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서 열린 10개국 정상회의서‘아세안의 시각’ 별도성명 첫 채택
‘일대일로(一帶一路: 육ㆍ해상 실크로드)’로 대변되는 중국의 팽창 정책과 이 같은 중국의 진출을 봉쇄하기 위한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충돌에 이어 양국간 무역전쟁이 첨예화하고 있는 가운데 동남아국가연합(ASEANㆍ아세안)이 심판을 자처하고 나섰다.
24일 아세안 사무국과 태국 외교부가 공개한 ‘제34회 아세안 정상회의 의장성명’에 따르면 아세안 정상들은 ‘인도 태평양에 대한 아세안의 시각(outlook)’이라는 별도 성명을 채택했다.
성명은 “인도-태평양의 보다 넓은 지역에서 아세안의 참여와 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것으로, 아세안이 주도하는 틀이 역내 협력과 대화의 장으로 기능할 것”이라며 별도 성명의 채택을 반겼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대동남아 정책인 ‘인도-태평양 전략’이 2017년 공개된 이후 그에 대해 아세안이 처음으로 내놓은 입장이다. 그간 아세안 국가들은 ‘아세안’이라는 명칭이 빠진 점, 미국의 대동남아 정책이 ‘아세안 중심성(ASEAN Centrality)’을 훼손하고 있다는 점 등을 들어 비공식적으로 불쾌감을 표시해왔다.
하지만 의장 성명과 별도 성명 곳곳은 미국과 중국을 자극하는 용어 사용은 피하면서 완곡한 표현으로 ‘아세안은 싸움의 장이 아니라, 상생의 공간 윈-윈의 장’이라는 사실들을 강조했다. 다섯쪽 분량의 별도 성명은 채택 배경에 대해 “인도-태평양은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곳이자 지정학적 변화가 무쌍한 곳”이라며 “이 역동성을 안정적으로 이끌고 가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 외에도 별도 성명의 목적과 원칙, 협력분야 등 총 23개 항목에 걸쳐 아세안의 입장을 표시했다. ‘약체 국가’ 모임인 이들은 양강 사이 ‘줄타기’를 통해 양쪽으로부터 인프라 등 ‘구애성’ 투자를 받으며 성장해왔지만, 자신들의 터전을 무대로 한 양강 갈등이 보다 격렬해지자 목소리를 높이는 것으로 보인다.
아세안 외교가 관계자는 “인도-태평양 지역에 대한 아세안의 입장 발표는 아세안이 10여년 전부터 강조하고 있는 ‘아세안 중심성’에 방점을 찍는 행보”라며 “남중국해 영유권 갈등, 항행의 자유 작전 등 당사자들의 이해 관계가 밀접한 이 지역에서 일어나는 일에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하겠다는 신호탄”으로 분석했다.
방법론에 있어 정상들은 동아시아정상회의(EAS)의 적극적인 활용을 제시했다. 아세안을 중심으로 이미 한중일, 미국, 러시아, 등이 참여하고 있는 동아시아 최대 대화체인 EAS 활용은 새로울 것 없지만 이번 정상회의를 계기로 아세안의 적극적인 개입, 중재 의지를 밝힌 것으로 평가받는다.
아세안 정상들은 또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타결에 강력한 의지를 피력했다. 미중 무역전쟁 격화로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대두되는 상황에서 아세안이 중심이 된, 세계 인구 절반인 36억명을 한데 묶는 자유무역협정 타결로 ‘아세안 중심성’을 경제분야로 견인 내지는 확장하기 위한 전략으로 분석됐다.
올해 아세안 의장국으로서 정상회의 의장을 맡은 쁘라윳 짠오차 태국 총리는 개회 연설에서 “다자 무역체제를 강타하고 있는 보호무역주의 바람은 우리가 이 문제에 더욱 달라 붙어야 한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며 “연내 RCEP 협상을 마무리 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RCEP은 작년 의장국인 싱가포르가 강력 추진했지만, 최종 실패했다.
호찌민=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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