이다. 제도는 허용해 놓고, 스타트업ㆍ벤처 투자는 한 푼도 하지 않는 증권사를 방치해 둔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런데도 금융당국은 여전히 “발행어음 사업 평가는 시기상조”라는 말만 되풀이 하고 있다.
업계와 전문가들 사이에선, 만기 1년의 단기어음으로 조달한 자금을 과감하게 스타트업ㆍ벤처 같은 ‘고위험ㆍ장기 투자’ 대상에 쏟아 붓기 어려운 딜레마를 지적한다. 그래서 아직은 평가나 비판을 하기에 이르다는 볼멘소리도 나오는 듯하다. 하지만 이들 역시 ‘그런 구조적 한계가 있다면 애초 제도를 왜 허용했는지’ ‘왜 어음을 판 지 1년 반이 지나도록 벤처 투자가 1원도 없는지’ ‘언제까지 이런 현실을 방치해야 하는지’ 등에는 명쾌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기사를 쓴 의도를 다시 명확히 밝힌다. ‘정책의 취지가 제대로 구현되지 않고 있는 원인을 밝히고, 문제가 있다면 개선하자’는 것이다. 지금의 금융투자업계와 금융당국에 기대하기는 너무 어려운 요구인가.
이상무 기자 allclea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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