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합의체 선고..대법관 9명 ‘재산권 보호’ 가치에 무게
반대의견 4명 “명의신탁, 세계 유례없는 부끄러운 유산”
다른 사람 이름으로 부동산을 등기해 둔 실소유자가 등기 명의인으로부터 해당 부동산을 돌려 받을 수 있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왔다. 헌법상 보장된 재산권과 사적자치 원칙를 더 중시해야 한다는 기존 판례가 유지된 것이다. 다만 대법관 4명은 부동산 실명법을 위반한 명의신탁 행위를 제재해야 한다고 밝혀, 부동산 업계와 법학계의 논쟁은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일 대법정에서 부동산 소유자 A씨가 명의자 B씨를 상대로 낸 소유권 이전등기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해당 부동산은 원 소유자의 것으로 봐야 한다는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원고 A씨 남편은 1998년 농지를 취득한 뒤 농지법 위반 문제가 생기자, B씨 남편 명의로 소유권 이전등기를 했다. A씨는 2009년 남편이 사망하자 이 농지를 상속받았고, 이후 B씨의 남편이 사망하자 B씨를 상대로 명의신탁된 농지의 소유권 등기를 자신에게 넘기라며 소송을 냈다.
앞서 2002년 9월 대법원은 전원합의체를 통해 “명의신탁 행위가 1995년부터 시행된 부동산실명법 위반은 맞지만, 선량한 풍속이나 기타 사회질서에 어긋나진 않는다”며 차명 부동산에 대해 등기 명의인이 아닌 원 소유자 소유권을 인정한 바 있다. 법을 어긴 채 타인 명의로 땅을 맡겼어도 원 소유자가 되찾을 수 있다는 취지다.
이에 따라 하급심(1ㆍ2심) 법원도 이 판례에 따라 A씨 손을 들어줬으나, B씨는 이에 불복해 상고했다. B씨는 부동산 명의신탁은 부동산실명법을 위반한 것으로, 불법원인 급여(범죄 행위 등을 통해 얻은 이익)에 해당해 땅을 돌려줄 수 없다는 논리를 폈다. 불법원인 급여는 민법상 반환청구가 불가능하게 돼 있다.
상고심 주심을 맡은 조희대 대법관은 부동산 명의신탁에 관한 판례가 변경돼야 하는지를 판단하기 위해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하고 2월에는 공개변론을 열어 각계 의견을 들었다. 차명 부동산의 소유권을 인정하는 대법원 판례가 탈법을 부추긴다는 비판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대법원은 판례를 변경하지 않았다. 다수의견을 택한 9명의 대법관은 “부동산실명법을 제정한 입법자의 의사는 신탁 부통산의 소유권을 실권리자에게 귀속시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며 “부동산실명법을 어긴 채 명의신탁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당연히 불법원인 급여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이어 “명의를 빌려준 사람의 불법성도 작지 않은데 부동산 소유권을 귀속시키는 것은 정의관념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명의신탁을 금지하겠다’는 부동산실명법의 목적 이상으로 부동산 원 소유자의 재산권 본질을 침해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반면 조희대ㆍ박상옥ㆍ김선수ㆍ김상환 등 4명의 대법관은 “부동산 명의신탁은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부끄러운 법적 유산”이라며 “실명제법이 시행된 지 20여년이 지나 불법행위라는 공통의 인식도 형성됐다”고 판단했다. 이들은 “명의신탁은 불법원인 급여에 해당한다”고 주장했지만 다수의견이 되지는 못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종래 판례의 타당성을 다시 확인한 판결”이라면서도 “다수의견 역시 부동산 명의신탁을 규제할 필요성과 현재의 부동산실명법이 가지는 한계에 대하여는 깊이 공감하고 있으며 이를 입법적 개선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환구 기자 red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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