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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순 시인 “아시아 여자라 그리핀 시문학상 못 받는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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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순 시인 “아시아 여자라 그리핀 시문학상 못 받는 줄 알았다”

입력
2019.06.25 15:52
수정
2019.06.25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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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 수상 기념 기자간담회 열어… “한국 여성의 발화 보편성 보여줘”

2019 그리핀 시문학상을 수상한 김혜순 시인이 25일 서울 중구 달개비 컨퍼런스하우스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9 그리핀 시문학상을 수상한 김혜순 시인이 25일 서울 중구 달개비 컨퍼런스하우스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시상식장에 번역자 최돈미씨와 저만 아시아인이고 1,000여명의 관객이 전부 백인이었어요. 한 해 동안 영어로 번역된 시집이 500~600권인데, 최돈미씨가 우린 아시아인이고 여자니까 상은 못 받겠지만 축제를 즐기자고 해서 그런 마음으로 (캐나다에) 갔습니다. 제 이름이 불렸을 땐 너무 놀라서 아마 이건 현실이 아닌가 보다 생각했어요.”

김혜순(64) 시인은 25일 서울 중구 달개비 컨퍼런스하우스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상 받을 당시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김 시인은 시집 ‘죽음의 자서전’(영문제목 ‘Autobiography of Death’)으로 지난 6일(현지시간) 한국 최초로 캐나다 최고 권위의 그리핀 시문학상 그리핀 시문학상(Griffin Poetry Prize)을 수상했다. 이광호 문학평론가와 김나영 문학평론가가 함께 참석한 이날 간담회는 김 시인의 그리핀 시문학상 수상을 기념하고 수상 의미와 김 시인의 시 세계를 되짚어보기 위해 열렸다.

수상소감을 말하고 있는 김혜순 시인(왼쪽)과 최돈미 번역자. 문학과지성사 제공
수상소감을 말하고 있는 김혜순 시인(왼쪽)과 최돈미 번역자. 문학과지성사 제공

김 시인은 이날 공동 수상한 번역자 최돈미(57)씨와의 특별한 인연을 소개했다. 한국계 미국인으로 시인 겸 번역가인 최씨는 2000년대 초반 김 시인의 시를 번역하고 싶다며 서울을 찾았다. 이후 김 시인을 비롯해 최승자 시인 등 한국 여성 시인들의 시를 번역해 서구에 널리 알렸다. 김 시인은 “평소 번역 과정에서도 최돈미씨가 문장의 주어 같은 것을 묻기도 하고, 나 역시 이 시를 읽고 무엇을 느꼈는지 묻는 등 시와 개인사 전반까지 소통한다”며 “올해는 최돈미씨와 덴마크, 영국, 노르웨이 등을 다니며 함께 낭독회를 열기도 했다”고 전했다.

2016년 초 국내 출간된 ‘죽음의 자서전’에는 세월호 참사를 비롯해 우리 사회의 죽음을 주제로 한 시 49편이 실렸다. ‘49편’의 시는 49제를 상징한다. 김 시인이 2015년 뇌 신경계 문제(삼차신경통)를 겪으며 맞닥뜨린 고통 속에서 쓰였다. 김 시인은 “시인의 감수성이란 본래 소멸과 죽음에 대한 선험적 생각”이라며 “죽은 자의 죽음을 썼다기 보다는, 산 자로서 죽음을 쓴 시집으로 이러한 시적 감수성이 아마 심사위원에게 가 닿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2019 그리핀 시문학상' 수상작인 ‘죽음의 자서전’(오른쪽)과 최근작인 ‘날개환상통’. 연합뉴스
'2019 그리핀 시문학상' 수상작인 ‘죽음의 자서전’(오른쪽)과 최근작인 ‘날개환상통’. 연합뉴스

1979년 등단해 올해로 시작 40년을 맞은 김 시인은 독창적 어법과 전위적 상상력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여성시인으로 불려왔다. 현존하는 한국 현대 여성 시인 중 가장 많은 언어로 번역되고 소개된 시인이기도 하다. 이광호 문학평론가는 “기존에 한국 문학이 남성 작가의 큰 이야기 중심으로 세계에 소개돼 왔다면, 김혜순 시인의 수상은 한국의 여성적 발화가 어떻게 강력한 동시대 보편성을 갖는지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이번 수상 의미를 설명했다.

그리핀 시문학상은 2000년 캐나다의 출판 사업가 스콧 그리핀이 제정한 국제적인 시 문학상이다. 해마다 전년에 영어로 발표된 시집을 대상으로 캐나다ㆍ인터내셔널 부문 각 한 명의 시인을 선정해 시상한다. 시 부문 단일 문학상으로는 세계적 권위를 인정받는 상이다. 2001년 첫 수상자 배출한 이후 19년 동안 번역 시집에 수상이 돌아간 것은 2013년 팔레스타인의 가산 자크탄 시인과 한국의 김혜순 시인 단 두 명뿐이다.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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