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정상 친서외교 재개… “트럼프 남다른 용기에 사의”
대화 재개 메시지 가능성 … 金, G20 상황 살핀 후 움직일 듯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친서(親書) 외교’를 재개하면서 비핵화 협상 국면이 다시 꿈틀대고 있다. 앞서 두 차례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기까지 고비마다 친서를 교환하며 돌파구를 마련했던 전례처럼 이번 친서 교환이 3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로 이어질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23일 “김정은 동지께 미합중국 대통령이 친서를 보내어 왔다”며 “최고영도자 동지께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친서를 읽어보시고 훌륭한 내용이 담겨있다고 하시면서 만족을 표시하셨다”고 보도했다. 통신은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판단 능력과 남다른 용기에 사의를 표한다”면서 “흥미로운 내용을 심중히 생각해 볼 것”이라고 했다고 전했다. 통신과 노동신문 등 북한 매체는 김 위원장이 집무실에서 안경을 끼고 진지한 표정으로 트럼프의 친서를 읽는 사진도 공개했다.
세라 샌더스 미국 백악관 대변인도 23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친서를 보냈고 두 정상 간 연락이 계속 진행돼 왔다”며 이를 공식 확인했다. 다만 양측 모두 친서가 전해진 시점이나 경로, 구체적인 내용은 언급하지 않았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의 친서를 받았다고 잇달아 공개했다. 그는 17일(현지시간) 미 시사주간지 타임과 인터뷰에서 친서를 꺼내 들고 “생일축하 편지”라며 “어제 전달 받았다”고 했고, 앞서 11일(현지시간)에도 “어제 김 위원장에게 아름다운 친서를 받았다”고 밝혔다. 그 역시 “여러분에게 친서를 보여줄 수는 없다”며 친서에 담긴 구체적 내용은 언급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친서가 동일한 것인지 여부는 불분명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이에 화답한 것으로 보인다. 한 외교 소식통은 “이번 친서는 김 위원장이 ‘신뢰’를 언급하며 보냈던 친서에 대한 답신 성격”이라며 “비핵화 관련 실질적 내용은 없었지만 전반적으로 우호적인 톤으로 작성된 김 위원장의 친서에 화답하는 차원에서 ‘대화 잘해보자’, ‘빠른 시일 내에 봤으면 좋겠다’ 등의 내용을 보낸 것 같다”고 말했다.
북미 정상이 친서를 통해 서로에 대한 호감을 재확인하며 긍정적 메시지를 주고 받은 것에 대해 청와대도 기대감을 드러냈다.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도 이날 “정부는 북미 정상 간 진행되는 친서 교환이 북미 대화의 모멘텀을 이어간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며 “우리 정부는 한미 간 소통을 통해 (북미 친서 교환을) 인지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또, 북미 정상이 친서를 주고 받은 전후로 남북미중이 활발히 움직이고 있어 두 사람의 친서 교환이 한반도 정세 변화에 미칠 가능성에 대한 기대치도 높아지고 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21일 1박2일 일정으로 북한을 방문해 김 위원장과 우의를 다졌고, 28~29일 일본 오사카(大阪)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미중ㆍ한중 정상회담이 잇따라 열린다. 회의 직후인 29일 트럼프 대통령이 방한해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 등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관건은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보낸 친서의 구체적인 내용이다. 통상 정상 간 서한이 오고 갈 경우 현안에 대한 상세한 내용을 담지 않는 것이 관례인 만큼, 비핵화 협상과 관련한 구체적인 내용이 담기진 않았을 것으로 보는 것이 외교가의 중론이다. 행정수반인 대통령이 합의 절차 없이 협상에 대한 세부 내용을 문서로 남기는 것은 금기시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대화 재개와 관련한 긍정적 반응과 메시지가 담겼을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서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 내용을 전달받은 문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간) 노르웨이에서 기자들과 만나 “(친서 속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발표하지 않은 아주 흥미로운 대목도 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 친서를 본 후 “흥미로운 내용을 심중히 생각해 볼 것”이라고 언급한 것으로 볼 때, 친서가 ‘속 빈 강정’일리 없다는 것이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북한이 ‘정치적 판단’이나 ‘남다른 용기’를 언급한 점으로 미뤄볼 때 북한 요구사항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이 기존 미국의 입장을 좀더 유연화할 여지나 힌트를 준 것으로 보인다”며 “북한이 사의까지 표명한 걸 보면 미국이 긍정적 신호를 준 것이 명확해 보인다”고 말했다.
특히 큰 틀에서 북미 정상 간 톱다운(하향) 방식의 대화를 지속하되, 그에 앞서 실무 협상을 이어가자는 내용이 포함됐을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김 위원장의 친서에 3차 북미 정상회담 가능성이 언급됐고, 트럼프 대통령이 이에 대해 화답했을 가능성이 있다”면서 “이를 사전에 조율하기 위한 실무급 회담 얘기가 오고 갔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쁜 딜보다 노딜(No dealㆍ합의 무산)이 낫다’고는 하지만 성과없이 끝난 하노이 회담을 계기로 북한도 실무 협상의 중요성을 인식했고, 이에 따라 회담 결렬로 자존심이 구겨진 북측에 실무급 회담을 제안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도 “그간 북한이 거부해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실무급 회담을 직접 요청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톱다운 방식을 살리면서도 북측 체면을 살려주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29일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을 앞두고 미리 방문하는 스티븐 비건 미 대북특별대표가 판문점이나 평양 방문 가능성도 일각에선 제기되지만, 김 위원장이 “심중히 생각해 볼 것”이라고 한 건 G20 전후 상황을 살피겠다는 의도로 풀이되기 때문이다. 20일 시 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김 위원장이 “인내심을 유지하겠다”며 신중한 입장을 내비친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G20 회의를 계기로 트럼프 대통령과 마주칠 시 주석이 북한의 의사를 전달하고 이에 대한 미측 반응, 그리고 곧이어 방한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을 통해 던지는 메시지를 본 뒤 움직일 것으로 보인다. 이달 말까지 이어지는 남북미중 정상의 행보에 세계가 주목하는 까닭이다.
안아람 기자 oneshot@hankookilbo.com
김정원 기자 garden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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