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함평 사건 전말 알아 보니…]
농공단지 조성공사 하청업체, 설계변경 통해 금액 부풀리기 시도
[저작권 한국일보] 24일 오후 전남 함평군청 앞 도로변 가로수에 조직폭력배 관심대상인 A건설사 전무의 1인 시위자 무차별 폭행 사건에 대해 A건설사의 사죄를 촉구하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전남 함평에 가면 ‘함평천지’라는 말이 천지이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식당에서, 선술집에서 ‘함평천지’ 간판은 쉽게 볼 수 있다.

하다못해 소(한우)한테까지 ‘함평천지’ 이름을 붙인 곳이 함평이다. 판소리 호남가 맨 첫머리에 등장하는 ‘함평천지 늙은 몸이…’에서 따온 ‘함평천지’는 ‘모두 다 평화롭게(함평ㆍ咸平) 살아가는 세상’이란 뜻이 담겼다. 그만큼 평온과 화목에 대한 자부심이 남다른 곳이다.

그랬던 함평이 요즘 시끄럽다. 지난 11일 발생한 함평군청 앞 1인 시위자 폭행사건 때문이다. 당초 함평군이 발주한 농공단지 조성공사 하청 건설업체인 A사 전무 B(40ㆍ구속)씨의 단순 폭행쯤으로 여겨졌던 이 사건은 B씨가 조직폭력배로 밝혀지고 그를 고용한 A사 사장과 함평경찰서 간부의 유착 의혹까지 불거지면서 경찰이 수사를 확대하는 등 후폭풍이 거세다. 특히 A사가 B씨 등 조직폭력배를 내세워 수 개월째 부당한 설계변경을 요구하며 군청 사무실 등에서 공무원들에게 떠세를 부린 사실도 추가로 알려지면서 주민들 사이에선 “함평천지가 무법천지가 돼버렸다”,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24일 오후 함평군청 앞에서 만난 한 주민은 “이번 1인 시위자 폭행사건은 지역 토호의 폐해를 보여준 사건”이라고 했다. 지역 건설업체가 토호세력으로 정착한 뒤 지역 토건사업을 둘러싸고 여론을 왜곡하려다가 터진 일이라는 얘기였다. 그는 “A사가 농공단지 조성공사를 놓고 공사금액을 부풀리기 위해 설계변경을 요구하다가 함평군이 거부하자 엉뚱한 관내 골프장 건설 철회를 요구하며 군청 정문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며 “수개월째 대형 확성기 차량을 동원해 시위를 한 탓에 소음으로 인한 정신적ㆍ경제적 고통을 받고 있는 주민들이 시위 중단을 요구하는 릴레이 1인 시위를 했고 이 과정에서 이번 사건이 터졌다”고 말했다. 도대체 함평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

[저작권 한국일보] 24일 오후 전남 함평군청 앞 도로변 가로수에 수개월째 군청 앞에서 계속되고 있는 관내 골프장 건설 반대 시위로 인한 주민들의 피해를 호소하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함평에 본사를 둔 A사가 군이 학교면에 추진하는 농공단지 조성 공사(사업비 88억8,100만원)를 원청업체에게서 하도급 받은 건 2017년 7월. 당초 이 공사의 도급금액은 72억9,000만원이었으나 지난해 9월과 12월 두 차례 설계변경을 거쳐 114억2,210만원으로 늘었다. 그런데도, A사는 올해 1월 토사운반 등으로 공사비 25억원이 더 들어갔다며 군에 설계변경을 통한 공사비 추가 지급을 요구했다. 감리업체가 “규정상 원청업체가 아닌 하도급업체가 설계변경을 요구하는 건 타당하지 않다”고 했지만 A사는 막무가내였다.

A사는 요구사항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을(乙)의 갑질’을 시작했다고 한다. 군의 한 관계자는 “A사 사장 C씨가 자신 뜻대로 안 되자 1월부터 위압감을 줄 수 있는 B씨 등을 동원해 직원들에게 설계변경을 계속 요구했다”며 “특히 3월엔 B씨가 공사현장 사무실에서 설계변경과 관련해 감리단장에게 욕설과 위협적인 행동을 해 감리단장이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퇴사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공무원도 “B씨가 후배 2, 3명을 데리고 다니면서 군청사 복도에서 공사 관련 공무원들이 지나가면 괜히 혼잣말로 ‘내 돈 안 먹은 놈이 어딨어!’, ‘몸 조심해라’라는 말을 내뱉거나 고성을 지르며 분위기를 험악하게 했다”고 혀를 내둘렀다.

