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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14위 공중분해된 한보사태, IMF 구제금융 ‘단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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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14위 공중분해된 한보사태, IMF 구제금융 ‘단초’

입력
2019.06.23 17:19
수정
2019.06.23 19:34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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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유착ㆍ황제 경영 온갖 부조리… 장관ㆍ국회의원ㆍYS 차남 등 줄구속

1997년 구속 상태로 한보 특혜 의혹 청문회에 증인으로 나온 정태수 한보그룹 회장. 한국일보 자료사진
1997년 구속 상태로 한보 특혜 의혹 청문회에 증인으로 나온 정태수 한보그룹 회장. 한국일보 자료사진

1997년 새해 벽두 터진 ‘한보사태’는 한국 경제의 최대 위기로 불리는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의 전조와 같은 사건이었다. 직전 10년(1987~1996년)간 연평균 9.1% 실질성장률을 기록했던 한국 경제는 재계 14위 한보그룹 부도를 시작으로 기아(재계 순위 8위), 진로(19위), 해태(24위), 삼미(26위) 등 굴지의 대기업들이 공중분해 또는 해체되며 초유의 위기를 겪어야만 했다.

한보사태의 중심에는 창업주인 정태수(생존시 96세) 총회장이 있었다. 세무공무원이던 그는 1974년 한보상사를 창업하며 경제계에 입문했고 76년 한보주택을 만들어 3년 후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은마아파트를 건설했다. 이어 80년 한보철강을 창업하며 한보그룹을 명실상부한 대기업 반열에 올렸다.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이 한성대 교수 시절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한보의 대표기업인 한보철강은 91년 개별 기업 순위에서 111위를 기록했으나 5년 뒤인 96년엔 15위로 급성장했다. 당시 한보철강은 삼성물산(16위), LG화학(20위), 한진해운(38위)보다 더 큰 기업이었다.

그룹의 외형을 키우는 과정에서 정 전 회장은 한국 재벌의 문제점으로 지적되어 온 문어발 확장, 정경유착, 황제경영 등 각종 부조리를 일삼았다. 그는 91년 노태우 정부 최대 비리사건으로 기록된 ‘수서비리’ 당시 청와대 관계자 및 유력 국회의원들에게 뇌물을 제공한 혐의로 구속되며 잠시 주춤했지만, 1990년대 중반에는 국내 건설 일변도에서 벗어나 러시아 시베리아 가스전 개발이나 영상 제작업 등으로 사업 범위를 확장하며 세를 불렸다.

그러나 한보철강에 집착하던 정 전 회장의 과욕 탓에 유동성 부족 사태를 겪게 됐고, 97년 1월 23일 어음 50억원을 막지 못해 최종 부도를 맞았다. 당시 한보그룹이 은행권 등에서 받은 부실대출 규모는 5조원에 달했다. 이 과정에서 정 전 회장이 정관계와 금융권에 뇌물이나 뒷돈을 주고 각종 이권이나 대규모 대출을 얻어낸 사실이 밝혀져 당시 장관, 국회의원, 은행장 등이 줄줄이 구속되며 검찰 수사를 받았다. 김우석 내무장관과 권노갑ㆍ홍인길ㆍ정재철 의원, 전직 은행장 3명이 구속자 명단에 올랐고 김영삼 당시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도 구속을 피하지 못했다.

정 전 회장은 이 사건으로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2002년 10월 협심증 진단을 받고 병보석으로 풀려났다. 그러나 며느리가 학장으로 일하던 강릉영동대학 교비 72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다시 재판을 받고 2006년 2월 1심에서 징역 3년의 실형을 받았다. 당시 재판부는 83세인 정 전 회장의 나이와 병력을 고려해 법정구속을 하지는 않았는데, 정 전 회장은 이듬해 5월 병 치료를 이유로 일본에 출국한 뒤 잠적했다. 키르기스스탄에 체류하며 금광사업을 한다는 얘기가 돌기도 했으나, 그나마 최근에는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이영창 기자 anti092@hankookilbo.com

1997년 1월 23일 부도가 난 한보철강을 관리하는 은행관리단의 채권확인서 발급이 시작된 그해 2월 3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한보본사에 어음과 첨부서류를 챙겨든 협력업체 관계자들이 일시에 몰려들어 접수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1997년 1월 23일 부도가 난 한보철강을 관리하는 은행관리단의 채권확인서 발급이 시작된 그해 2월 3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한보본사에 어음과 첨부서류를 챙겨든 협력업체 관계자들이 일시에 몰려들어 접수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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