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주의 진영을 넘보는 공산주의 세력을 격퇴하기 위해 치렀던 최초의 국제 전쟁. 민주주의 수호라는 대의명분 하나를 지키기 위해 수백만 명이 목숨을 잃은 참혹한 전쟁. 3년에 걸친 전쟁은 결국 휴전으로 마무리됐다. 미국은 ‘승리’라고 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013년 워싱턴에서 열린 정전 60주년 기념식에서 “그 전쟁은 비긴 것이 아니라 승리한 전쟁”이라고 못 박았다. 69년 전 우리 땅, 한반도에서 벌어진 6ㆍ25전쟁의 이야기다.
참전한 미군 병사들이 경험하고 기억하는 6ㆍ25전쟁은 달랐다. 그들에게는 그저 준비되지 않았고 왜 싸우는지도 몰랐던, 이해할 수 없는 전쟁일 뿐이었다. ‘잊혀진 전쟁의 기억’과 ‘이런 전쟁’은 6ㆍ25전쟁에 대한 평범한 미국인들의 기억을 다룬 책이다. 이들에게서 승리의 영광은 찾아볼 수 없다. 대신 두 책은 말한다. 6ㆍ25전쟁은 절대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전쟁이었다고.
한국만큼이나 미국인들에게 6ㆍ25전쟁은 날벼락이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군 병력은 사실상 휴식에 들어간 상태였다. 전쟁이 터지기 전 미 행정부는 북한의 남한 침공 가능성에 대한 정보를 무시했다. 미국은 핵무기를 손에 쥐고 있었지만, 구 소련과의 전면전을 피하기 위해 한반도에서만 전투를 치르게 하는 등 ‘제한 전쟁’을 펼쳤다.
1963년 출간돼 미 육군의 필독서로 꼽혀온 ‘이런 전쟁’의 저자인 시어도어 리드 페렌바크는 6ㆍ25전쟁은 미국 수뇌부의 방심, 오판, 두려움 삼박자가 빚어낸 최악의 전쟁이었다고 통렬하게 비판한다. 준비되지 않은 전쟁의 대가는 컸다. 200만명이 넘는 군인과 시민이 피비린내 진동하는 지상작전의 전장에서 무참히 쓰러졌다. 페렌바크는 “세계 평화와 질서를 수호한다는 명분으로 미국의 젊은이들을 죽음의 장기판으로 내보내는 범죄를 저질렀다”며 미 행정부를 강력하게 성토한다.
한반도에서 벌어진 참상은 미국에서 빠르게 잊혀져 갔다. 아니 처음부터 잘 알려지지 않았다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할지 모른다. 미국 전쟁문학 전문가인 정연선(72) 육군사관학교 영어과 명예교수는 6ㆍ25전쟁을 다룬 미국 소설 70여권을 분석한 연구서 ‘잊혀진 전쟁의 기억’에서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 6ㆍ25전쟁은 2차 세계대전과 베트남 전쟁 사이에 끼인 샌드위치 전쟁이라 주목을 끌지 못했다. 전쟁의 성격 자체도 분명하지 않았다. 2차 대전이 ‘정의구현’의 과정으로, 베트남전쟁이 ‘잘못된 전쟁’으로 각각 각인됐다면 6ㆍ25 전쟁은 ‘작은 나라의 내전 혹은 분쟁’으로 치부됐다.
미국 소설에서 한국은 “그저 하루 빨리 탈출하고 싶은, 잊고 싶은 나라”로만 그려진다. 참전 병사들은 “생전 들어 보지도 못한 이 조그마한 나라에 와서 왜 싸우고 있는가”를 되물으며 고향으로 돌아갈 날만 기다린다. 그들 눈에 비친 한국은 인분 냄새가 진동하는 더럽고 미개한 ‘신이 저버린 나라’였다. 제임스 히키의 소설 ‘눈 속에 핀 국화’에서 한 병사는 “난 고노리아(Gonorrehaㆍ임질)에 걸렸고 다이어리아(diarrheaㆍ설사)에 걸렸었는데 지금은 코리아(Korea)에 걸려 있다”고 비아냥댄다. 한국전 참전을 질환에 비유한 것이다.
잊혀진 전쟁의 기억
정연선 지음
문예출판사 발행ㆍ480쪽ㆍ2만원
이런 전쟁
T.R페렌바크 지음ㆍ최필영, 윤상용 옮김
플래닛미디어 발행ㆍ824쪽ㆍ3만9,800원
그러나 두 책은 잊고 싶은 전쟁일수록, 더 또렷하게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숱하게 죽어간 사람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다시는 이 같은 전쟁의 비극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다. 6ㆍ25전쟁은 아직 공식적으로 끝나지 않았다. 정전을 종전으로 바꾸고 항구적 평화의 길을 찾는 과정이 남아 있다. 6ㆍ25전쟁을 잊어서는 안 되는 전쟁으로 만드는 일은 우리의 몫이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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