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를 조사해야 한다. 왕세자가 자말 카슈끄지 암살에 개입한 증거가 있다.”
지난해 10월 2일 터키 이스탄불 주재 사우디 총영사관에서 살해된 사우디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사건을 조사 중인 아녜스 칼라마르 유엔 초법적 사형에 관한 특별 보고관이 19일(현지시간) 무함마드 왕세자의 살해 연루를 공식적으로 제기하며 국제사회의 진상 조사를 촉구했다. 국제기구를 통한 조사에서 처음으로 사우디의 최고 권력자 빈살만 왕세자가 사건의 배후에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사우디측은 격하게 반발했다.
칼라마르 보고관은 “카슈끄지는 의도적, 계획적으로 처형됐으며, 그의 죽음은 초법적 사형이고 사우디는 국제 인권법을 준수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칼라마르 보고관은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나서서 카슈끄지 피살 사건에 대한 국제사회의 조사를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칼라마르 보고관은 올해 초부터 터키에서 6개월 동안 현장 조사를 했고, 터키 당국도 일부 증거를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칼라마르 보고관은 앞서 지난 2월에도 카슈끄지 살해를 ‘사우디 정부’가 계획하고 실행했다고 주장했으나 이번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왕세자를 직접 언급한 것이다.
AP통신에 따르면 보고서에는 터키 측에 의해 녹음된 카슈끄지 살해 상황이 포함되어 있다. 카슈끄지 살해 이전 영사관 2층에 모인 법의학 의사와 정보기관 요원, 사우디 왕세자실 요원 등은 카슈끄지의 시신을 처리할 방법에 대해 논의하면서 “관절을 분리해 플라스틱 백에 넣을 것” 등의 대화를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카슈끄지가 영사관에 들어서자 사우디 정보기관원은 “희생 제물”이 도착했느냐고 영사에게 물어본 정황도 녹음에 담겼다. 영사 사무실로 이동한 카슈끄지는 사우디 측 요원이 “당신 아들에게 메시지를 보내라”고 명령하는 것에 대해 반발했고, 사우디 요원은 주사기를 꺼내 카슈끄지를 마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이후에는 둔탁한 움직임 소리와 헐떡이는 소리, 톱질 소리 등이 담겼다고 보고서에는 기록됐다. 칼라마르 조사관은 터키 정부가 녹음 내용의 메모를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보고서는 기억에 따른 것이라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사우디 정부는 즉각 반박했다. 아델 알주바이르 사우디 외무담당 국무장관은 같은 날 “보고서는 모순과 근거 없는 의혹을 담았다”며 “이미 나온 언론 보도를 재탕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앞서 무함마드 왕세자도 16일 사우디 정부가 소유한 일간지 아샤르크 알아우사트와 인터뷰에서 이 사건에 대해 “그런 행태는 우리의 문화와 동떨어졌고 우리의 원칙과 가치에 반한다”라고 비판하면서 “(이 사건을) 정치적으로 악용하려는 이들은 당장 멈추고 관련 증거가 있다면 정의 실현을 위해 사우디 법원에 제출해야 한다”라고 말한 바 있다.
한편, 살해된 카슈끄지는 주로 미국에 체류하면서 사우디의 실세인 무함마드 왕세자를 비롯한 왕실을 비판하는 칼럼을 미국 언론에 기고해 왔다. 결혼 서류 문제로 지난해 10월 터키 이스탄불 주재 사우디 총영사관을 찾은 카슈끄지는 자신을 기다리던 사우디 요원들에게 살해됐고 그의 시신은 훼손돼 버려졌다. 사건 발생 후 8개월이 지났지만 그의 시신은 어느 곳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김진욱 기자 kimjinu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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