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리아 오언스 ‘가재가 노래하는 곳’
습지와 동화된 외로운 소녀 통해 자연을 대하는 인간의 잘못 비판
일흔 살 동물학자가 처음 쓴 소설 섬세한 생태 묘사와 스릴러의 결합
1969년 미 서부 노스캐롤라이나주 아우터뱅크스 해안 습지대에서 시체가 발견된다. 인근 마을의 미청년 체이서였다. 살인 용의자는 습지에서 홀로 살아가는 젊은 여성 카야 클라크. 오랫동안 습지를 지켜온 원주민이자 문명과 단절돼 살아가던 그녀는 재판정에서 어떤 자기변호도 하지 않는다. 소방망루 아래로 체이서가 추락하던 밤, 어두운 습지대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장편소설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살인사건의 범인을 추적해가는 미스터리 소설이자 법정 스릴러다. 동시에 매혹적인 여성 카야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연애소설이며, 습지라는 신비로운 자연을 섬세한 필치로 묘사한 생태소설이기도 하다.
충격적 살인사건의 전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건이 발생하기 17년 전인 1952년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폭력적인 아버지를 피해 어머니가 집을 떠나고, 언니와 오빠들까지 잇달아 떠나자 6살 카야는 아버지와 단둘이 남겨진다. 끝내 아버지마저 자취를 감추자 카야는 습지의 쓰러져가는 판잣집에 홀로 남겨진다. 자신을 ‘유인원 계집’ ‘늪 시궁쥐’ ‘습지 암탉’이라고 부르는 문명세계를 거부한 채, 카야는 습지에서 스스로 살아남는 법을 깨우쳐 간다.
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 지음ㆍ김선형 옮김
살림 발행ㆍ464쪽ㆍ1만6,000원
소설은 카야가 습지에 홀로 남겨진 1952년과 체이서가 발견된 1969년 사이를 번갈아 질주하며 사건의 실체에 다가간다. 살아남기에 급급하던 카야 앞에 다정한 소년 테이트가 나타난다. 테이트는 카야에게 알파벳을 가르쳐주고, 책을 빌려주고, 시의 아름다움을 알려주며 사랑과 우정으로 카야의 성장을 돕는다. 테이트가 대학에 합격해 습지를 떠난 뒤 절망하던 카야 앞에 체이서가 등장한다. 가족과 테이트 모두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한 카야에게, 체이서는 마지막으로 믿고 의지할 상대가 되어주겠다고 약속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카야는 체이서가 약속한 것들이 모두 거짓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소설은 파국을 향한다.
저자 델리아 오언스는 원래 동물학자다. 7년간 아프리카에서 야생동물을 관찰한 연구성과를 정리해 엮은 논픽션으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노년의 과학자가 일흔 살의 나이에 처음 쓴 소설로 미국 서점가를 뒤흔들었다. 할리우드 배우 리즈 위더스푼은 이 책의 열렬한 팬을 자처한다. 위더스푼이 자신이 설립한 ‘헬로 선샤인 북클럽’의 추천작으로 소개해 입소문을 탔다. 아마존 베스트셀러 명단에 진입한 이후 23주 동안 1위를 차지했다. 올해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230만부)이다. 독자들은 한 과학자가 평생에 걸쳐 탐구한 자연이란 주제에 흥미진진한 서사를 녹여낸 점에 열광했다.
소설은 인간과 자연이 어떻게 진정으로 소통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이기도 하다. 습지의 모든 생물과 함께 호흡하는 카야는 자연 그 자체에 대한 은유다. 사람들은 카야를 조롱하거나 정복하려 하고, 궁금해 하면서도 진심으로 다가갈 용기를 쉽사리 내지 못한다. “난 사람들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어”라는 카야의 말은 인간이 자연에 저질러온 무수한 잘못을 떠올리게 한다. 계급과 인종, 자연, 인간, 여성에 대한 생각들을 종합하고 인간의 ‘외로움’을 녹여낸 소설을 끝까지 읽고 나면 230만 미국 독자의 선택에 수긍하게 된다.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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