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는 19일 대법원 강제징용 배상판결과 관련해 제3국에 의뢰해 중재위원회를 설치할 것을 제안했다. 이와 함께 일본 정부가 오는 28~29일 오사카(大阪)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기간 한일 정상회담을 보류하는 방침을 정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중재위 구성과 한일 정상회담 개최를 연계하고 있는 일본 측이 문재인 대통령의 G20 정상회의 참석 이전 중재위 요청에 응할 것을 압박하려는 조치로 보인다.
가나스기 겐지(金杉憲治)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 국장은 이날 외무성으로 김경한 주일 한국대사관 정무공사를 불러 “한국이 기한 내에 중재위원을 임명하지 않은 것은 유감”이라며 제3국에 의뢰한 중재위 설치를 요청했다.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에는 분쟁 해결 절차로 외교 경로를 통한 협의와 양국이 지명하는 중재위원을 통한 중재위 또는 제3국에 의뢰한 중재위 설치를 규정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지난달 20일 한국 정부에 중재위 설치를 요청했으나 한국 정부가 중재위원을 지명하지 않자 제3국에 의뢰한 중재위 카드를 꺼낸 것이다.
일본이 한일 정상회담 보류 방침을 정했다는 이날 산케이(産經)신문 보도도 이와 연장선에 있다. 김인철 외교부 대변인이 전날 “대법원 판결을 존중한다는 기본 입장 하에서 피해자 고통과 상처의 실질적 치유, 그리고 미래지향적 한일관계 구축 필요성 등을 고려해 사안을 신중하게 다뤄오고 있다”며 일본 측의 중재위 설치 요구에 응하지 않은 탓이다. 이에 일본 정부는 한국의 구체적인 행동이 없는 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와 문 대통령이 만나더라도 성과 있는 회담이 어렵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한일 정상회담과 중재위 설치 요청을 연계한 이후 일본 외무성과 총리관저 주변에서는 이처럼 한일 정상회담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이 흘러나오고 있다.
외무성은 명목상 오사카 G20 정상회의에 참여하는 나라와 국제기구가 37곳에 달해 아베 총리가 개별 양자 회담에 모두 응하기가 물리적으로 어렵다는 이유를 들고 있다. 그러면서도 미국, 중국 등을 포함한 14~15개국 정상과 개별회담을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대부분 짧은 시간 진행될 예정이지만 자리에 앉아 정식회담 형식을 취할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한국 정부가 강제징용 문제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는 한 아베 총리는 문 대통령과는 간단한 인사를 나누거나 서서 대화하는 정도에 그칠 수밖에 없다는 게 일본 측 입장이다.
일본 정부가 제3국에 중재위원 임명을 위임하는 중재위 설치를 요구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대내외에 한국 측이 한일 청구권 협정상 의무를 다하지 않는다는 이미지를 부각시키면서 궁극적으로는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한다는 방침이다.
청와대 측은 한일 정상회담과 관련해선 “아직 결정된 내용이 없다”고 밝혔다.
도쿄=김회경 특파원 herm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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