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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노동자들의 죽음… 사회는 그들을 지켜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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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노동자들의 죽음… 사회는 그들을 지켜주지 못했다.

입력
2019.06.20 15:56
수정
2019.06.20 19:1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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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노동자들은 잘못이 없다. 청소년 노동자들을 악용하고 이들의 존엄한 노동의 권리를 짓밟는 어른들과 사회가 문제다. 돌베개 제공
청소년 노동자들은 잘못이 없다. 청소년 노동자들을 악용하고 이들의 존엄한 노동의 권리를 짓밟는 어른들과 사회가 문제다. 돌베개 제공

아이들이 일상 곳곳에서 죽어가고 있다. 지하철 스크린도어를 고치다가, 소시지를 포장하다가, 생수통을 운반하다가, 콜 센터에서 전화를 받다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사라져갔다. ‘현장실습생’이란 이름으로 칭해지던 청소년 노동자들이다. 이들의 존재는 죽어서야 겨우 드러났다. 그러나 그 죽음조차 현실을 바꾸지는 못했다. 비극은 반복됐고, 이들은 그때마다 편의상 00군, 00양으로 바쁘게 불려 나와 납작하게 재현됐을 뿐이다.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은 청소년 노동자들 죽음 뒤에 가려진 사회의 책임을 묻는 책이다. 장시간 노동과 사내 폭력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현장실습생 김동준군의 죽음에서 출발해 동준군의 어머니와 이모, 사건 담당 노무사, 제주도 생수공장에서 기계고장으로 사고를 당해 숨진 이민호군의 아버지, 특성화고ㆍ마이스터고 교사 및 재학생 졸업생들의 목소리를 고루 담았다. 은유 작가가 2년 넘게 인터뷰하고 기록했다.

동준군은 프로그래머가 되고 싶은 평범한 아이였다. 어려서부터 덩치가 컸고 성격은 순했다. 애지중지 키운 외아들이었다. 동준군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마이스터고를 선택했다. ‘기능 장인’으로 만들어 주겠다는 정부의 말을 굳게 믿었다. 졸업을 앞두고 CJ제일제당에 입사했다. 맡은 일은 식품공장에서 햄과 소시지를 포장하는 단순 노동. 생각했던 업무와는 달랐지만 열심히 일했다. 그런데도 회사는 숨 쉴 틈 없이 몰아쳤다. 휴일은 꿈도 꾸지 못했고, 조금이라도 실수를 하면 폭력과 폭언이 날아왔다. 결국 동준군은 2014년 1월 회사 옥상에서 떨어져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

은유 지음ㆍ임진실 사진

돌베개 발행ㆍ252쪽ㆍ1만5,000원

이 땅의 또 다른 동준군은 수도 없이 많다. 이들은 학생과 노동자의 경계에 서 있는, 아직은 서투를 수밖에 없는 가장 약한 자들이다. 하지만 회사나 사회는 이들을 배려하기보다 쓰고 버리면 되는 소모품처럼 취급한다. 책은 현장실습생들의 반복되는 죽음 뒤엔 가혹한 노동 조건의 강요가 있다는 점을 날카롭게 짚는다. 정부와 사회는 아이들을 지켜주지 못했다. 민호군의 아버지 말대로 ‘현장실습생’이란 존재는 세상을 바꿀 힘이 있는 자들의 관심사가 아녔다.

동준군의 어머니 강석경씨는 아들을 잃고 나서 가슴을 쳤다. “회사에 가기 싫다는 아이를 왜 보냈을까요.” 강씨는 이제 다른 아이들을 붙잡고 애원한다. 부당한 상황을 참지 말라. 위험하고 불안하고 힘들면 일을 거부하라. 자신을 돌보고 지키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이다.

하지만 혼자서 나를 지키는 데는 한계가 있다. 우리가 바뀌어야 한다. “나와 상관없어” “그러게 특성화고를 왜 가” “위험하면 하지 말았어야지” 같은 방관과 외면, 체념이 지금도 아이들을 죽이고 있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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