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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열 존재하는 아랍국가… 출판 자유 없인 지식산업 성장 불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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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열 존재하는 아랍국가… 출판 자유 없인 지식산업 성장 불가능”

입력
2019.06.24 04:40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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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리프 죠셉 리즈끄 이집트 다르 알탄위르 출판사 지점장. 홍윤기 인턴기자
샤리프 죠셉 리즈끄 이집트 다르 알탄위르 출판사 지점장. 홍윤기 인턴기자

국제출판협회가 출판의 자유를 수호하는 데 공헌한 출판인에게 수여하는 볼테르상 시상식이 21일 서울 창덕궁에서 열렸지만, 정작 수상자는 그곳에 자리하지 못했다. 올해 수상자인 이집트의 출판인 칼리드 루트피는 군사기밀을 누설한 출판물을 출간ㆍ유통한 혐의로 수감 중이다.

루트피의 친구이자, 출판사 다르 알탄위르의 이집트 지점장인 샤리프 죠셉 리즈크는 루트피의 구금이 이집트에 정치적 검열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방증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아랍국가에서 검열은 정치, 종교, 성적인 부문에서 모두 이뤄지지만 특히 이집트의 경우 검열은 정치적인 문제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리즈크 지점장은 2019 한국문학 쇼케이스(주최 한국문학번역원) 참석을 위해 방한했다. 21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서점 체인도 운영하는 다르 알탄위르는 레바논, 튀니지, 이집트에 지점을 두고 있다. 2017년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를 번역 소개했다. 리즈크 지점장은 “‘채식주의자’의 경우 정치적 함의가 없기 때문에 이집트에서 출간할 수 있었던 반면, 사우디아라비아나 쿠웨이트에서는 성적인 장면이 검열 대상이 돼 출간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21일 오후 서울 창덕궁 후원에서 열린 볼테르상 시상식에서 수상자인 칼리드 루트피를 대신해 동생 마흐무드 루트피가 소감을 대독하고 있다. 연합뉴스
21일 오후 서울 창덕궁 후원에서 열린 볼테르상 시상식에서 수상자인 칼리드 루트피를 대신해 동생 마흐무드 루트피가 소감을 대독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집트는 연간 300만 달러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대형 출판사가 한 곳도 없다. 수도 카이로는 한때 아랍 전역의 지식인과 예술가가 몰려들어 지식과 정치, 예술의 중심이었다. 하지만 가말 압델 나세르(1918~1970) 전 대통령이 주창한 아랍식 사회주의인 ‘나세르주의’가 등장한 이후 아랍 문화의 중심에서 멀어졌다. “출판사들이 모두 국유화됐고 정권에 우호적이지 않은 책은 출판되지 못했습니다. 국가가 모든 것을 자체 생산ㆍ공급하는 모델은 실패할 수밖에 없어요.”

한국 역시 독재정권 시절 검열이 횡행했고, 특히 지난 정권에서는 정권에 비우호적 인사들을 대상으로 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가 존재 했었다고 전하자, 리즈크 지점장은 “이집트의 현 상황 역시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이집트의 저명 소설가인 알라 알 아스와니의 최근작 “’마치 그런 듯이 공화국(The Republic of As if)’은 금서로 지정돼 이집트에서 출판되지 못했어요. 대신에 상대적으로 출판 자유가 보장된 레바논에서 출간해야 했습니다. 책에 이집트의 현 대통령(압델 파타 엘시시)을 비판하는 내용이 담겼기 때문입니다.”

리즈크 지점장은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가 출간됐을 때 이집트 현지에서의 반응은 놀라울 정도였다”며 “정말 많은 사람들이 SNS에서 ‘채식주의자’를 얘기했다”고 전했다. 홍윤기 인턴기자
리즈크 지점장은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가 출간됐을 때 이집트 현지에서의 반응은 놀라울 정도였다”며 “정말 많은 사람들이 SNS에서 ‘채식주의자’를 얘기했다”고 전했다. 홍윤기 인턴기자

이집트는 수십 년간 정부의 개입과 주도로 시든 출판계를 되살리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민간부문에서 이뤄지고 있다. 독립 서점과 소규모 배급사들이 등장하고 있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소비자와 소통하고 있다. 리즈크 지점장은 “출판 산업에 투자한다는 것은, 곧 사람에게 투자하는 것”이라며 “한국만 봐도 오늘날 경제적 성공의 배경에는 ‘책’이라는 안정적 지식 확산 문화가 자리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다르 알탄위르 출판사는 ‘채식주의자’에 이어 한강 작가의 ‘흰’과 ‘소년이 온다’도 곧 번역 출간할 예정이다. “현대 아랍권에 근대화된 통념이 부재한 이유는 지식의 결핍이고, 책은 지식을 확산시키는 첫 번째 수단입니다. 쓰이는 책이 없다면, 차선책은 번역 출판입니다. 앞으로도 다양한 책을 번역 출간하는 것이 우리 출판사의 목표입니다.”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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