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인이나 유명인의 동상(銅像)은 당사자나 가문, 더 넓게는 한 진영으로선 값지고 영광스러운 일일 테지만, 세월이 흘러 그 의미가 쇠락하거나 거꾸로 욕되게 손가락질 당하는 예도 역사 안에선 드물지 않다. 그건 동상 관리의 문제, 예컨대 산책 나온 개들이 경쟁적으로 용변을 보는 자리가 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2017년 미국 매릴랜드 주 볼티모어 시의회가 시내 와이먼(Wyman)공원의 로버트 리 등 내전 남부연합 영웅들의 동상들을 철거하기로 의결해 찬반 논란으로 시끄럽던 무렵, 한 트위터리언(@rubot)이 자신의 트위터에 “그런데 세계 최고의 동상은 아무래도 러시아에서 DNA 연구에 기여한 쥐를 기리는 이 동상일 것”이라며 사진 한 장을 올렸다.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산하 시베리아 노보시비르스크 세포유전학연구소 뜰에 2013년 7월 1일 제막한 실험쥐 기념 동상 사진이었다.
1.8m 높이의 화강암 기단에 키 70cm의 청동 쥐는, 미국 동화작가 로버트 오브라이언의 주인공 ‘Mrs. 프리즈비’를 닮은 의인화한 할머니 쥐다. 돋보기 안경을 코에 걸친 채 할머니 쥐가 뜨개바늘로 뜨고 있는 건 이중 나선 구조의 DNA 타래다. 연구소는 설립 55주년이던 2002년 저 동상을 기획했고, 지역 작가 안드레이 카르케비치(Andery Kharkevich)가 과학자와 실험실 쥐의 이미지를 조합해 저 동상을 디자인했다. 연구소 측은 170만 루블(미화 약 5만 달러)를 모금해 한 조각가의 작업으로 저 동상을 완성했다.
수많은 이들이 트위터 사진에 열광하며, “세게 최고의 동상”이라는 평가에 흔쾌히 동의했다. 그들은 암을 비롯한 숱한 질병과 신약 연구, 우주 실험에까지 동원돼 목숨을 잃은 쥐에게, 또 그 쥐들에게 미안해하며 감사해 하는 러시아 과학자들의 마음에 동조했다.
1957년 설립된 노보시비르스크 세포유전학연구소의 주력 연구 분야는 야생 동물의 가축화라고 알려져 있다. 연구소는 은여우 등 야생 여우를 40세대 이상 브리딩하며 세대별 변화를 세포 유전적 단위에서부터 기질적 특질까지 포괄적으로 연구해왔고, 연구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충분히 가축화한 여우 일부를 팔기도 했다고 한다. 언젠가 연구소 뜰에 여우의 동상도 설지 모른다. 최윤필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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