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전 남편 살해 사건' 피의자 고유정(36)이 12일 오전 제주 동부경찰서에서 제주지검으로 송치되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고씨는 지난달 25일 제주시 조천읍의 한 펜션에서 피해자 강모(36)씨를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혐의를 받고 있다. 뉴시스

지난 한 달, 온 국민을 공분케 한 사건은 단연 고유정 사건이 아닐까 합니다. 간혹 주변인들은 저에게 이런 질문을 하곤 했습니다. “저 정도면 뭔가 병이 있는 거지? 네가 보기엔 어때?” 저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난 정신의학 쪽이 아니라서 알 수 없기도 한데, 아마 그런 판단 자체가 다소 위험하다고 들은 것 같아. 해당 질환 앓는 분들께 프레임이 씌워지잖아.” 하지만 제 주변을 넘어 많은 분이 궁금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만큼 쉬이 이해하기 어려운, 극도의 잔혹함이니까요. 그래서인지 사건 보도 초기에 ‘고유정은 경계선 성격장애’라는 보도를 간혹 볼 수 있었지요. 하지만 한 정신의학과 전문의가 “단정하기 어렵다”는 의견을 냈습니다. 경계선 성격장애에 반사회적 성격장애 등 세 가지 이상의 요소가 섞여 있는 것으로 보이기에, 단정을 내리는 것은 또 하나의 라벨링이 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라벨링이란 뭘까요? 쉽게 말해 어떤 사람에게 ‘그는 어떻다’라는 라벨을 붙이는 것을 말합니다. 크게 두 가지 형태로 나눌 수 있는데 첫째, 상대의 행동을 판단하는 필터로 쓰이는 경우가 있고 두 번째, 상대방에게 어떤 라벨링을 한 다음, 그에 맞게 행동할 것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전자의 경우, 이번처럼 쉬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강력 범죄자를 보거나,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대상을 볼 때 나타납니다. 하지만 상담을 하다 보면 일상에서 더 흔히 만날 수 있는 라벨링은 후자입니다. “너는 이런 아이니까 그렇게 행동하면 안 된다” 같은 것들이지요. 전자에 비해 사소한 듯하지만, 개인의 삶에 미치는 위력은 상당히 큽니다. 청소년기나 청년기, 또는 불가항력의 상황에서 약해져 있는 시기에는 특히 거대한 프레임으로 다가오곤 합니다. 가장 흔한 사례는 이런 것입니다.

학교에서 동기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카페 아르바이트를 할 때도 서툴러 자주 해고된 청년이 있습니다. 대학 4학년을 앞둔 그에게 대기업에 입사한 선배가 찾아와 이렇게 말하죠. “너는 내성적인 애라서 사기업은 어려울 것 같은데 공무원이 낫지 않냐?” 그 말 한마디에 이 청년이 설마 진로를 바꾸겠느냐고요? 의외로 그렇습니다. 그 내막은 이러합니다. ‘저 선배는 똑똑하고, 기업에도 다녀봤고, 나를 아껴서 진심으로 조언한 거니까 맞을 거야.’ 나보다 경험이 많은 친밀한 사람이 진심으로 한 조언이니까, 그 말은 반박할 수 없는 라벨이 되는 거지요.

그 청년은 정말 사기업에 가면 안 될까요? 조언한 선배는 그 ‘라벨’을 붙일 자격이 있을까요? 사례자는 ‘서비스업’이나 ‘대인 업무’에 어려움을 겪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사기업 적응능력으로 치환하는 것은 확대 해석이지요. 조언을 건넨 이 또한 직장인 2년 차를 넘지 않았고, 본인이 겪은 기업 문화는 단편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의 판단은 상당한 편향성을 내포하는 것이지요. 그런데도 유사 사례는 무수히 많습니다. “너 그런 애 아니었잖아. 엄마 실망하게 하면 안 되지.” “네 성격에는 거기 가면 힘들 거 같은데...” “세 번째 퇴사라고? 진짜 너 생각해서 하는 말인데, 끈기가 없는 건 아닌지 걱정돼.” “일 년 정도는 더 버텨야 하지 않을까?”

길을 잃고 갈팡질팡하는 누군가를 볼 때, 우리는 그를 사랑하는 만큼 조언을 건네고 싶어 합니다. 그 의도가 선하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지요. 하지만 내 언어들이 그에게 라벨이 되고, 삶의 가능성을 제한한다면 우리의 선의는 바르게 작용한 걸까요? 지금 우리 앞의 누군가에게 충고의 한마디를 건네고 싶을 때, 잠시만 멈추어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나의 언어가 그에게 혹여 라벨이 되지 않을지, 때로는 가만히 맞잡아 주는 손이 더 큰 도움이 되진 않을지.

장재열 청춘상담소 좀놀아본언니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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