[저작권 한국일보] A건설사 등이 동원한 것으로 추정되는 확성기 차량. A건설사는 함평의 한 농공단지 조성사업과 관련해 함평군에 설계변경을 통한 공사비 증액을 요구했다가 거절당하자 이에 앙심을 품고 골프장 건설 반대 집회를 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A사는 1월 말쯤부터 군청 앞에서 확성기 차량을 이용해 농공단지 조성공사와는 상관도 없는 관내 골프장 건설 철회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주민과 상인들이 “장기간 시위로 지역 상가 다 죽는다”고 시위 중단을 촉구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A사는 되레 “전임 군수의 정치보복과 악행을 알리기 위해 집회를 하고 있다”는 호소문을 주민들에게 배포했다.

결국 참다 못한 군이 발끈했다. 군은 지난 4월 5일 “A사가 자신들의 부당한 요구에 굴복하지 않는 행정을 대상으로 법 질서를 흐리고 여론을 호도하는 등 비정상적 작태를 보이고 있다”며 “공사비 부풀리기를 하는 건설업체를 추방시키겠다”고 경고했다. 그러자 A사는 며칠 뒤 시위를 중단했다. 그러나 지난달부터 C씨의 형 등이 이어서 집회신고를 내고 시위를 계속하고 있다. 이에 이달 4일엔 군 전체 직원들이 군청 앞 집회 소음 피해에 대한 탄원서를 경찰에 냈고, 7일엔 한 직원이 허위사실을 퍼뜨린 A사 직원 5명을 명예훼손 혐의로 경찰에 고소하기도 했다.

상황이 이쯤 되자 폭행 사건 당시 소극적 대처로 비난을 샀던 경찰도 뒤늦게 수사를 확대하고 나섰다. 전남경찰청 광역수사대는 A사가 민원 해결을 위해 B씨 등 조직폭력배를 동원하고 군 행정업무를 방해했는지와 하도급계약 과정의 불법성 여부 등을 살펴보고 있다. 특히 이번 폭행 사건의 불똥이 A사와 경찰의 유착 의혹으로도 튀면서 수사의 판은 더 커졌다. 이미 지역에선 “함평경찰서 소속 D경위가 친구 사이인 A사 사장인 C씨의 뒤를 봐주고 있다”는 소문이 퍼져 있다. 실제 D경위가 C씨와 수억 원대의 돈거래를 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경찰이 수사 중인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경찰은 또 C씨가 민선 6기 때인 지난해 4월 함평군민의 상을 받았던 사실에 주목, 당시 군 고위간부를 지낸 E씨와 모종의 관계가 있는지 여부도 들여다 볼 계획이다. 지역 토호와 경찰, 정치세력의 유착 형성 및 부작용이 도마에 오른 셈이다. 벌써 주민들 사이에선 군청 앞 확성기 차량 시위 배후에 E씨가 있다는 뒷말까지 나온다. 그도 그럴 게 이 간부와 친밀한 사이로 알려진 C씨는 2013년 E씨가 근무할 당시 군이 발주한 한 산업단지 조성공사를 하도급 받았고, 당시에도 설계변경이 이뤄졌다.

지난 11일 전남 함평군청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던 남성을 A건설사 전무 B(40ㆍ구속)씨가 폭행하는 모습. SNS 영상 캡처. 뉴시스

이처럼 궂은 일로 세간의 관심을 받으면서 속만 끓이던 함평천지 사람들도 그예 “쌍팔년도에도 이러진 않았을 것”이라며 지역 이미지와 군민들의 명예를 땅에 떨어뜨린 A사에 대한 사죄와 경찰의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고 나섰다. 이에 대해 C씨는 “1인 시위자를 폭행한 건 잘못됐다”면서도 농공단지 설계변경 요구 등과 관련한 B씨 등의 부적절한 행동에 대해선 답변을 거부했다.

함평=글ㆍ사진 안경호 기자 khan@hankookilbo.com 박경우 기자 gw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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