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평양냉면 마니아가 자신의 트위터에 '평냉투어' 해시태그와 함께 매주 평양냉면 맛집들을 방문해 그릇을 깨끗하게 비운 사진들을 올렸다. 트위터 캡처

평양냉면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평뽕 지수’라는 게 있다. ‘평뽕’은 한번 맛 보면 끊을 수 없는 평양냉면의 중독성을 마약에 빗댄 것으로, 평뽕 지수는 평양냉면에 얼마나 중독됐는지를 나타내는 말이다.

평뽕 지수 테스트는 주로 20, 30대 젊은이들에 의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에서 놀이처럼 이뤄진다. SNS에 평양냉면 사진 두 장을 올려놓고 “다음 사진을 보고 각각 어느 가게에서 만든 평양냉면인지 맞춰보시오”라거나, “어느 쪽이 100% 메밀로 만든 것인지 골라보세요”라는 식이다. “서울 평양냉면 명가의 이름을 10곳 이상 말해보라”는 주관식 문제들도 간혹 등장해 응시자들을 당황하게 한다. 사진을 아무리 봐도 다 똑같은 냉면일 뿐이고, 생각나는 평양냉면집이라고는 1, 2곳 정도인데 평뽕 지수가 높다고 자신하는 이들은 와인을 감별하는 소믈리에마냥 척척 알아 맞힌다. 이쯤 되면 평양냉면 분야도 전문 감별사가 있을 것 같은 ‘딴 세상 리그’다.

최근 20, 30대 젊은이들이 평양냉면 맛에 푹 빠져들고 있다. 어렸을 적 여름날 밖에서 놀다 땀에 흠뻑 적어 돌아올 때마다 어머니가 손수 만들어 시원하게 한 사발 가득 내주었던 추억 동동 서린 이미지의 냉면이 요즘에는 ‘힙’한 음식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평양냉면 인기를 빠르게 확산하는 통로는 SNS다. 날씨가 점차 더워지자 요즘 SNS에서는 평양냉면 맛집들을 돌아다니며 시식하고 후기를 올리는 ‘평냉투어’가 인기를 끈다. 평양냉면 마니아라는 회사원 박모(32)씨는 “저도 전국의 평양냉면 가게들을 많이 가봤지만 아예 미슐랭가이드처럼 평양냉면 맛집 지도까지 만드는 이들을 보면 혀를 내두르게 된다”며 “평양냉면 육수 맛이 가게마다 미묘하게 달라서 새로운 맛을 찾는 재미가 있다”고 말했다. 평양냉면과 관련한 신조어들도 우후죽순처럼 생기고 있는데, ‘평뽕족(평양냉면 마니아)’, ‘완냉(완전정복 평양냉면)’, ‘평냉부심(평양냉면에 대한 자부심)’ 등이 대표적이다.

평양냉면 인기에는 지난해 4월 열린 남북정상회담과 그 해 여름에 111년만에 찾아온 폭염이 톡톡한 역할을 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어렵사리 평양에서부터 평양냉면을 가져왔다. 맛있게 드시면 좋겠다”라고 한 발언을 시작으로 평양냉면에 대한 관심이 커졌고, 지난해 8월1일 서울 최고기온이 섭씨 39.6도를 기록하면서 국내 평양냉면 집은 문전성시를 이뤘다.

여기에 ‘무미(無味)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평양냉면의 밍밍한 맛이 젊은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누구나 누리는 보편적 취향이 아닌 비주류의 희소성 문화를 ‘힙’하다고 표현하는 젊은 세대로서는 평양냉면의 밍밍한 맛에서 제대로 된 음식 맛을 평가하는 것 역시 일종의 남과 다른 독특한 취향이 될 수 있었다는 얘기다. ‘평냉부심’이라는 신조어도 이런 의미에서 만들어졌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미슐랭가이드 서울의 ‘2019 빕 구르망’에 오른 61개 업체 중 평양냉면 집이 무려 7개를 차지하고 있다”며 “미슐랭가이드 요리 유형 만도 42개로 세분화되는 데 평양냉면이 1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는 건 그만큼 미쉐린가이드 시각에서 국내 소비자들에게 인기 있는 음식이라는 얘기”라고 말했다.

김현우기자 777hyunw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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